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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ortbus Feb 08. 2023

'전형적인' 성폭력 & 2차 가해는 없다.

: 성폭력 피해자 역시 극복해야 할 고정관념

나는 잘 살고 있다. 여전히.

2023년 새해의 목표는 5시경에 기상하여 하루를 힘 있게 시작하는 미라클 모닝이었고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작년 한 해, 정확히는 3월 초에 성추행 가해자를 고소하면서 시작된 싸움은 내가 조직의 리더에 의해 조직에서 배제되는 2차 가해로 이어졌고 12월 중순에야 매듭이 지어졌다. 이 바닥에 있다보면, 살면서 그들에 대해 들을 것이고 어쩌면 만날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나름 홀가분하며 더 이상 그들에게 나의 에너지와 시간, 나의 인생을 소모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약 두 달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나름 차분해진 정신상태로 나의 사건을 반추하여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전형적인' 성폭력, 그리고 '전형적인' 2차 가해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성폭력이라 하면, 

순수한(?) 피해자가 어두운 거리 혹은 공간에서 무자비하고 거친 (일면식 없던) 가해자에 의해, 저항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입게 되고, 피해자는 곧바로 경찰서나 관련 기관에 신고를 하며,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 트라우마로 인해 일상이 망가지는 것.


또한 2차 가해라고 하면,

아주 무식하고 잔인한 사람들이 피해자를 모욕하거나, 피해자의 신상을 공개해 버리거나, 가해자를 노골적으로 옹호하며 피해자를 비난하는 그런 행위들을 떠올린다.


물론 이런 성폭력, 2차 가해를 당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 전 뉴스와 기사에서도 나왔듯이, 성폭력 피해자의 30% 이상이 지인에게 피해를 입은 미성년자라는 사실, 협박이나 신체적 폭력 없이 성폭력을 당하는 피해자가 약 90%라는 사실, 성폭력 피해 이후 몇 달 혹은 몇 년이 지난 이후에야 겨우 스스로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행동에 나서는 사람들의 존재 등.. '일반적' 또는 '전형적'이라고 생각되는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무수한 사례들이 진짜 일반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일반적', '전형적' 혹은 '정상적'이란 말을 경계한다. 그 말 뒤에 남겨진 무수한 사례들은 '비정상적' 또는 '이상한' 등의 꼬리표가 붙고 의심받고 배제되기 때문이다.



우리 삶을 한번 보자. 독특하지 않은 삶이 어디 있는가. 모두 자기 자신이 주인공인 각자의 역사책을 써 가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우리 모두의 외모가 다 다르듯이,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각자의 성격대로, 각자의 경험에 비추어, 각자의 대처 방식으로, 각자의 선호에 따라, 각자가 처한 상황과 조건에 따라 그 문제의 무게를 덜기 위해 애쓰며 살아가지 않는가?


그렇다면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역시, 성폭력 가해자의 특성, 가해자와의 이전 관계, 가해자의 지인과의 관계, 성폭력이 발생한 맥락, 성폭력의 정도, 성폭력의 특성, 성폭력 발생의 시간적 공간적 특성 등등이 다 다른데 어떻게 '전형적'인 성폭력이 있을 수 있을까?


2차 가해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같은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공유하던 사람들이 2차 가해를 했을 때, 2차 가해자의 특성, 연령, 피해자와의 관계, 이전의 교류, 개인적으로 주고받던 감정, 앞으로 피해자에게 미칠 영향력, 2차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얽혀있는 다른 인간관계들 등등이 다 다르다, 어떻게 '전형적'인 2차 가해가 있을 수 있을까?


전형적인 가해가 존재하기 어렵다면 전형적인 피해자의 대응도 있을 수 없다.

어떤 피해자는 피해 발생 이후 곧바로 저항하고 고소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고, 또 어떤 피해자는 그렇지 못할 것이다. 의도적으로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2차 가해를 모른척하고 참는 것이 피해자에게 유리한 상황이 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고 바로 항의하고 대책을 세워야만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피해 이후의 어려움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성폭력이나 2차 가해의 가해자를 마냥 미워할 수 있는 피해자도 있을 것이고, 그들과의 복잡한 관계 및 감정 때문에 더 복합적인 감정적 어려움을 겪는 피해자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정리하게 된 이유는,

나 역시 상황을 모면해 보고자 격렬한 저항없이, 아니 오히려 유하게 대응하는 과정에서 성추행을 당했고, 그래서 그 이후 나 스스로를 비난했었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었고, 9개월 동안 신고하지 않았/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나를 조직에서 배제한 2차 가해 역시 내가 많이 좋아했고, 신뢰했고, 친했던,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교류할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에 의한 것이었고, 사건 발생 초기에 '그들이 감당할수 있을만큼'이지만, 어쨌든 나를 도와주고자 노력한 것을 내가 알고 있었다. 내게 거친 언어나 노골적인 비난을 한 것이 아니라 나름 '교양'있는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오히려 2차 가해가 직접적인 성추행보다 나를 더 고통스럽게 하는 경험을 했다.


따라서 내가 가해자로 지목한 자와 2차 가해로 항의한 사람들은 나름의 '억울함(?)'을 호소할 수도 있다. 자신들은 '전형적'인 가해자가 아니니까.


....

그래도 성폭력은 성폭력이다.

그래도 2차 가해는 2차 가해이다.


내 경험과 판단, 응과 행동이 '전형적'이지 않다고 해도, 한때 내가 입은 피해를 스스로 덮으려 했다고 해도, 내가 법 앞에서 졌다고 해도, 내가 독하게 2차 가해에 항의해서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고 해도.

성폭력은 원래 그런 것이니까.


그래서 피해자인 나는 (피해자이지만,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이기 때문에... 수식어가 뭐가 되었든),

오늘도 미라클 모닝을 실천했고, 치마를 입었고, 밥을 많이 먹었고, 달달한 디저트도 빼놓지 않았고, 옆의 동료와 웃으며 수다를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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