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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중유강 Feb 03. 2023

'좋았다'와 '잘했다'

당신은 좋았다와 잘했다 중에 어떤 말을 더 자주 사용하나요?
생각해 보면 저는 아이에게 '좋았다'는 말보다 '잘했다'는 말을 더 많이 쓴 것 같더라고요.
좋았다나 잘했다나 둘 다 좋다는 표현이니까 비슷한 것 같지만 가만히 놓고 보면 상당히 다른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았다'는 그 감정을 느끼는 주체가 '나'이고, 어떤 대상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묻는 것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해요. 그 그림이 좋았다, 그 음식이 좋았다, 그 사람이 좋았다는 것은 그 대상의 객관적인 실체와는 별개의 문제인 것이죠. 그 그림이 객관적으로 엉망이고 심지어 미완성이어도 그 그림이 그 순간 나에게는 좋을 수 있죠, 또는 좋은 느낌이 아니었어도 뭔가 나에게 '다른'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면 좋았을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것은 내가 마주한 대상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나에 대해 말해주는 방식입니다.
반면에 '잘했다'는 것은 상대방의 행동이나 그로 인한 결과물에 대한 '평가'에 무게를 실어주는 표현이에요. 객관적인 기준에서 잘잘못과 성패를 이야기하는 방식인데, 아무리 좋은 의도였더라도 우리는 '잘했다'는 말속에 우리의 평가를 숨겨서 표현하고 있는 셈입니다. 둘 다 칭찬 같지만 '잘했다'는 말을 듣는 일이 마냥 좋지 않은 이유는 거기에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 나를 평가한다는 것, 평가될 줄 몰랐는데 난데없이 평가를 받으면 '당신이 뭔데 나를 평가하느냐'는 반발심이 생기기도 하니까요. 또 그러다 보면 '내가 잘해야 당신은 나를 만나줄 생각이냐?'라고 되묻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아이도 그런 생각을 갖게 되지 않을까요? '내가 공부를 잘해서 엄마가 나를 좋아한다'는 생각을 아이에게 심어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또는 '엄마한테 사랑을 받으려면 내가 뭐든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생기도록 말을 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보게 됩니다.
당신은 오늘 무엇이 '좋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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