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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트밀리 Jul 16. 2021

13. 나는 산부인과에서 겸손을 배웁니다.

누구보다 엄마가 되고 싶은, 겸손을 배워가는임신 준비이야기

언젠간 웃으며 돌아볼 난임 이야기입니다. 저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이라면 경험을 나누고 함께 공감하고 싶습니다. 주변에 난임을 겪고 있는 이웃의 지인 분이라면 그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소중한 생명을 기다리는 모든 분들의 임신 성공을 기원합니다.

여유 있던 한 달이 지났다. 채취 후 수정과 배양까지 연구실에서 며칠의 시간이 지났고 나는 부어있는 난소를 위해 이온음료를 많이도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채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생리가 시작됐다. 평소 신기하리만큼 정확했던 그날이었는데, 예정일보다 일주일은 빨리 시작되어 온갖 걱정과 추측이 오갔다.

'난소가 부었다더니 피가 나서 문제가 된 것일까'

'자궁이 안 좋아져 이식 날짜가 한 달 더 기다려야 되는 것은 아닐까?'


병원에 가보니 과배란으로 인해 그럴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다시 안심했다.

생각보다 빨라진 생리 일자에 동결배아 이식을 조금 빨리 할 수 있다니 기분도 좋아졌다.


연구실에서 수정된 우리의 배아는 총 16개로 생각보다 많은 배아가 수정에 성공했다. 8세포기 4세포기 기억은 나지 않는 여러 설명을 해주셨지만 '최상급, 상급도 많고 잘됐네요'라는 소리만 기억이 난다. 뿌듯했다. 시험관 카페를 들락날락 거리며 난저로 힘들어하는 글들을 봐온 터라 첫 시도에 16개의 배아는 또다시 나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지난번 인공수정에서 홀로 높은 확률을 우쭐해하다 나 스스로에게 뒤통수를 크게 맞았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고개를 한번 젓고 너무 기뻐하지 않기로 한다. 임신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잘 될 수도 잘 안될 수도 있으니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고, 그냥 지금 내가 아프지 않은 것에만 감사하자고 생각했다.


나는 자연주기(자연적인 배란일에 맞춰 배아를 이식함)와 인공주기(약과 주사 등 배란을 억제하고 인공적으로 주기를 조정하여 자궁내막을 키운 뒤 배아를 이식함)중 인공주기로 배아를 이식하기로 했다. 매일 먹는 약, 배주사, 질정을 넣고 이식 전 두세 번 방문하여 초음파로 자궁내막을 확인한다.


드디어 이식날이 확정되는 중간점검의 날, 담당 선생님이 휴가 셔서 다른 선생님께 진료를 보았다. 자궁내막도 잘 두꺼워졌다고 했다. 이식일은 다음 주 수요일로 정해졌고 보다 정확한 확인을 위해 피검사를 했다. 이식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기 위해 상담실에 들어가 배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나는 35세 이상이라 3~4일 배양 3개의 배아 이식이 가능하고 특별한 요청사항이 없는 한 3개를 이식할 예정이라고 했다.

(35세 미만은 3/4일 배양 2개, 5일 배양 1개까지 가능함. 35세 이상은 +1개)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또 온갖 생각을 했다.

'상급 배아로 3개를 이식한다고 했는데 세쌍둥이가 생기면 어쩌지? 두 개만 한다고 할까? 호호'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도 세쌍둥이에 대한 이야기를 식사 내내 했다. 그날의 나의 일기장에도, 다음날 출근길에도 내 건강을 걱정해주는 친구에게도 나의 고민은 두 개만 이식할까 세 개를 할까. 쌍둥이까지는 생각했었는데 세쌍둥이를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였다.


다음날 아침. 일정 등을 문자로 주던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전화가 오는 것은 그리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00님, 여기 병원이에요. 어제 피검사하고 가신 게 결과가 초음파랑은 조금 달라서.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할 거 같아요. 드린 주사와 약은 잠시 멈추시고 내일쯤 병원에 다시 방문해주세요.'


심장이 철렁했다. 무슨 문제일까. 어떤 결과가 다르다는 것일까. 또다시 온갖 상황을 떠올렸다. 이번달에 못하게 되는건가? 자궁에 문제가 생겼나?  (비교적 선택지가 많았던 나로서) 배아를 몇 개 이식할까, 세 쌍둥이면 어쩌지 고민했던 그 순간들이 참 무색했다.

'맞다. 임신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지..하나건 두개건 상관없으니 이식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또다시 임신 앞에 겸손해졌다. 원하는 대로 다 되는 줄 알았던 젊은 날의 자만심은 사라졌다. 나의 기대, 바람, 계획을 버리고 딱 하나만 바라게 되었다.


이번 달에도 도전할 수 있기를..나에게도 건강히 아이가 찾아오기를..



임신준비가 꼭 줄타기 같진 않나요?

좋은 일이 있는가 하다가도 다시 기우뚱하는 아슬아슬한 외줄타기

그래도 끝까지 넘어지지 않고 아슬아슬 기우뚱 걸어간 그 줄 끝엔 다왔다 하고 안도할

그런 단단하고 평평한 마당이 기다리고 있겠죠.

아슬아슬했던 줄타기를 겪으며 느꼈던 긴장감, 초조함 덕분에

마당에서의 두발로 내딛는 안도감이 더 행복하게 느껴지는 날도 있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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