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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동훈 Feb 17. 2023

[독서리뷰]- <어떤 양형 이유>

텍스트 너머 인간과 그 삶에 대해 고민하는 한 판사의 이야기

<어떤 양형 이유> 리뷰

모든 법정 판결문은 감상을 배제한다. 감정은 엄정한 형식과 표현으로 대체된다. 그나마 감정을 허용하는 곳이 있다. ‘양형(量刑)이유’다. 이 영역은 법적 논리와 법률 용어만으로 점철된 판결문에서 판사에게 일말의 감상을 허용한다. <어떤 양형 이유>는 20년 남짓 판사생활을 했던 박주영 부장판사의 감상을 담았다. 자신이 내린 수많은 판결의 당사자와 그의 삶에 대한 기억이자, 대한민국 사회와 사법 시스템에 대한 감상이다. 냉철을 요구하는 법관으로서의 삶 가운데 끊임없이 따듯한 인간이기를 소망하는 법조인의 기록이 담겨있다.


p11. 국민은, 불복할 수 없는 상급심이다.

p240.사법농단을 증언하며 눈물 흘리는 젊은 법관을 보던 늙은 판사가 중얼거렸다. “앞으로 다신 울지 마십시오. 판사의 눈물은 온전히 당사자의 몫입니다. 법관은 법원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만 울 뿐입니다. 당신의 눈물이 나의 죄입니다.”


박주영 판사의 모든 글에는 국민이 전제되어 있다. 사법기관이 행사하는 권력의 정당성을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았음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 글 전반에 드러난다. 그들의 삶에 개입해 처벌해야 하는 재판관으로써, 정의를 수호한다는 법관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그는 자신의 글을 통해 나타낸다. 책 속엔 그가 안타까움을 느꼈던 사건들이 많이 나오는데, 국민의 삶을 보호해야 하는 법이 오히려 그들을 옭아매는 데서 느끼는 안타까움이다.


그가 법조인으로서 가지는 양심에 대해선 소위 엘리트 법관들의 사법농단에 대한 글에서  많이 느낄 수 있는데, 사법을 농단한 동료와 선배들을 고발하며 눈물 흘리는 젊은 판사(박주영 판사는 이 부분에서 본인을 ‘늙은 판사’라 칭한다)에게 그의 눈물이 자신의 죄라고 말하는 데서 박주영이라는 ‘인간’은 ‘법조인’으로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를 여실히 드러내는 부분인 것 같다. 정작 사법을 농단한 자들은 자신의 죄를 부인하며 고개를 뻣뻣이 세우는데, 그들의 죄를 자신의 죄로 여기며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p79. 보편타당한 원리를 추구하는 사법은 본래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심을 그 바탕으로 한다. 그런 점에서 사법의 본령은 삶의 현장과 소통하는 것이며, 대상 사건의 영역 내에 있는 모든 사람의 문제와 애환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p270. 문제는 판결을 작성하는 인간이 글의 형식과 일치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아니, 그 냉혹한 현실과 일치해서는 안 된다. 이 모순적 상황이 판사를 괴롭힌다. 판사는 결코 법이라는 인식의 틀을 닮으면 안된다. 인식의 틀이 강퍅할수록 인식하는 주체는 다정다감해야 한다. 그것이 기계가 아닌 인간에게 재판을 맡기는 이유다. 판결과 재판이라는 비정한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결코 서정을 잃어서는 안 되는 모순적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법조계에서 실무를 경험하는 사람들의 기록을 듣거나 읽어보면, 엘리트 판검사들이 생계형 범죄자가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유복한 집에서 부족함 없이 공부하며 실패라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채 살아온 판·검사들에게 배가 고파서 라면을 슬쩍하고, 누군가의 돈을 갈취하고, 빵을 훔치는 행위는 이해할 수 없는 야만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수사나 취조의 과정에서 그들에게 아무런 연민없이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민다고 한다.


범죄를 저지른 것은 분명한 잘못이겠으나, ‘삶의 맥락’을 읽어내지 못할 때 법은 국민을 옥죄는 무서운 것이 된다. 박주영 판사는 범죄의 경중을 따지고 누군가의 형량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피고인의 삶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한다.


p195. 모든 사안을 법대로 공평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법원칙이 법적 안정성의 문제라면, 유사해 보이지만 다를 수밖에 없는 각 사건에서 개별 사안에 따라 거기에 맞는 최선의 결론을 도출해야 하는 것은 구체적 타당성의 문제다. 어떤 법관은 법적 안정성이 정의의 영역이라면 구체적 타당성은 사랑의 영역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피고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을 사랑의 영역이라 말한다. 개별 사안에서 거기에 맞는 최선의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법조문의 텍스트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법이 적용되는 사람의 삶과 그 맥락을 들여다보는 것, 그리고 그 가운데서 사랑을 발휘하는 것 또한 법관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법이라는 강퍅한 인식의 틀 속의 다정다감한 주체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법관’이기 전에 ‘사람’일 것을 요구하고, 사람 대 사람의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봐야 한다 말한다. 그래서 법은 논리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서정의 영역이기도 하다. 정해진 답을 도출하는 수학과 같은 것이디고 하지만 한 편의 스토리를 읽어야 하는 문학이기도 하다. 그것이 ‘법’이라는 영역이다.


p197. 지남철인 법관은 법 앞에서 길을 묻는 사람들 앞에 누워 파르르 떨어야 한다고


박주영 판사는 故신영복 선생의 글을 가끔 인용한다. 그중에서도 지남철을 인용한 부분은 법관 박주영을 넘어 인간 박주영으로서의 삶의 태도를 드러내며, 동시에 읽는 독자에게도 삶을 대하는 태도를 재정립하게 한다. 움직이는 삶이다. 지남철은 흔들린다. 흔들림은 움직임이다. 흔들림으로써 올바른 방향을 가리킬 수 있다. 흔들림은 올바름을 찾을 수 있는 수단이다.


<어떤 양형 이유>에는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밀면서 동시에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잃지 않으려는 법관의 모습이 담겨있다. 재판으로 만나 들여다본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대한 기록, 그리고 그 앞에서 정직하려 분투하는 한 법조인의 양심과 사랑이 쓰여있다. 이런 모습은 사법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찬 사람으로 하여금 일말의 희망을 가진 채 책을 덮게 한다. 필자가 읽었던 박주영 판사의 모습과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법조인이 이 땅에 많이 세워졌으면 좋겠다.


202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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