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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들로 Jul 10. 2018

나 홀로 파리에서 판타지하다
<미드나잇 인 파리>

혼영일년 7月 : 혼자서 즐기는 여행 2

나 홀로 여행은 여행 판타지에 제격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곳에서 낯선 체험으로 새로운 '나'가 되는 여행 판타지. 

특히 시끌벅적한 패키지여행보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 홀로 여행이 판타지 몰입에 딱이다.       

내가 경험한 최고의 판타지는 파리다. 에펠탑에서 바라본 파리 야경은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역사 한복판으로 나를 안내했다. 개성 없는 성냥갑 아파트, 경쟁하듯 치솟은 콘크리트 빌딩들이 장악한 서울과 달리 파리 건축물들은 높이를 쌓지 않고 묵묵히 역사를 쌓고 있었다. 


당시 판타지를 느끼고 싶을 때면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는 걸로 대신한다.   

루브르 박물관, 샹젤리제 거리, 개선문, 판테온, 센강 그리고 에펠탑까지 파리의 고풍스러운 명소들이 시드니 베쳇의 “Si Tu Vois Ma Mere” 색소폰 연주에 맞춰 영화 오프닝부터 흘러나온다. 시작부터 기분이 좋다. 



이어서 우디 알렌 감독은 예술의 도시 파리에 걸맞은 판타지를 시작한다.  

파리 밤거리를 배회하던 작가 길(오웬 윌슨)은 우연히 1920년대 파리를 여행한다. 순수문학에 도전하는 작가에게 순수문학의 절정인 1920년대를 체험하는 판타지가 열렸으니 얼마나 황홀할까. 길은 피츠제럴드 부부, 헤밍웨이, 피카소 등을 만나며 제대로 소원 성취한다. 또한 자신의 작품을 응원하는 여인 아드리아나(마리옹 꼬띠아르)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야말로 최고의 여행 판타지가 이뤄진 것이다.  


그런데 길과 아드리아나는 우연히 1890년대 파리에 다다른다.  

고갱, 드가가 살고 있는 1890년대는 아드리아나가 항상 꿈꿨던 시대다.  

21세기 길에게 황금시대(Golden Age)는 1920년대였지만, 막상 1920년대 아드리아나에게 황금시대는 1890년대였다. 아드리아나는 1890년대에 남지만 길은 현재로 돌아온다. 길은 깨닫는다. 

누구나 자신이 처한 현실은 힘든 법이고, 자신이 겪지 못한 과거는 미화되어 영원한 노스탤지어이자 판타지가 된다는 것을.  



여행은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는 일탈이다. 그래서 판타지다.  

여행에 머무르는 순간 여행은 판타지를 멈추고 현실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언젠가는 여행을 마치고 현실로 돌아와야만 한다.  

여행을 아름다운 판타지 그 자체로 간직하려면...


영화 속 길처럼 나도 센강을 홀로 거닐며 백 년 전 예술가들을 생각했다.  

그 순간만큼은 마치 그들이 된 듯한 판타지에 빠지고 싶었다.  

그들이 갔던 곳을 가고, 그들이 들렀던 카페에 들르고, 그들의 행적을 뒤쫓았다.  

그곳에는 루브르가 있었고 몽마르뜨가 있었고 퐁네프 다리가 있었다.  

판타지 주인공이 된 나는 파리에 걸맞은 체험을 끝냈다.  

그리고 현실로 돌아와서는 영원한 추억에 파리를 새겨 넣었다. 




#. 여행 판타지의 순간은 짧아서 그만큼 추억은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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