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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들로 Jul 29. 2018

나 홀로 마테호른을 보다  <미 비포 유>

혼영일년 7月 : 혼자서 즐기는 여행 4

파라마운트가 배급한 영화에는 오프닝 엠블럼에 ‘마테호른’이 늘 등장한다.  

어린 시절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보며 삼각뿔 설산을 머리 속으로 수없이 오르내렸다. 언젠가 진짜 마테호른을 보리라 다짐하면서 말이다.    

영화 편성을 하면서 파라마운트 엠블럼이 실제 마테호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꽤나 실망했다. 그래도 내 마음속 파라마운트 설산은 마테호른이었다.     

결국 지난 7월, 마테호른을 보러 스위스 체르마트에 향했다. 어릴 적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2016년 7월, 고르너그라트에서 바라본 마테호른


휠체어에 앉은 여자, 곁에 선 남자, 그리고 우뚝 솟은 마테호른.   

마테호른이 가장 잘 보인다는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 올랐다.  

하얀 구름에 둘러싸였지만 끝내 푸른 하늘로 치솟은 마테호른의 우아한 자태는 어릴 적 꿈꿨던 상상 그 이상이었다.  

마테호른이 잘 보이는 사진 명당을 발견하고 순서를 기다리는데 한 커플이 있었다.  

휠체어를 탄 여자와 휠체어를 밀어주는 남자였다.  

해발 3,000m 풍경에 어울리지 않는 이 낯선 커플은 함께 마테호른을 보고 있었다.

나도 겨우 도착한 전망대에 남자는 어떻게 여자와 함께 마테호른에 오를 생각을 했을까.  

휠체어 커플을 보니 마치 영화 <미 비포 유>의 한 장면 같았다.


 

<미 비포 유>는 전신마비 환자 윌(샘 클라플린)과 간병인 루이자(에밀리아 클라크)의 짧은 로맨스를 그린다.

젊은 사업가로 승승장구하던 윌은 오토바이에 치여 전신마비가 된다. 때마침 일자리를 찾던 루이자가 윌의 간병인이 된다. 루이자는 존엄사를 선택한 윌의 마지막 6개월 동안 윌의 마음을 돌리려 애쓴다.  

 

<미 비포 유>는 서로를 이해하는 영화다.

부를 얻었으나 건강을 잃은 남자, 온몸이 건강 그 자체지만 홀로 가족 생계를 책임지는 여자는 정반대 처지다. 같은 공간에서 늘 부딪치고 싸울 수밖에 없다. 그러다 같이 영화를 보며 공통의 관심사로 대화가 시작된다.

윌은 늘 밝은 루이자가 실은 돈을 벌기 위해 씩씩해야만 했던 이유를 듣고 마음의 문을 연다.

루이자 또한 과거 건강했던 윌의 영상을 보며 현재 윌의 심정을 이해한다.

루이자가 생일선물로 범블비 스타킹을 받고 환호한 이유도 윌이 루이자의 말을 듣고 있었던 덕분이다.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 둘은 함께 버킷리스트 여행을 떠난다.  


<미 비포 유>는 서로가 끝내 다른 존재임을 발견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전신이 굳어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남자의 마음을 그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루이자가 아무리 윌을 이해하려 해도 그를 진정 이해할 수는 없다. 그저 이해하려고 애쓸 따름이다.  

윌이 존엄사 결심을 바꾸지 않자 실망하는 루이자에게 루이자 아버지가 말한다.  

사람 그 자체를 바꿀 수는 없으며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이라고...

 

사랑은 다름을 인정하면서 비로소 깊어지는 것 같다.

'나'는 '너'가 될 수 없다. '너' 또한 '나'가 될 수 없다.   

서로가 다른 존재라는 진리를 인정하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모습이 중요한 것 같다.   

상대를 바꾸려는 인위적인 노력보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성의가 더 애틋한 법이다.     

결국 루이자는 비록 존엄사에 동의하지 않지만, 존엄사를 선택한 윌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한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이미 깊은 사랑이리라.


마테호른을 바라보는 휠체어 커플


남자는 여자를 이끌고 마테호른이 보이는 정상 전망대에 올랐다.

남자는 힘겨워 보였지만 여자에게 어떤 내색이나 간섭도 않는 듯했다.  

서로 대화를 하고는 각자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서서 보는 풍경과 휠체어에서 보는 풍경은 다르다.

서로 다르다는 진리를 알고 각자의 공간을 존중하는 커플은 참 다정해 보였다.   

커플이 때로는 따로, 때로는 같이 마테호른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눈에는 마테호른이 이 우아한 커플을 지켜보는 것처럼 보였다.

  



#. 이제 파라마운트 영화를 보면 마테호른과 함께 어느 커플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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