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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들로 Jul 01. 2018

혼자와 혼자가 빚은 특별한 여름  <기쿠지로의 여름>

혼영일년 6月 : 혼자서 숲에서 힐링하기 4

어느덧 초여름에서 한여름으로 초록의 페이지가 넘어간다.  

한여름 챕터를 읽을 때면 늘 떠오르는 영화가 <기쿠지로의 여름>이다.  

숲이 뿜어내는 청량한 녹음과 히사이시 조의 OST ‘Summer’가 어우러져 마치 여름 한복판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다. 이른바 한여름 낮의 꿈같은 영화다.  


<기쿠지로의 여름>의 소년 마사오는 외롭다.  

여름방학에 갈 곳 없는 소년은 오랫동안 헤어졌던 어머니를 찾아 떠난다.  

그런데 9살 소년의 여정에 52살 이웃집 아저씨(기타노 다케시)가 동행한다.  

전직 야쿠자인 아저씨는 괴팍하고 제멋대로라서 소년과 가는 곳마다 사건이다.  

경륜장에서 마사오의 찍기 덕분에 도박에 성공하고, 호텔 수영장에서는 익사할 뻔한다.  

비 오는 시골 정류장에서는 여름밤을 홀딱 새기도 한다.  

엄마를 찾는 여정에 마주친 사람들과 사건들은 외로웠던 마사오를 위한 특별한 여름이 된다.

  

사실 마사오와 아저씨는 모두 혼자다.  

아저씨는 혼자인 마사오 곁에 있으면서 결국 마사오 엄마를 찾아낸다.   

그런데 마사오 엄마는 새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살고 있다.  

마사오처럼 어린 시절 엄마에게 버림받았던 아저씨는 뒤돌아 서는 소년의 어깨를 다독인다.  

그리고 ‘천사의 종’을 건넨다.  


“힘들거나 슬플 때 종을 울리면 천사가 와서 도와준대.”


얼마 전 아버지께서 입원하셨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딱히 없었지만 휴가를 내서 아버지 옆에 붙어있었다.

나도 외로운 놈이지만 아버지도 외로운 사람이니까.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하던 아버지는 내가 곁에 있어 그런지 내심 마음이 놓이는 모양이었다.  

모처럼 아버지와 아들 두 부자의 오롯했던 시간이 익어갈 때쯤, 병실 창문 밖에서 한여름의 푸른 내음새가 흘러와 코를 찔렀다.   

문득 ‘천사의 종’이 생각났다.

  

어쩌면 천사의 종소리를 듣고 내려온 이도 실은 외로웠을 것이다.

천사의 종을 울린 이나 종소리를 듣고 내려온 이 모두 결국 외로운 사람들이다.  

외로웠던 혼자들은 천사의 종 덕분에 서로의 결핍을 채우며 둘 이상이 된다. (1+1>2)

외로운 모두에게 특별한 여름이 맺어지는 기적의 순간이다.


 

꼭 천사의 종을 울릴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내가 종소리를 듣고 내려올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가끔 내 곁에 아무도 없다고 한탄하고 기적처럼 내 옆에 누군가 나타나기를 바란다.

그런데 나만큼 외로운 사람들은 항상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한다.  

외로운 사람들이 울리는 종소리에 외로운 내가 먼저 다가가는 것,

천사의 기적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사오는 유난히도 특별했던 여름의 끝자락에 다다르자 아저씨에게 이름을 묻는다.  

그러자 아저씨는 대답한다.

“기쿠지로”

그렇다. 마사오가 울린 종소리에 내려온 기쿠지로에게도 그 해 여름의 기적이 이뤄졌다.



#. 혼자가 외로워질 때면 천사의 종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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