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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태엽 May 11. 2020

이야기의 영업비밀; 핵심 소재

20.05.10. 왜 나는 쓰고 있는 이야기를 타인에게 말 안 할까.

 5월 7일에는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않았다. 그때는 다른 글을 썼다. 소설이다. 사실 오늘도 그걸 계속 쓰려고 했는데 이게 초기 단계에서 조금 막히고 있어서 이 새벽에 여기다 글을 쓰고 있다.


 어릴 때부터 글 쓰는 직업을 가지고 싶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이야기를 만드는 거, 물론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좋지만 소설가나 영화감독처럼 스토리텔링에 더 관심을 가졌었다. 영화감독은 연출만 하는 거 아니냐 하는데 우리나라는 감독이 시나리오까지 다 쓰는 게 일반적이지 않나. 

 그래서 성인이 되고 제대한 후에 시나리오 워크샵이나 평생교육원 같은 데를 다니면서 시나리오를 배웠다. 영화 쪽에 더 관심이 많았으니까. 그러나 내가 배운 건 단순히 시나리오에만 한정되지 않는 스토리텔링의 영역이어서 소설이나 시나리오 어느 쪽에도 유용했다. 관련 책도 많이 읽고 이야기 분석도 하고. 말하자면 끝이 없는데 내가 전문가는 아니니까 여기까지만.

 예전에는 쓰고 있는 이야기에 대해 극히 소수지만 다양한 연령대의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 말해줬었다. 또 워크샵이나 평생교육원 수업 자체가 본인이 써온 시나리오 가지고 피드백을 받는 구조이기도 했고. 그러다가 최근 들어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게 됐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는 아니고... 어차피 전에도 거의 없었다.

 일단 '설명하기 귀찮아서'라는 이유는 빼고 주요 원인으로 2가지가 있다. 쓰고 있는 이야기에 대해 말하고 설명하는 경우는 나 자신이 그 이야기에 빠져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하다 보면 그것 때문에 이야기에 대한 흥미나 열정이 빨리 닳게 된다. 글로 써야 하는 내용을 말로 미리 써버리니까 정작 글을 쓰는 그 지리한 과정에서 에너지가 잘 안 나게 되고, 그 사이에 또 다른 게 생각나는 거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시인과 도둑>(이문열 작가)이란 책의 내용이랑 비슷한 맥락이다(이 설명은 다음에 기회가 있을 때 하기로).

 <7년의 밤>을 쓴 정유정 작가는 초고는 되도록 3개월 안에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야기에는 유효기간이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마음과 열망이 줄어들기 때문에. 그래서 말이 되든 안 되든 일단 초고를 빨리 완성을 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영화 <더 랍스터> 포스터

 그리고 두 번째는 '아이디어'만큼 도둑맞기 쉬운 것도, 도둑맞은 것을 그걸 증명하기 어려운 것도 없다. 물론 모든 이야기에서 내용이나 문체, 이야기 구성이 중요하긴 하지만 어떤 이야기는 이야기를 이루는 메인 아이디어, 소재 자체가 핵심이다. 예를 들면 <더 랍스터>는 연인이 되려면 둘이 서로 비슷한 요소가 있어야 하고, 연인이 없는 사람은 동물이 된다는 설정이 영화를 이뤄가는 핵심이다.

 어차피 이야기는 이야기 자체로만 보면 큰 구성이나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일정 부류로 나눠지게 된다. 흔히 우리나라 드라마는 경찰이 나오던, 의사가 나오던, 회사 간부가 나오던 결국 다 연애물로 귀결된다고 하는데 사실 크게 보면 이것도 이 이유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차피 비슷한 사랑 이야기라도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사용하는 소재가 차이를 만든다.

 여기서 더 깊이 들어가 보겠다. 영화 <인타임>은 통제된 미래 배경에 빈부격차, 계급갈등과 이를 타파하려는 주인공이라는 많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다루는 내용을 다룬다. 그런데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시간(수명)=돈'이라는 기가 막힌 설정 때문이다. 비록 역대급 소재를 가지고도 정말 구린 스토리로 아쉬운 평가를 받았고 흥행도 아쉬웠지만 이 소재를 이용한 영화는 아무리 이야기와 연출이 좋아도 리메이크가 아닌 이상 나오기가 힘들다. 이미 '시간=돈'이란 소재를 <인타임>이 먼저 썼으니 그 소재의 오리지널리티도 <인타임> 것이다. 그 이후에 비슷한 소재가 나오더라도 표절 논란에 휩싸이거나 아류가 될 뿐이다.

 내가 친구들을 못 믿고, 주위에 도둑놈밖에 없어서 이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다만 내가 준비하는 어떤 이야기 자체는 그 소재 자체가 핵심이라 누가 그걸 가지고 이야기를 써버리면 다른 내용이라도 내가 쓸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그런 아이디어는 진짜 쉽게 흘러나간다. 예를 들어 내가 글 쓰는 아는 사람에게 이 얘기를 하고 다른 사람에게 내용을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 사람이 다른 사람과 말하면서 "내가 아는 누구는 이런 글 쓴다더라"라는 간단한 말로도 아이디어는 퍼지게 되는 거다. 정작 스토리는 말을 안 해도 '이런'만으로도 어떤 이야기를 만들지 대충 감이 오니까. 그리고 난 내 역량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날 자신도, 최대한 빨리 이야기들을 내놓을 자신도 없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들은 정말 아이디어가 기가 막혀서 누구 붙잡고 말하고 싶어도 꾹 입 닫고 말 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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