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간 웃으며 돌아볼 난임 이야기입니다. 저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이라면 경험을 나누고 함께 공감하고 싶습니다. 주변에 난임을 겪고 있는 이웃의 지인 분이라면 그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소중한 생명을 기다리는 모든 분들의 임신 성공을 기원합니다.
얼마 전 유튜브의 알고리즘의 소개로 영화 '가타카(GATTACA)'를 보게 되었다. 1998년도에 개봉된 이 영화는 나는 잘 몰랐다. 그러나 그 옛날학창시절의 학기 말, 시간을 때워야 하는 과학시간이 되면 꼭 한 번은 보았던 명작이라고 했다.
<출처:Daum 영화 영상/포토>
주연은 꾸준히 잘생긴 에단 호크와 우마 서먼, 그리고 젊은 날의 (풍성한)주드 로가 나온다. 배경은 정확히 언제인지 나오지는 않지만 우주를 탐사하는 것이 일상이고 유전학적 조작과 선택으로 우월한 유전자만 탄생하도록 하는 시대로 보아 아마 21세기 말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보통사람들과는 다르게 자연적인 섭리에 의해 태어난 아이들은 보통의 인간이라면 가질 수 있는 질병과 신체적 한계로 인해 중요한 임무에 배정받을 수 없는데, 에단 호크는 자연적 섭리로 태어난 첫째 아들이었다.
유전학적으로 탄생한 동생과 비교되며 신체적 한계를 느끼지만 우주비행사라는 꿈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우주항공회사의 청소부로 근무하며 꿈을 키우던 중 우연히 DNA중개인을 소개받고 사고로 하반신 불구로 살아가는 우성 유전자를 가진 주드 로를 만나게 되어 그의 신분으로 위장한 채 살아간다. 여러 위기 속에 많은 사람들은 속이고 도움을 받고, 스스로 극복해내며 결국엔 자신의 꿈인 우주로 향하게 된다.
98년도에 그려본 미래의 모습인데 신기할 만큼 현재와 유사한 점도 있고 때론 지금의 시각으론 허점이 드러나는 장면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이나 영상면에서 나는 꽤 재미있고 흥미롭게 봤다. 그 시대에 생각한 미래의 인생이란 이렇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영화 속 이야기의 시작점이자 포스터에 낯익은 장면이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낯설지만 난임부부라면 아이만큼이나 관심 있게 지켜보는 바로 '체외수정(시험관 시술)된 수정란'의 모습이다. 시험관 시술은 1978년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고 우리나라는 1985년도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처음 성공했다고 한다. 아마도 이런 기술이 점점 더 발전해 영화의 배경인 미래에는 모두가 우월한 유전자로만 체외수정을 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 생각한 것 같다.
영화 개봉 후 23년이 지난 지금, 영화처럼 자연적인 섭리에 의해 태어난 아이들이 열성으로 구분되거나 모두가 시험관 시술을 하는 시대는 아니다. 그러나 태어나는 아이 중 5.8%(2017년도 보건복지부 조사)가 시험관 시술로 태어난다고 하니 목적은 달라도 얼추 그 미래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는 것 같다.
미래의 방식에 먼저 발 하나를 담근 가임기 여성이 여기 한 명 더 추가되었다.
지난주 시험관 시술(정식명칭: 체외 수정 및 배아 이식)을 처음으로 시도했다. 난포를 자라게 하는 과정이나 생리 후 일정 등은 인공수정과 유사했다. 단 인공수정보다 많은 난포(난자)를 키워야 하기에 주사 용량과 횟수가 더 많았고 가장 중요한 채취와 이식의 과정이 있었다.
<시험관 아기 시술 과정>
생리 시작 후 8일간 항생제 약과 함께 과배란 유도 주사(고날에프)를 맞았고, 채취 전 3일간 미성숙 난자의 배란을 방지해주는 주사(세트로타이드)를 맞았다. 그리고 채취 36시간 전엔 36시간 내에 난포를 터트려주는 주사(오비드렐)와 진통을 줄여줄 주사(데카팹틸)를 시간에 맞춰 맞았다.
주사의 종류와 용량은 사람과 병원마다 다르지만 난 그나마 난포가 잘 생기는 편이라 비교적 주사가 적은 편이었고 난임의 원인 중 다낭성난소증후군의 경우는 난포가 더 잘 자란다고 한다. 난포가 많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고 난자가 없는 공난포도 있을 수 있으며 난자의 질을 위해 적정한 개수가 자라는 것이 좋다고 한다. 때로는 어렵게 겨우 자란 난자 1,2개가 성공하기도 하니 난포 개수에 섣부르게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말아야 한다. (난포 개수가 많다고 좋아했다 크게 데였던) 인공수정 실패 때 배운 것이다.
<나에게도 드디어 수첩이 생겼다! 주사수첩..그리고 비교적 적은 양의 주사들>
세 번의 초음파 확인 후 17여 개의 난포가 성숙된 것으로 확인됐고 드디어 채취 시술 날짜가 잡혔다.
남편은 하루, 나는 이틀의 휴가를 내고 채취에 들어갔다.
아침 일찍 도착해 남편은 공식적 성인물 관람이 허용되는 연구실로 나는 수술실로 향했다. 정말 아프다는 말도 있었고 전혀 아프지 않다는 말도 있어 두근거리다가도 막상 내 차례가 오니 그렇게 떨리지는 않았다.
채취에 들어가기 전 수술방 앞 대기실 침대에 있다 옆 수술방에서 갓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으엥으엥 우는 갓난아기의 울음소리로 새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수술실 앞에 나는 난자 채취를 기다리며 누워있었다.
내 차례가 되고 수술방(시술과 수술이 동시에 진행되는 듯했다)에 들어오신 선생님과 함께 '화이팅!!!!!!'을 크게 외치고 큰대(大)자로 된 고정대에 손발을 고정시켰다. 다섯을 세기도 전 마취가 진행되었고 몇 분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선생님 피셜 정말 간단하다는 채취는 정말 간단히 끝이 났다.
<수술실 바로 앞 신생아실. 언젠가 꼭 갈 수 있기를.>
늘 마취가 깰 때 무슨 헛소리를 할까 걱정했던 나는 왜인지 울며 잠에서 깼다. 대기실이 떠나가라 흐엉흐엉 울고 있으니 간호사 선생님이 와서 깨워주었다. '00님 혹시 아프세요?'라고 물어봤는데 아프지 않았기에 몽롱한 정신으로 고개를 저었다.
나는 왜 울었을까. 마지막으로 들었던 아가의 울음소리가 기억에 남았던 것일까. 아가들이 태어나는 수술방에 누웠으나 내 배속에서 태어난 아이가 없으니 난자를 흡입기로 배출하고 나 스스로 아이처럼 운 것일까. 안정을 취하는 한 시간 동안 정답 없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훌쩍거리며 이제 막 통증이 시작된 배를 움켜쥐고 밖으로 나왔다. 초음파로 보인 것보다 많은 난자가 채취되어 이번 달 신선 이식은 불가하다 했다. 그 누구보다 건강해야 할 내 몸을 위해 이번 달은 쉬기로 했다. 다음 달 동결배아로 이식을 할 예정이다.
지난 며칠간 열심히 키운 내 난자와 몇 달간 엽산과 건강식으로 키운 남편의 정자는 미세 수정과 배양 후 다음 달 이식을 위해 수정란 5개씩을 모아 냉동탱크에 보관될 예정이다. 앞으로 5년 간, 그 후에도 원하면 더 오래 보관해 둘 수 있다고 한다. 나이를 한참 먹어도 동결해 둔 배아로 임신을 할 수 있다니 기술의 발전이 신기하기만 하다.
우리 부부는지금 늘 기도하며 부탁드렸던 신들도 삼신할머니도 아닌 병원의 의사 선생님과 연구원 분들에게 우리 아기의 탄생을 절실하게 기도하고 있다. 영화처럼 예상되는 유전학적 병을 피하고 우수한 우성 유전자를 골라 넣기 위한 시술은 아니었다. 그 어떤 아이든 건강하게 태어나기만 한다면 좋겠다.
나는 오늘, 과거에 상상으로 그려보던 '미래의 임신 방법 시험관시술'에 발을 담갔다.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이겨내고 우주비행사의 꿈을 이룬 에단 호크처럼 나도 문제점들을 극복해 내고 꼭 '미래시대의 임산부'로 꿈을 이룰 것이다.
<에단호크같은 아들, 우마서먼같은 딸이 낳고 싶다...!>
비록 에단 호크는 편법이었으나 그 역시 의학의 힘이었다. 오늘날의 시험관 시술은 편법도 아닌 합법적인 의학기술이니 얼마나 좋은 방법인가!
예나 지금이나 임신과 난임은 참 어려운 문제였겠죠.
하지만 과학과 의학기술이 발전한 이 시대의 난임부부인 것은 참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