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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ortbus Feb 22. 2023

회사에서 욕먹던 그녀, 성폭력 피해자였다.

: 그녀가 30년 전을 사는 이유

내가 다니는 직장에 퇴직을 얼마 앞둔 그녀는 나의 상사 중 한 명이다.

내가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료들은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내게 해 줬다. 좀... '이상하다'라고.

사람들과 교류를 전혀 하지 않고 지내며 시대착오적인 생각과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나도 입사하고 몇 달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그녀를 만났는데... 당황했었다.


그녀는 마치 타임슬립을 하여 30년 전을 사는 사람처럼 자신의 젊은 시절의 얘기만 하였고 심지어 다른 사람의 말을 끊고 자신의 얘기를 하곤 하였다. 그런데 그것은 권위적인 행위가 아니었다. 마치 자기중심적인 어린아이가 계속 자기가 말하고 싶은 주제에매달리는 것처럼 보였고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아 보였다.


동료들의 말처럼 그녀는 사고방식도 아주 낡았다. 예를 들어, 그녀가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묻는 것이 출신 대학이다. 그리고는 나이를 묻고 결혼 여부를 묻고... 식이다. 남존여비에 기반한 발언을 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그녀의 이런 접근 방식에 대해 불평하는 정도에서 그칠 수도 있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은 불쾌해하고 또 그녀와 말을 섞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그녀는 어쩌다가 직장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은근한 따돌림을 당한다. 그럴 때는 머리카락의 절반이 회색일 만큼 나이가 든 그녀이지만 그저 어색하지 않은 척 노력하는 어색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나는 그런 모습이 조금 짠하여 그녀의 말에 대응을 해 주곤 하였다. 그러나 역시 그녀가 부담스럽고 불편한 건 사실이었다.


그녀의 레퍼토리는 거의 매번 그녀의 20대 때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자신이 대학원에 진학할 무렵 누가 자신을 갑자기 공격하는 큰 사고를 당했다고, 그 뒤로 기억이 일부 사라졌었다고, 지금까지도 그때의 정신적 후유증으로 병원에 종종 가고 약을 받기도 하고, 며칠간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등 사고 이후의 자신의 문제에 대해 약간은 수다스럽고 주책맞게, 조각조각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자꾸 그런 말을 하면 듣는 사람 당황한다고 그녀를 말리기도 하는데 그녀는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내 눈에 그녀는 30년 전에 냉동된 냉동인간, 이제 막 해동되어 변해버린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런 그녀를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누구는 그녀가 학벌을 너무 따져서 싫다 하고,

누구는 그녀가 너무 시대착오적이어서 싫다 하고,

누구는 그녀가 일을 책임감 있게 하지 않아서 싫다고 하고,

누구는 그녀가 폐쇄적이라서 싫다고 하고,

누구는 이런 그녀의 특성들이 골고루 다 싫다고 한다.

또 누군가는 그녀가 결혼 경험이 없는 독신인 데다가 단절된 삶을 살아서 저렇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난 그녀를 '나쁜 사람'이기보다는 '아픈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곤 했었으나, 나 역시 위의 몇몇의 이유로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고, 특히 학벌을 따지는 부분은 비웃기도 했다.


그런데 그녀가 지난주부터 자꾸 밥을 같이 먹자고 하는 것이다. 밥 먹는 내내 그녀의 30년 전 이야기를 맞장구치며  것을 생각하니 심히 부담스러웠다.



결국 그녀와 점심을 같이 먹었다.

예상한 바와 같이 한 시간이 넘도록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사회생활을 했지만... 내용은 예상에서 벗어났다.


그녀가 집착하던 그녀의 20대는, 그녀가 자신을 무섭도록 쫓아다니던 한 남성에게 성폭력을 당했고, 그 과정에서 며칠간 깨어나지 못할 정도로 머리를 심하게 맞았고, 그 여파로 정신적 육체적인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했고, 준비하던 시험을 포기해야만 했고, 자신과 조심스레 마음을 나누던 다른 남성과 이루어지지 못했던 가장 아픈 시기였다.

.....



왜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필 나에게 는지 잘은 모르겠으나,

그리고 앞으로도 그녀는 직장에서 변함없이 따돌림대상이겠지만,

이제 나는 그녀를 비웃지는 못할것 같다.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그녀를 좋아하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비웃지는 못할 것이다.



그녀의 말,


"그 일이 있고 나서 그 사람과 결혼하려 했어요. 그때는 그래야 하는 줄 알아서. 그런데 다치고 나서 내가 자꾸 미친 사람처럼 이상한 말을 하고 반복적으로 병원에 입원하니까 결국 그 사람이 연락을 끊더라고요."


"사람들이 그런 건 강간이 아니라고 해서 나도 내 탓만 했었지... (약 25년이 지난 뒤)... 내가 의사 앞에서 눈물을 펑펑 흘리며 얘기했어요. "그건 강간이었어요""

...


어쩌면 그녀는 홀로 30년 전 시간에 혀서 계속 외쳐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 얘기를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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