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 샤워

by 도시소묘

'후드득 푸우 푸'

밀가루 한 봉지. 봉투를 뜯어 스텐 볼에 훌훌 담는다.


'사락사락, 스스슥 서걱석석'

소금을 넣고 물을 붓는 순간, 흰 가루와 물의 교감은 시작된다.

서걱거리는 밀가루와 물 사이를 구부정한 손가락들로 휘휘 젓는다.

물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고 겉돌며 끈적하게 달라붙는 이 질척임이 마치 내 손에 잡히지 않는 미래의 막연함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움처럼 아련하고, 회한처럼 끈적한.

"이 나이가 되도록 왜 아직도 매끄럽지 못하고 이렇게 질척거릴까?"
하는 자조 섞인 생각이 들 때, 반죽에 힘을 쓴다.


손바닥 전체로 꾹 눌러 치대고, 접고, 다시 내리친다.

'푸우욱, 픽픽!'

뽀얀 밀가루 먼지가 피어오른다.

직장에서 겪은 불쾌함, 언쟁, 논란, 소외감, 앞으로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에 대한 미래의 불안. 이 모든 고뇌를 지금, 이 순간의 반죽에 전가하는 것이다.


'찰싹 퍽, 퍽!'

이것은 오직 촉감에만 집중하게 하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반죽이 손의 온기와 악력을 이기지 못하고 서서히 단단하고 매끄러운 덩어리로 변해갈 때, 작은 승리감을 느낀다. 마치 거대한 혼돈을 질서로 바꿔낸 것만 같다. 이 쫀쫀한 탄력이야말로 쉰이 넘어 '놓치지 않고' 얻어낸 정신적인 찰기를 은유하며 마음에 고요한 무늬를 새기는 일이다.


‘휴, 이제 다 됐다.’

하지만 반죽을 냉장고에 넣어 휴지시키는 시간이 되면, 마음 한구석이 헛헛하다. 이 반죽이 쉬는 동안 내 모든 고민도 함께 숙성되어 부드럽게 풀리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나온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늘 현재를 움켜쥐지 못했다. '나중에, 나중에' 하며 오늘을 미루었고, 결국 그 '나중에'는 놓쳐버린 시간들의 후회로 남아 나를 따라다닌다. '이제부터는 오늘 하루를 온전히 살자'고 다짐했건만, 지금 이 순간에도 다시 미래의 걱정에 휩쓸려 반죽의 촉감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희미한 그림자가 슬며시 고개를 든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은 무엇이었는지, 나만의 정체성을 어떻게 지켜낼지 같은 고뇌들은 이 칼국수 반죽처럼 쉽게 완성되지 않는다. 마치 휴지가 끝난 반죽을 꺼내 다시금 치대야 할 것처럼 끈덕지고 묵직하다. 50대의 나는 여전히 내면의 밀가루를 치대고, 다듬고, 또다시 치대야 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다시 팔을 걷어붙인다. 이 '치대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완성하지 않고서는, 오늘 하루를 편안히 누일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냉장고에 쉬고 있는 반죽을 꺼낸다. 휴식이 끝난 반죽을 밀대로 밀어 넓고 평평하게 펼치며시각적 위안을 얻는다. 얇게 확장된 흰 반죽 위에 칼을 들고 정갈하게 썰어낼 때의 단호함은 현실에서 내릴 수 없는 수많은 복잡한 결정들을 대신하는 듯하다.


'사각, 사각 석 석'

소리와 함께 얇은 반죽이 가지런히 포개지는 면발이 된 모습을 볼 때, 잠시나마 마음의 질서를 획득한다. 마치 눈꽃처럼 뽀얗게 쌓이는 이 규칙성의 아름다움이야말로, 통제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스스로 '현재'를 통제하여 만들어낸 작은 완벽함이다.

이제 육수를 끓이고 면을 넣어 '보글보글' 끓여낸다.


"후륵, 후르륵"

육수가 끓어오르며 냄비 안은 작은 폭풍이 시작된다. 면발은 뜨거운 물 속에서 춤을 추고, 굵은 면발들이 서로 부딪치며 소리를 낸다. 이 역동적인 끓임의 장면은 잠시 멈추었던 심장을 다시 뛰게 하고, '지금' 눈앞의 생생한 현실에 집중하게 한다. 이것은 진실한 삶의 숨결이다.


‘호로록, 후후~하’

잘 익은 칼국수를 한 그릇 들이킬 때, 뜨끈한 국물은 몸속 깊은 곳까지 온기를 전한다. 혈액 순환이 되는 듯 온몸이 풀리고, 탄수화물의 포만감은 뇌에 가장 정확한 안도감을 선사한다. '오늘 하루, 이 험난한 세상에서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스스로를 이만큼 든든하게 먹였다'는 자족감. 이 근원적인 안심이 나를 내일로 안내한다.


부엌 여기저기 흩어지고 어지럽혀진 밀가루의 흔적은 한 봉지의 밀가루를 칼국수로 변신시키기 위한 사투의 흔적이다. 손수 빚어 만든 칼국수 한 그릇은 스스로에게 내리는 처방전이다. 불안을 치대고, 고뇌를 끓여낸 뒤 얻은 이 뜨거운 칼국수 샤워 덕에 내일 아침 다시 일상으로 걸어 나갈 힘을 얻는다.


흰 밀가루의 뜨거운 포옹은 삶을 살아내는 용기를 선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