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해드림 hd books Nov 28. 2025
서울을 떠나 시골집에서 어머니와 생활할 때면 가지가지 어머니의 지청구를 듣는다
60 중반이 넘은 아들이 어머니의 지청구 앞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나도 서울에서는 ‘대표님’ 소리 들어가며 지성의 아이콘인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또, 열 권 이상 저작물을 출간한 글쟁이로서,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93세 어머니 앞에서 아들의 이 모든 것은 개털이다.
아무리 건강하시다 해도 어머니를 홀로 지내게 할 수 없어서 삼사 년 전부터 한 달이면 보름씩 어머니와 생활하다 오지만 사실, 하루 세끼 시간 맞춰 식사 챙겨드리고 설거지하는 일 외에는 내가 어머니를 위해 하는 일은 별로 없다.
그저 어머니 곁을 지켜준다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자식 역할의 전부인 데다 시골에서도 포도청을 사수해야 하므로 컴퓨터 앞에서 쉼 없이 일을 해야 하는 처지다.
청소기 돌려가며 집 안 청소하는 일도 어머니가 하는데 그럴 때마다 지청구가 터진다.
왜 니가 자는 방에는 먼지가 수북하냐는 것이다.
손바닥으로 바닥을 쓸면 먼지 안 묻어나는 곳 있을까….
기름 묻은 식기나 조리도구를 세척할 때도 반드시 지청구가 따른다.
기름기를 제대로 씻어내지 못하였다는 잔소리다.
이젠 아예 기름기 있는 조리도구 세척은 당신이 한다며 손을 못 대게 하신다.
며느리들한테는 잔소리 한마디 안 하면서 우럼니, 늙은 아들 구박하는 재미로 산다.
욕실 청소도 어머니가 하신다.
미끄럼 방지 고무판을 걷어내고 타일 바닥을 세척하면서 어김없이 지청구를 하신다.
왜 욕실을 더럽게 쓰냐는 것인데 사사건건 어머니의 지청구가 나는 좀 억울하다.
60 중반 넘은 아들이 어려운 회사를 직원들에게 맡긴 채 당신과 함께한 것으로도 기특하게 생각해주셔야 하는데 93세 우럼니에게는 그것도 개털이다.
물론, 어머니의 속마음은 전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욕실에는 어머니가 수건을 단정하게 개어 차곡차곡 쌓아두셨다.
아파트도 아닌 시골집에서 노인네가 너무 깔끔 떠시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그것을 볼 때마다 나는 새 수건을 꺼내기 죄송해서 수건 한 장을 며칠씩 쓴다.
냄새나도록 수건을 쓴다며 으레 또 어머니의 잔소리가 따른다.
꺼내기 아까울 정도로, 늙은 엄마가 정리해 둔 욕실 수건도 이삼일이면 없어질 때가 있다.
결혼한 조카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내려올 때이다.
아이들이 떠나고 나면 욕실에는 다시 수건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어머니는 약간 스타 기질이 있다.
외출을 할 때면 지금도 핸드백을 메고 나가시는 93세 시골 노인네, 내가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이대면 바로 자세를 바로잡고 표정 관리를 하신다.
그럴 때마다 93세 어머니가 귀엽다.
작년에 MBN 휴먼다큐 '사노라면'을 촬영할 때도, KBS 2TV '엄마의 밥상'을 촬영할 때도, 방송 섭외가 들어왔다고 하자, 늙은 애미 망신시킬 일 있냐며 민망할 정도로 화를 내시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카메라를 들이대니 아들은 뒷전이었다.
훗날 슬픈 이명으로 따라붙을 어머니의 지청구들이 오히려 나를 든든하게 한다. 어머니의 지청구에서 당신의 꼬장꼬장한 기운을 느끼기 때문이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니 어머니의 지청구를 들으러 어서 내려가야 하는데 애옥살림, 서울살이가 발목을 잡는다.
오늘도 밤늦게까지 사무실을 지킬 아들이 걱정된 어머니가 전화를 하신다.
"밥 무겄냐“
'순쳔역 광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