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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들로 Jul 15. 2018

나 홀로 로마에서 빈둥거리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혼영일년 7月 : 혼자서 즐기는 여행 3

몇 년 전 유럽에서 만난 유쾌한 이탈리아인을 기억한다.   

나는 이탈리아행 열차에 앉아 여름휴가 이후 인생 진로에 대해 고민 중이었다.  

때마침 좌석 맞은편에 한 이탈리아인이 앉았다. 부스스한 머리에 축 늘어진 티셔츠, 군데군데 구멍 난 낡은 바지. 아마도 히피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내게 말을 걸었다. 혼자 인상 찌푸리며 앉은 동양인 남성이 측은해 보였나 보다.  


영어를 못하는 그가 손짓 발짓으로 말하는 내용인즉슨, 자신은 외국인 노동자이며 이탈리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란다. 그런데 오늘 공사 중에 눈앞에 건축자재가 떨어져 죽을 뻔했다고 웃으며 얘기한다.

깜짝 놀라서 괜찮냐고 묻자 이제 집에 가서 쉬면 된다며 활짝 웃는다.

방금 전 죽을 수도 있었던 그는 정작 퇴근 후 뭐할지 행복한 고민 중이었다.    



'Dolce far niente’ (달콤한 빈둥거림)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리즈(줄리아 로버츠)는 남편 뒷바라지에 지쳐 이혼하고, 자기중심적인 애인과도 결별한다. 그렇게 공허한 삶에서 벗어나 자신을 찾으려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로마다.  


리즈는 로마에서 계속 먹는다.  

이탈리안 파스타, 로마 젤라또, 나폴리 피자, 로마를 떠나는 날엔 칠면조까지 해치운다. 살찔까봐 망설이는 친구에게 리즈는 먹을 땐 죄책감 없이 먹으라고 권한다. 오늘 피자 먹고 내일 큰 청바지를 사면 된단다.

고민 많던 리즈의 마음을 바꾼 건 현지 이탈리아인의 조언이다.  


로마에 와서 한 게 없다고 고민하는 리즈에게 이탈리아인이 일침한다.  

미국인들은 쓰러질 때까지 일하면서 막상 쉴 때는 어쩔 줄 모른다며, 즐길 때는 기쁜 마음으로 즐기라고 조언한다. Dolce far niente(돌체 파르 니엔떼, 달콤한 빈둥거림), 쉴 때 기쁜 마음으로 즐기자는 이탈리아인들의 신조다.  


바티칸 시티 앞에 있는 젤라또 가게. 수녀들도 줄 설 정도로 맛집이었다.


유쾌했던 히피 이탈리아인과 헤어지면서 ‘돌체 파르 니엔떼’가 생각났다.  

여행 중에도 여행 이후의 일을 고민했었다.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을까 아무것도 안 하는 지금이 불안했다.

그런데 정작 사고가 도사린 일터에서 퇴근하는 이탈리아인이 나보다 훨씬 행복해 보였다.

열심히 일한 그는 이제 열심히 즐길 준비 중이었다.  


나 홀로 로마 여행에서 빈둥거리기로 결심했다.

인생이란 태어나서 언젠가 죽는 것이거늘 왜 이리 불안에 떨며 살까. 내가 무얼 하고 결과가 어떻든지 시간은 흘러간다. 그저 흘러가는 시간에 내 조그만 자취를 새겨 넣으면 되는 것 아닐까. 그렇게 인생에서 나만의 시간을 완성할 수 있으면 족할 것 같다.

그러다 가끔 나에게 빈둥거릴 수 있는 선물을 주면 된다. 원 없이 빈둥거릴 여행으로 열심히 일한 나를 사랑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로마에 도착해서 원 없이 먹었다.

커피 본고장에서 에스프레소를 수없이 들이켰고 길거리에서 피자도 흡입했다. 무더운 여름날, 바티칸 시티 앞에서 맛본 젤라또는 내 인생 최고의 아이스크림이었다. 이윽고 리즈가 거닐었던 천사의 성으로 향했다.

수많은 리즈들이 천사의 다리에서 해맑게 빈둥거리고 있었다.


'천사의 성'으로 이어지는 '천사의 다리'. 콜로세움이나 포로 로마노보다 낭만적이었다.



#.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그리고 빈둥거려라. Dolce far nie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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