by mola mola Oct 18. 2023
부모님과 할머니를 보러 간 날이 있었다. 암에 걸린 할머니와 조금이라도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어보기 위함이었다. 난 오래된 한방찻집을 알아뒀다가 보란듯이 가족들을 데려갔는데, 할머니는 화들짝 반가워했다. 수십년 전에 할머니가 일했던 찻집이라고 했다. 평소 과묵한 할머니가 찻집에 대한 온갖 얘기를 늘어놓으며 신나게 말하는 그 날이 잊히지 않는다.
할머니는 좀처럼 옛날 얘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내게 할머니는 늘 할머니였다. 자글자글한 주름과 작은 몸집으로 잘 모르겠는 전라도 사투리를 쓰던 할머니. 난 찻집을 추억하는 할머니를 본 뒤에야 새삼 당신의 젊은 시절들을 상상했다.
할머니로 불리기 이전에는 남편 없이 홀로 일하며 네 남매를 키우는 아줌마였을 것이다. 그때도 학교를 다니지 못해 한글을 모르는 걸 부끄럽게 여겼을 것이다. 소녀 시절은 부모가 없었기에 어린 나이부터 식모살이를 하느라 늘 고달팠을 것이다.
그것들은 모조리 설움이 되어 자식들에게 늘 원하는 것이 많았고 늘 화가 많으셨다. 그러면서도 서랍장 가장 깊은 곳에 한글 연습장을 숨겨뒀고 매일 생이별한 여동생을 그리며 외로움에 떠는 노인이 됐다.
할머니는 자애로운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무엇을 공부하는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졸업해서는 어떤 일을 하는지 물으신 적이 없다. 그저 혼자 세월이 금방 지나간다고 한탄하셨고, 대학을 간 뒤로 한동안은 대뜸 왜 의사가 되지 않았냐고 툴툴대셨고, 졸업하고서는 결혼을 하라 성화였다. 기자라는 직업도 좋게 생각하지 않으셨다. 할머니는 손주들에게 칭찬을 하는 일이 없이 단점을 잡아 모질게 말하는 버릇이 있었고 내 사촌들은 저마다의 상처를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할머니는 그러면서도 나를 보면 강아지라고 했고, 내가 안아주면 나를 다시 힘껏 끌어안는 사람이었다. 꼬박꼬박 전화를 하지 않는다고 등짝을 때리면서도 나를 만나면 손을 잡고 어지간해선 놓지 않으셨다. 난 그런 할머니의 행동을 언젠가부터 사랑으로 이해했다.
서투르다 못해 거친 말과 행동에도 무한한 사랑이 깃들 수 있다는 것을 난 할머니로부터 배웠다. 할머니 영정 앞에서 계속 눈물이 나는 까닭은 그런 사랑이 하나 스러졌다는 것을 깨달은 탓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