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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y Aug 08. 2019

방학중 아들과 전쟁 중?

'아들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은 엄마들에게"를 읽고


여름. 날은 덥고 애들은 방학이고 개들은 새끼를 낳아서 집안이 북적인다. 덕분에 여름 물놀이는커녕 시원한 에어컨 아래서 방콕 중인 내게 밀리의 책들이 위로가 되어준다. 여러 책들 중에서 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 " 아들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은 엄마들에게". 사실 난 아들 때문에 미쳐 버릴 수준의 엄마는 아니다. 스무 살 아들은 '천사'고 아직 중1인 둘째가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는 게 내가 미칠만한 이유는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국내 1호 남아 미술교육 전문가 최민준 소장이 교육현장에서 발견한 아들의 마음을 읽는 법', '아들의 재능, 가능성, 비밀, 엉뚱한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돕는 책'이라는 타이틀만 봐도 나와는 다른 인간들인 아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은 기대가 들어 책을 읽게 되었다.


말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말이 너른 들판을 실컷 뛰게 해주는 일. 다른 하나는 말이 목마르다는 표현을 할 때 냇가로 데리고 가는 일. 이 두 가지 조건만 충족시키면 된다. 냇가에 데려가는 것은 우리 일이지만 물을 마시는 것은 말의 자유다.


일단 그의 말데로 말이 너른 들판을 뛰게 해 주고 목마르다고 할 때 냇가로 데리고 가야 하는데... 나는 어디서 도대체 우리 아들을 뛰게 해주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뛰고 싶어 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요즘 둘째의 무기력증의 특징은 아무것도 하기 싫고 배도 고프지 않다는데... 마냥 내버려 두어야 하는지 엄마로서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여러 가지 이유로 아이들 대신 꿈을 설계해주려는 마음은 월권 인지도 모른다. 과거가 될 어른들이 미래를 살 아이들의 꿈을 설계해주는 것부터 문제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생각하는 유망한 직업은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더 이상 유망하지 않을 것이다. 변호사, 의사, 금융업. 20년 뒤 미래엔 직업군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넌 아이 어떻게 키울 거야?"라는 질문에 인생관이나 철학이 아닌 직업으로 대답하는 문화를 조심스레 지적하고 싶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아이들에게 꿈을 찾아주려는 어른들의 노력은 흡사 영업 사원 같다. "아 요즘 손발이 차고 좀 춥네요"라고 말하면 "고객님 그러면 이번에 새로 나온 모피를……" 하고 물건을 파는 영업 사원처럼, 아이는 "엄마 난 과학이 재미있어"라고 순수한 배움의 즐거움을 말하면 "오, 그래. 우리 아들 나중에 과학자 할래?"라고 진로 설정으로 피드백을 하는 모습이 꼭 그렇다. 과학이 재미있다는 호기심은 순수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열정과 호기심을 잔뜩 키워줘야 할 시기에 어른들은 아이에게 너무 빨리 사회를 준비하게 만든다. 이것은 흡사 익지 않은 밤을 억지로 까는 행위와도 같다. 순수한 호기심이 진로의 영역까지 익어가기 위해선 무수한 고민과 과정의 시간이 존재한다. 아이의 열정을 너무 빨리 열으려고 하면 열정은 더 이상 영글지 않는다. 미술을 좋아한다고 재빨리 입시 미술 코스부터 알아본다면 아이는 금방 미술을 싫어하게 될 것이다. 직업과 진로라는 틀을 벗어나서 단순하게 이 아이는 세상 어떤 것에 끌리고 관심 있어하는 아이일까? 조금 더 순수한 관심을 기울이자. 둘째, 아이에게 순수하게 무언가를 좋아할 시간을 줘야 한다. 곤충이든 공룡이든 직업과 상관없이 좋아하는 대상이 생겼을 때 아이는 그것에 관해 배울 준비를 한다고 믿고 시간을 내어줘야 한다.


저자의 글에 콕콕 찔리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을까? 나 역시 아이가 과학이 좋다길래 그러면 과학고를 보내야 하나 생각부터 들고 그러려면 학원을 보내야 한다는 결론으로 막을 내리는 요즘 엄마들과 한배를 탈 뻔 했었다. 실제로 학원을 찾아갔다가 과학고에 가려면 고등학교 수학을 모두 선행으로 마쳐야 한다는 어이없는 말에 기가 차서 나왔지만 실제로 남들은 모두 그렇게 과학 중, 과학고를 보내려고 아이들 선행학습을 시키고 학원에서 살게 한다. 나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 아이가 과학을 좋아하면 과학고를 가야 하고 과학고를 가기 위해 학원에서 살아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따라야 하는가? 결국 나는 둘째가 스스로 마음껏 뛰고 싶은 잔디를 깔아 주기로 했다.  


그러던 중 '총'을 아주 좋아하고 총기 백과사전을 외우다 시피하는 둘째를 위해 사격 강습이 딱이다 싶어  인터넷을 검색하다 마침 서울시에서 협찬하는 스포츠사격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공기총, 소총 사격 30발에 5천 원이라는 착한 가격에 끌려 2회를 신청해 두었다. 둘째도 자기가 좋아하는 사격이라니 군소리 없이 강습에 따라갔다. 첫 수업 날, 사격의 유래와 기본적인 것들을 소개해주던 선생님께서 SBS 사격 해설위원이라는데 놀랐고 그분이 둘째 아들의 사격을 지켜보시고는 다음 수업을 선생님 계신 곳으로 오면 어게냐고 제안하셔서 그러기로 하고 돌아왔다.  난 그저 아들이 좋아하는 취미를 살려줄 마음이었지만 전문가 눈에 뜨인 둘째는 어쩌면 마음껏 뛰어놀 잔디밭에 발을 들여놓은 야생마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두 번째 수업을 고대하며 기다리고 있다.



저자의 말데로 아이들의 꿈을 직업으로 연결시키는 엄마들의 단순한 발상은 내게도 해당이 된다. 총을 좋아하고 사격을 좋아하니 올림픽 사격선수로 키워야 하나?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제발 아무 선입견 없이 순수하게 아이가 하고 싶은 길을 열어주고 따라만 가보자. 아이의 열정을 너무 빨리 열려고 하는 게 익지 않은 밤을 억지로 열려고 하는 행동이라는 지적을 가슴에 새겨 놓고 말이다.


우리는 늘 아들에게 미안하다. 남들보다 못해줘서 미안하고 시간을 많이 내어주지 못해 미안하다."엄마 우리 가난해서 엄마 일 나가야 돼?" 아이가 별 의미 없이 던진 질문에 가슴이 무너진다. 같이 시간을 보내지 못한 날은 미안해서 무언가라도 잔뜩 사주고 싶고 아이가 갖고 싶은 것을 못 사준 날이면 단호하게 말해놓고 가슴이 먹먹하다. 행여 아이에게 소리라도 지른 날은 가만히 누워 자고 있는 천사 같은 아이 얼굴을 보며 반성한다. 내가 이 아이에게 적합한 부모인지, 내가 못해주고 있는 것은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늘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을 못해줘서가 아니라, 과하게 해 주면서 생긴다. 아들은 부모가 물질로 채워주는 만큼 내적 자력을 잃는다. 부족한 것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발전하지 못한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결핍이 결핍되어 있다. 무엇이든 해결해주는 히어로 같은 부모님 슬하에선 나약한 아들이 자란다. 모든 것을 충족시켜주는 엄마가 있어서 아들은 열심히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간절함을 알지 못하게 된다. 부모님이 온전히 지원해주는 아늑한 비닐하우스에서 공부만 하면 되는 화초 같은 삶은 누군가에겐 부러운 환경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이룰 필요가 없는 불행한 삶일 수도 있다. 항상 모든 해결이 가능한 히어로로 남지 말자.


우리가 아들에게 늘 미안하다는 걸 어떻게 아셨을까? 방학 동안 집에서 혼자 밥 먹는 게 미안하고 엄마 일하는 동안 혼자 노는 게 미안하고 읽고 싶다는 책 맘껏 못 사줘서 미안하고.. 미안한 게 천지다. 하지만 문제는 무엇을 못해줘서가 아니라 과하게 해 주면서 생긴다는 것. 결핍이 결핍되어있다는 말에 공감한다.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간절함이 없는 아이들, 그래서 꿈이 없는 아이들로 자라게 된다는 것, 꿈조차 부모가 대신 꾸어준다는 슬픈 현실을 상기시킨다. 미해 하지 말자. 나도 뭐 학원 한번 제대로 못가보고 예쁜 옷도 일 년에 한 번 사줄까 말까 하고 맛난 음식도 명절에 한번 먹는 환경에서 자랐지만 늘 감사하지 않았는가?  나의 결핍은 늘 나를 깨어있게 했고 늘 생각하게 했다.  나는 히어로가 아니다. 아들의 꿈까지 대신 꾸어주는 어리석은 엄마 대열에 동참하지 말고 내버려 두고 기다리는 엄마가 되.



덕분에 올여름 방학, 마음껏 먹고 자고 놀고 있는 둘째에게 새로운 동력이 생겼다. 키우던 개의 새끼를 네 마리나 직접 받고 직접 돌보고 있는 둘째에게 이번 방학은 평생 가장 행복한 여름방학이 될 것이다. 내가 뭘 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뭔가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들의 두 눈이 반짝거리고 행복이 샘솟는다. 부디 사격 샘과의 두 번째 사격 수업에서도 그러한 행복 엔도르핀이 마구 샘솟기를 바라며 방학 동안 아들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은 엄마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 아들아, 너는 네 인생을 살거라. 엄마는 엄마 인생을 살 테니"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엄마들이 늘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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