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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태엽 Dec 14. 2020

<맹크>, 그리고 오손 웰즈와 <시민 케인>이라는 신화

영화 <맹크>, 그리고 오손 웰즈라는 영웅 신화

RKO 픽처스에서 허스트로 무럭무럭 성장해가는 넷플릭스에서 만든 <맹크>를 봤다(창작 과정에 간섭하지 않고 자유를 주면서 재능 있는 감독들을 데려오는 거 넷플릭스가 하던 건데?).


<맹크>는 분명 좋은 영화다. 그러나 결국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좌절하는 룸펜 지식인의 조금은 뻔한 이야기로 귀결된다. 감독이 데이빗 핀처이기에 기대감에 비해 더 아쉽다. 오손 웰즈에 대한 묘사 또한 이제는 나이를 먹고 성숙한 천재 감독 핀처가 젊은 날을 되돌아보며 "그래, 젊은 놈(오손 웰즈)이 알면 얼마나 알았겠니."라고 말하는 것 같다.


사실 <맹크>와 그 주인공 허먼 맹키위츠 말고, 이 글에선 그보다 더 중요한 <시민 케인>과 오손 웰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바쳐야 하듯, <시민 케인>은 오롯이 오손 웰즈의 것이 돼야 한다.

<시민 케인>이 오늘날까지 걸작으로 칭송받는 이유가 살아있는 권력을 비판하는 영화를 여러 정치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완성해서일까. <맹크>에서는 영어권 관객이면 누구나 <시민 케인>이 누구(윌리엄 랜돌프 허스트) 얘기를 하는 건지 알 거라고 한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찰스 케인에서 허스트를 보지 못한다. 아니, 당최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누구인지, 뭐하는 사람인지 아예 몰라도 영화를 보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또한 <시민 케인>은 소설이 아니라 영화다. 각본만 있으면 그냥 종이뭉치일 뿐 저절로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고로 허스트도, 각본가 허먼 맹키위츠도 <시민 케인>이라는 '영화' 자체와는 관련성이 적어진다.


앞서 더 이상 사람들이 <시민 케인>의 케인을 보고 허버트를 떠올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이제 영화에서 무엇을 볼까? 우리는 찰스 포스터 케인에서 '오손 웰즈'를 보게 된다. 케인을 연기한 배우 오손 웰즈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오손 웰즈 말이다. <시민 케인>의 신화는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영화가 오손 웰즈 본인에게 자기실현적 예언이 됨으로써 완성된다.


영화를 찍을 당시 '영앤리치 핸섬 지니어스' 찰스 포스터 케인 그 자체였던 오손 웰즈는 가장 높은 곳에서 모든 걸 가지고 시작했으나 끝없이 추락하며 가질 수 있었던 것들을 다 놓치게 되는 '시민 웰즈'가 됐다.

이야기를 공부할 때 고대 그리스 비극은 '인간은 운명(신)을 벗어날 수 없다'는 공통된 주제 의식을 가진다고 배웠다. 그러나 그게 핵심은 아니다. 나약한 인간의 단순한 운명론적 이야기가 인기 있을 리는 없으니. 그리스 비극의 정수는 '인간은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끝까지 모든 힘을 다해 운명에 맞서 싸우며 파멸하는 영웅(인간)의 모습에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그런 점에서 오손 웰즈는 그 자신이 신화 속의 영웅이고, 그가 살아온 인생 자체가 한 편의 그리스 비극이라 할 수 있다. 웰즈는 신의 권위에 도전할 만큼의 패기와 재능을 가졌으나 그 패기와 재능이라는 자신의 하마르티아(비극적 결함)로 몰락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운명을 마주하는 그의 자세다. 그는 운명에 순응하지 않았다. 자신이 없는 사이에 영화사에서 <위대한 앰버슨가>의 결말을 멋대로 바꿔버리고, 투자자가 없어서 찍고 싶은 영화를 못 찍을 상황에 놓여도 웰즈는 좌절하지 않고 운명에 맞섰다. 오랜 시간이 걸려도 온갖 영화에 출연하면서 제작비를 마련해 어떻게든 원하는 영화를 찍었고, 영화사가 멋대로 편집한 자신의 영화를 복원하기 위해 본래의 연출 의도를 담은 구구절절한 편지를 쓰는(<악의 손길>) 등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걸작을 만들어냈다. 이 모습이 영웅의 그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를 영웅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시민 케인>은 오손 웰즈의 것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현실(운명)의 벽에 부딪혀 좌절한 나약한 지식인 허먼 맹키위츠의 것도, RKO 픽처스나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오롯이 오손 웰즈만의 것이 되어 마땅한 거다. 여긴 할리우드니까.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의 대사를 빌리자면, 전설은 전설 그대로 남아야 한다(When the Legend becomes Fact, print the Legend).

*영화 초반 맹키위츠가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큐 사인을 기다려"라는 대사를 칠 때, 딱 맞춰서 스크린에 영사기 필름 가는 표식이 처음(?) 나타난다. 이처럼 영화 곳곳에 필름 영화나 영화 역사에 대한 자잘한 포인트들이 많이 등장한다(물론 이 영화는 당연하게도 디지털카메라로 찍었다).


*극 중 웰즈가 전화상으로 계속 언급하는 <어둠의 심연>은 결국 웰즈가 만들지 못했다. 이 프로젝트는 몇십 년 후 오손 웰즈 이상 가는 영향력을 자랑하던 젊은 감독의 손에 완성됐다. 그러나 웰즈에게 <시민 케인>이 그랬던 것처럼, 이 젊은 감독 이 함께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 영화가 바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이다.


*넷플릭스가 유독 오손 웰즈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차라리 오손 웰즈를 주인공으로 다루는 영화나 다큐를 만들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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