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토마스 앤더슨의 작품 세계에 관해 정리해놓은 글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누가 내 결핍을 채워줄까? -영화 <마스터> 리뷰
영화 <리코리쉬 피자> 포스터 폴 토마스 앤더슨(이하 PTA)이 조금 달라졌다. 전작 <팬텀스레드>에서 지독하기 짝이 없는 로맨스(혹은 사육)를 보여주던 양반이 전혀 다른 결을 가진 영화를 가지고 왔다.
PTA 영화의 남자 주인공은 여전히 불완전하고 철없지만 더 이상 대체 아버지상을 갈구하거나 모성 콤플렉스에 갇혀있지 않다. 베트남전 철수와 오일쇼크 등으로 인한 경제위기, 워터게이트 사건 등으로 혼란했던 시대를 다루고 있지만 그전의 영화들과 다르게 시대상을 크게 부각하지도 않는다. 개리 발렌타인의 욕망은 트라우마나 결핍에서 나온 게 아니라 그저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바이며 그것은 아메리칸드림에 가깝다. 그는 자신이 욕망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그걸 딱히 숨기지도 않는다. 어떻게 보면 PTA 영화의 모든 캐릭터 중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미국스러운 인물인 셈이다(아마 그 정반대에 있는 미국의 맨얼굴 같은 인물이 <데어 윌 비 블러드>의 다니엘 플레인뷰가 아닐까).
PTA는 기어이 자신의 페르소나의 빈자리를 그의 아들로 채우는 데 성공한다. 다만 이 재기 넘치는 소년의 얼굴에 아버지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너무 담겨있어 슬퍼지기도 한다. 물론 그게 마냥 좋다는 건 절대 아니다. 개리는 만나는 여러 여자에게 핸드잡을 요구하고 왜 자기한텐 가슴을 안 보여주냐고 떼쓰기도 하고, 오일쇼크로 자신이 하는 물침대 사업이 망하게 생겼는데 비닐에 석유가 필요한지도 몰랐고, 그 와중에 신문에서 성인영화 광고와 '딥쓰롯' 같은 문구만 찾아내는 모질이다. 다만 흔하디흔한 술이나 마약에 중독되거나, 혼란한 세상 속에서 사이비에 빠지지도 않고, 청각장애인 아들 앞에서 손수건으로 얼굴 가리고 욕을 하거나, 분노조절장애로 아무 죄 없는 식당 화장실 문을 박살 낸다거나, 나이 50 먹고 아플 때 유아기로 퇴행해 엄마를 찾지는 않을 뿐이다. 거기에 10살 많은 연상한테 구김 없이 능글맞게 들이대고, 아역배우로 한물가고 야심 차게 시작한 사업을 말아먹었어도 결코 좌절하지 않으며, 정치인의 PR 영상을 찍다가 핀볼 합법화 소식을 엿듣고 곧바로 핀볼 머신을 주문하는 사업수완도 있다. 게다가 겨우 15살이다. 다시 보니 개리는 선녀가 아닌가?
라고 하기엔 알라나 케인은 스물다섯인지 스물여덟인지 확실치 않지만 아무튼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 인생의 방향성은 아직 정하지 못했기에 개리의 보호자 겸 매니저나 하며 지낼 수는 없다. 그래서 개리 또래부터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성인들까지 만나는데 PTA는 주인공으론 자기가 뮤비 찍어주던 가수(록밴드 '하임'의 알라나 하임)나 친한 배우 아들(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의 아들 쿠퍼 호프만)로 캐스팅해놓고 정작 잠시 스쳐 지나가는 남자들은 숀 펜, 톰 웨이츠, 브래들리 쿠퍼 같은 사람들로 채워놓았다. 그래 놓고 PTA 세계 속 남성상들이 다 그렇듯 이들은 하나 같이 어딘가 모자란 놈들뿐이다(그놈의 개 같은 도곡산 타령).
존 피터스를 연기한 브래들리 쿠퍼는 이 짧은 등장만으로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알라나는 여태 PTA 영화들에서 항상 남자들이 맡아오던, 결핍되고 부족한 나를 이끌어줄 사람을 찾아 헤매는 역할을 맡은 셈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는 불가능하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내리막길 트럭 후진 장면이다. 오일 쇼크로 물침대 사업을 접게 된 개리와 알라나는 어쩌면 마지막 재고일 수도 있는 물침대를 존 피터스(브래들리 쿠퍼)의 집에 설치하러 간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남자친구로 헤어드레서인 존은 성격파탄에 섹스에 환장한 미친놈이다. 침대 설치하다 집을 어지르면 동생을 죽여버리겠다고 말하는 존에게 열 받은 개리는 일부러 집에 물을 틀어놓은 채로 도망간다. 그런데 이 와중에 페라리에 기름이 떨어져 다시 돌아온 존과 마주쳐 살 떨리는 동행을 하게 되고 그를 다시 따돌린 후 그의 페라리까지 박살 낸다. 그러나 페라리를 깨부수며 환호하는 개리와 달리 알라나는 사색이 된다. 자신들의 대형 트럭도 기름이 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알라나는 기름 앵꼬나서 언덕에 멈춘 초대형 트럭을 가파른 내리막길의 경사를 이용해 수십 킬로를 후진만으로 주파해낸다.
알라나는 기가 다 빠졌는데 정작 이 개고생을 하게 만든 주범인 개리는 운전도 못하고 아무것도 안 해놓고 "우리가 해냈어!" 하면서 환호한다. 이후 현타에 빠진 알라나 앞에서 개리와 동생들은 기름통으로 유사 성행위를 묘사하며 장난을 치고, 알라나 뒤로는 난데없이 기물을 파손하다가 말고 지나가는 여자들에게 들이대는 존 피터스가 지나간다. 이후 환멸이 난 알라나가 정치라는 더 높은 이상에 빠진 건 어쩌면 당연하다.
이 영화를 보고 후진 잘하는 여자로 이상형이 바뀌었다. 그러나 알라나는 대국적인 일을 한다고 믿었던 정치인 조엘 왝스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타격을 받지 않기 위해 동성 연인을 숨기고 '더 큰 일을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는 사람인 걸 알게 된다. 그리고 홀린 듯이 개리에게 돌아간다. 물론 개리도 그녀를 찾고 있었다. 아, 물론 개리는 여전히 멍청이다. 하지만 알라나는 다른 사람들한테 자신을 그의 아내라고 소리쳐대는 개리를 미친놈이라 욕하면서도 그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누구나 한 번쯤 대책 없는 몽상가와 사랑에 빠지니까. 게다가 '넌 미친놈이지만 사랑해'가 그냥 '사랑해'보다 훨씬 로맨틱하지 않나?
앞서 개리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만 적었지만 사실 알라나라고 크게 다르진 않다. 그녀는 열 살(혹은 그 이상) 어리지만 훨씬 독립적인 개리와 달리 의존적이고 스스로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한다. 이런 자기의 모습이 이상한 걸 알면서도 한참 어린 개리와 그 동생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 스스로의 만족보단 인정욕구가 더 큰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이 만나 형성하는 관계는 여타 PTA 영화 속의 다른 관계들처럼 자기파괴적이지가 않다. 개리는 알라나를 만나고 사업가로, 또 어른으로 성장해가고, 사진사 보조 알바를 하던 알라나는 개리를 만나고부터 더 큰 세상에 눈을 뜬다. 개리가 알라나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그를 통해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는 의도가 아니라 그냥 알라나를 원하기 때문이다. 알라나 또한 어딘가 결핍돼있고 트라우마나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덜 자란 남자들 대신 조금 모자라지만 찌그러지거나 모난 데 없고 꿈이 가득한 개리를 택한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서로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그들의 앞에 놓인 미래가 장밋빛만은 아니다. 언제 또 서로에게 싫증을 느끼게 될지 모른다. 알라나는 선거캠프의 선배와 만나거나 겉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또 다른 남자를 만날 수도 있고, 개리 또한 또래의 여자들이나 또 다른 연상의 여자에게 작업을 걸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끝내 다시 만날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아마 한 세 번 이혼하고, 수십 번의 이합집산을 반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흘러가는 낭만의 한순간을 필름에 담았고 관객인 우리는 그걸 들여다보고 왔으니 이 또한 낭만적이지 않은가.
*'리코리쉬 피자'는 70년대 캘리포니아 지역에 있었던 음반 가게 체인점 이름이기도 하고, LP판을 뜻하는 은어이기도 하단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개리는 '리코리쉬 피자'에서 파는 LP판에도 석유가 들어가는지 당연히 모를 거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