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내내 영혜에게 느꼈던 안타까움이 책을 덮으면서 두려움이 되었다
늦은 퇴근길에 회사 단톡방에 메시지가 하나 올라왔다. "제가 살아 있는 동안 한국에서 노벨상이 나올 줄은..." 이어진 사람들의 대화와 뉴스 기사를 보고 나는 바로 알라딘에 접속해서 책을 주문했다. 낮 시간이었다면 아마 주식도 얼른 주문했을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단순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단순하고 지루한 쳇바퀴 같은 일상에 오랜만에 문학이 한 컵 와락 쏟아졌다.
전쟁터 같은 치열한 경쟁 사회 한복판에서 키워온 나의 기민한 주문도 결코 빠른 것이 되지 못했다. 역시 우리나라는 만만한 곳이 아니다. 나는 한참의 대기를 거쳐서 주문을 했고, 책은 한참을 더 걸려서 내 손에 왔다. 웃돈을 얹혀 등록된 중고 서적이 등장하고, 한강 작가에 대한 인터뷰와 과거 방송 내용이 쏟아져 나왔다. 빠르게 반응하지만 쉽사리 깊게 들어가지 않는 것이 이 경쟁 사회의 또 다른 특징이다. 빠르게 움직이다 보니 깊이 들어갈 여유가 없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결과인듯한데, 어쨌든 나는 많은 기사나 인터뷰들을 대충 힐끗 보고 지나치며 책을 기다렸다.
마침 재미있다고 느껴진 표현은 '마음속에서 굴리고 있는 책'이다. 이 표현은 책 속 작가의 말에도 나오고 꽤나 자주 사용하시는 것 같다. Roll-out이 떠올랐다. Roll-out은 발표나 생산, 출시 등을 뜻하는데, 소프트웨어 바닥에서는 개발팀에서 굴리던 새로운 업데이트가 시스템에 적용되는 것을 뜻하곤 한다. 개발자도 작가님처럼 코드와 문서들을 굴리는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다. 그 과정은 때론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소설을 마음속에서 굴리는 시간'을 제일 좋아한다는 작가님처럼 창작의 시간을 음미하면서 즐기도 한다는 점에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을 집자마자 단숨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는데, 기이한 내용이지만 등장인물들은 너무나도 친숙한 느낌이다. 하나같이 실존하는 인물, 한 번쯤은 경험해 봤던 사람들 같은 기분이라서 더 깊게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똑같지는 않지만 영혜 같은 사람을 살면서 꽤나 많이 만나봤던 것 같다.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영혜로 묘사되는 그 인물이 갖고 있는 느낌과 생각, 행동이 그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학교에서, 회사에서 그리고 군대에서 만났던 그 사람들의 그 모습들이 생각나서 기분이 묘했다. 소설을 읽었는데, 소설 내용과 무관하게 추억 속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나는 경험을 했다.
아마 영혜가 관찰의 대상으로 나와서 그런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영혜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저 그녀의 행동과 말을 통해서 넘겨짚어 볼 수밖에 없는데, 그 과정에서 물음표가 남는다. 그리고 그 물음표까지 그대로 추억이 되어 버렸는데, 영혜는 그 추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래 그런 애가 있었지. 근데, 그때 왜 그랬을까...그때 그 애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여전히 결코 깊지 않은 의문을 남긴 채 흩어지는 추억이다.
꼭 채식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먹는 음식의 식자재가 손질되는 과정을 보고 누구나 한 번쯤은 연민 이상의 복잡한 감정을 느껴보았을 것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 너의 생명을 거두어 가야 하는 순간이 불편해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어쨌거나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그 불편함을 잊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만든다. 때때로 채식주의자는 그런 불편한 생각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건강이나 환경 문제 때문에 또는 단순히 취향 때문에 채식을 할 수도 있지만, 채식주의라는 단어가 마치 어둠을 밝히는 작은 촛불이 되어서 마음속 깊은 곳 어디쯤에서 어둠에 가려져 있던 불편함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은 채식주의자가 많이 불편하지 않은 것 같다. 불편함이라는 것 자체를 못 느낄 만큼 무뎌졌고, 채식주의라는 것도 그저 취향의 하나로 생각할 수 있을 만큼 편안한 존재로 자리 잡았기 때문인듯하다. 영혜는 갑자기 큰 깨달음을 얻은 것도 아니고, 종교적인 신념에 따른 것도 아니고 그저 꿈을 꾸고 난 뒤로 채식을 하게 되었다. 꿈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우연한 사건에 의해 채식주의자가 된 것뿐이다. 꿈에 대한 내용이 조금씩 나오지만 그 내용이 어떻다 한들 그저 영혜의 꿈일 뿐이다. 그래서 더 무서운 느낌이었다. 어느 날 내가 그런 꿈을 꾸게 된다면 어떡하나 싶은 생각에 두려운 마음으로 읽어 내려갔다. 아무도 이해해 주지 못하는 꿈을 꾸게 된다면 어쩌나.
꿈 때문에 고통을 겪으면서 생활의 변화를 갖게 된 것은 영혜에게도 힘든 일이다.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영혜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슬펐다. 남편이라는 사람, 가족이라는 존재가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저 꿈일 뿐인 것이기에 이해란 있을 수 없는 것인가, 그것이 무엇이든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이며 아픔인데 배려해 줄 수는 없는 것인가. 채식주의자라는 일반적이지 않음이, 꿈 때문에 고기를 끊고 속옷을 입지 않은 것이 이해될 수 없음으로 공격받아야 할 것인가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과 의지는 다수의 일반적인 생각에 무참히 짓밟히고 무시되는 그 순간, 가장 가까운 가족조차 나를 이해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 책을 덮은 순간 나에게 찾아온 공포이자 외로움이었다.
비폭력 대화는 '관찰 - 느낌 - 욕구 - 부탁'으로 구성되며 '판단 중지'에 중점을 두는 대화 방식이다. 미국의 교육 심리학자 마셜 로젠버그가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 자체가 폭력이라고 주장하면서 소개한 대화 방식이다. 회사에서 온라인 교육이나 리더쉽 워크숍 등에서 몇 번 접했지만 그런 게 있구나 하고 넘어갔던 내용들인데, 책을 읽고 나니 문득 비폭력 대화가 떠올랐다.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을 읽는 내내 영혜의 외로움과 왜 그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평가에서 오는 폭력성을 느꼈다.
영혜가 더 영리했다면 채식을 하면서도 가족들이나 남편 회사 동료들과 마찰 없이 지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더 영리했다면 성적 자기 의사 결정을 분명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 영리했다면 정신 병원에서 나와서 일반인처럼 자유의 몸으로 산책도 하고 나무처럼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떠올랐던 추억 속에 영혜 같은 친구들,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다. 더 영리해졌다면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고, 지금은 어디에선가 그렇게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는 내내 영혜에게 느꼈던 안타까움이 책을 덮으면서 두려움이 되었다. 내가 언젠가 영리함을 잃어버리고, 외롭게 세상과 맞서야 하게 되는 날이 오게 될까 봐. 나의 꿈이, 나의 상상과 생각이 도무지 왜 그런지 모르겠다는 것이 되어 버릴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