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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들로 Jun 01. 2018

혼자 떨어져도 가족이란 중력이 있기에 <그래비티>

혼영일년 5月 : 혼자서 알게 된 가족 5

2010년 <아바타> 성공 이후, 3D 열풍이 불었다. 수많은 신작들이 3D 신기술을 입혀 개봉했으며, <스타워즈> 같은 2D 명작들도 3D 재개봉으로 이어졌다. 21세기 영화 산업의 새로운 장이 열린 듯했다.  


그런데 3D 영화들은 실망스러웠다. 3D는 관객을 등장인물에 몰입시키고 영화 속 세계를 체험케 하는 기술이다. 즉, 영화 주인공이 되는 체험을 선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3D 영화들은 단순한 눈요기로 3D를 소비할 뿐, 내용상으로는 굳이 3D로 체험할 필요가 없는 영화들이었다. 극장을 나서면 눈만 피곤했다. 


그랬던 내게 <그래비티>는 가장 경이로운 체험을 선사했다. 

줄곧 혼자 살았던 내가 진정 혼자가 되는 체험이었다. 

  

<그래비티> 줄거리는 단순하다. 우주 망원경을 수리하던 라이언(산드라 블록)과 코왈스키(조지 클루니)가 인공위성 파편에 부딪혀 조난당하고 이후 지구로 귀환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유려한 롱테이크와 시각효과로 우주 재난을 체험할 수 있다. 그런데 <그래비티>는 단순한 재난 무비가 아니다. 혼자가 된 인간이 끝내 인간이기를 도전하는 인간 체험 영화다.  


라이언은 지구로부터 멀어지려 한다. 어린 딸이 죽은 후 사람들을 피했던 그녀는 직장 퇴근길에도 멘트 없는 음악방송만 듣는다. 우주에 지원한 이유도 사람과의 만남을 피해 홀로 떠돌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라이언을 지구로 이끄는 건 코왈스키다. 고립된 라이언을 가느다란 줄로 연결하니 비로소 인간(人間)이 된다. 죽음과도 같은 우주 진공을 채우는 것은 코왈스키의 대화다. 코왈스키가 실없는 농담을 라이언에게 건네는 이유는 사람 사이의 대화를 통해 인간으로서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시키기 위함이다. 

지구로부터 멀어지려는 라이언의 원심력이 지구로 끌어당기는 코왈스키의 구심력에 의해 상쇄되는 순간이다. 


코왈스키가 떠나고 결국 홀로 남겨진 라이언은 중국의 한 남자와 교신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그녀가 들을 수 있는 건 한 가정의 평화로운 일상이다. 개 짖는 소리, 아기 울음소리, 그리고 아기를 달래는 아빠의 다정한 자장가... 감정이 메말랐던 라이언은 지구로부터 들려온 생명의 소리를 듣고 그제야 울음을 터트린다. 딸의 죽음 후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라이언이 혼자를 택했지만, 사실 그녀도 인간이 그리웠던 것이다. 


삶과 죽음은 자연의 거대한 섭리여서 예측 불가능하다. 

술래잡기하던 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그 누가 예상하며, 우주 파편에 맞은 동료를 어찌할 수 있을까. 시속 수만 킬로미터로 다가오는 인공위성에 대항할 방법은 없다. 인간은 그저 자연의 섭리를 묵묵히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한에서 대처할 뿐이다. 삶과 죽음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래서 자책할 필요는 없다.  


그래비티(Gravity). 지구가 물체를 끌어들이듯 고통에 빠진 인간을 삶으로 이끄는 중력은 바로 사랑하는 이들이 아닐까 싶다. 평소 느끼지 못하지만 나를 살아가도록 이끄는 중력의 가장 큰 원동력은 그래도 가족일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날 응원하고 기도해줄 가족 덕분에 홀로 고통 속에 살더라도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라이언이 다시 삶을 선택하는 계기는 죽은 딸에게 당당한 엄마가 되겠다는 결심이었다. 



라이언은 죽음과도 같은 우주를 벗어나 드디어 생명이 있는 지구로 귀환한다. 

양수 같은 바다를 헤엄쳐서 두 발로 걸어 대지를 밟는다. 

죽었던 라이언이 새 생명으로 태어난 순간, 나는 전율을 느꼈다.


극장을 나서면서 눈이 아프지 않았다. 

나 또한 3D 예찬론자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 비록 홀로 있더라도 언제 어디서나 가족은 이어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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