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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급여 신청한 날

한국 나이 서른셋을 앞둔 한 취준생 이야기 (2)

by 권태엽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고용복지센터를 방문했다. 최종면접에서 떨어진 후 단 하루 만의 일이다. 약 1년 반만에 또다시 실업급여 신청이다. 한때는 직장을 다니며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던 내가 이제는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서류를 작성하고 줄을 서고 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용센터로 향하는 길에 바쁘게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을 마주쳤다. 말끔한 오피스룩에 커피를 들고 떠들며 걷는 사람들. 그들 사이에서 나의 모습이 왠지 처량하게 느껴졌다. 한때는 나도 저들의 일부였다. 아침 일찍 출근하며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돌아다니던 그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 사이에서 이방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고용복지센터에 가면 언제나 묘한 기분이 든다. 누구도 말하지 않지만, 모두가 비슷한 이유로 이곳에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줄을 서서 기다리며 주변 사람들을 살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각자의 사연이 있겠지만, 모두가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모두는 일자리를 잃었다는 것이다. TV화면에서는 아주 이상적인 모습의 상담사와 수급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러나 그 밑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서류를 제출하는 이 순간에도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워크넷에 새로 구직신청을 할 때가 특히 그러하다. 내 나이, 경력, 그리고 대부분의 실패의 이력들이 다시금 떠오른다.

절차를 마치고 고용센터를 나섰다. 밖에서는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내 인생은 다시 제로베이스에서 시작인데 세상은 어떤 문제도 없는 듯 잘 흘러가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의 문구가 있다.

'내가 가진 모순은 견디는 삶에 대한 게 아니야. 그렇게 많은 걸 포기하고 선택한 삶인데도 마음껏 정열적으로 살아낼 수 없다는 게 억울한 거지.'

안보윤 <알마의 숲>


지금껏 살면서 수없이 많은 걸 포기해왔다. 생계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수많은 핑계들을 위해서. 그런데 그렇게 많이 포기하고 살면서도 정작 한 순간도 제대로 살아보지 못했다.


이 세상에서 나는 또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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