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가 쏟아지는 세상이다. 매일매일 볼 것들이 너무 많다.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각종 짤까지 넋 놓고 보다 보면 하루를 홀랑 다 써버리는데 그들은 나에게 재미 말고 무엇을 남겼는가.
재미는 삶을 지탱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를 구성하는 방식은 또한 매우 다양하다. 그 다양한 방식은 만든 사람의 정서와 세계관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우리가 합의한 많은 것들을 내포한다. 그 합의는 그가 속한 사회 내부에서의 합의이지만 그 집단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배제하고 소외시킨다. 우리는 콘텐츠 안에 녹아있는 생각들에 대해 생각하고 그에 따른 의견을 갖고 싶지만 적당한 언어를 갖기 어렵다. 그것은 전문적인 영역이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에 그것은 나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한 발 물러서고 만다. 하지만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시작해 준다면, 그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생각을 확장해 볼 수는 있다. 뭉뚱그려 덩어리로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조금씩 분해해서 내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알맹이로 한 발씩 다가갈 때 우리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고 그 경험은 또 다른 '다르게 볼' 기회에 바탕이 될 수 있다.
비평은 누군가 만들어놓은 작품을 단순히 칼질하는 일이 아니다. 사회가 합의한 사실이 무엇인지 알게 하고, 그 합의가 과연 적당한지 그 시선이 기울어져 있는 것이 아닌지를 생각하게 하는 도구이다. 비평은 찬양이 아니므로 비평의 대상이 되는 일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 당사자는 듣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나라면 그럴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을 기약할 때 누구도 그 전의 작품을 더 이상 비난하지 않을 수 있다. 작품을 감상하는 입장에서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 창작자'와 '계속해서 자신을 갱신하는 창작자' 중 어느 쪽을 더 사랑하게 될지 생각해 보면 의외로 답은 간단할 수 있다.
창작하는 입장에서 비평가가 하는 일은 '그럴 거면 네가 만들어'라는 말이 절로 나올 테다. 창작은 아이디어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완성도 있게 구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일이다. 그 노력을 전부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창작자의 의지를 꺾고 방해하는 일에 불과할 뿐이다. 비평가와 창작자 모두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발붙이고 조금 더 좋은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애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같다. 다만 이론적 근거를 갖추고 설득의 언어를 만들 필요가 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또 다른 합의를 끌어내고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 보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작정하고 '망해라'라는 비평은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