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14
계절은 삼춘을 두고 떠난다. 두 봄 한가운데다. 지나간 봄도, 다가올 봄도 멀기만 하다. 그립지 않다. 발 담근 찰나가 훨씬 짧으니까. 초가을 볕은 딱따글거린다. 나들이를 나선다. 마포행 버스는 복닥거린다. 좌석을 물색한다. 바퀴 튀어나온 쪽이 비었다. 무릎을 꺾는다. 태양빛은 창을 넘고 팔뚝을 따끔따끔 꼬집는다. 몸통을 뒤튼다. 듀오링고 어플을 켠다. 프랑스어 발음한다. 옆이 찬다. 곁눈질한다. 앵글로색슨 외양이다. 길쭉한 다리를 구긴다. 영상 통화한다. 얼핏 독일어로 들린다. 광화문 앞을 지난다. 그는 휴대폰 화면을 돌리더니 창밖을 비춘다. 상대에게 보여주는 듯하다. 하루치 불어 학습이 끝난다. 말해보카를 켠다. 영단어를 복습한다. 회화를 연습한다. 우측은 조용하다. 통화가 끝난 모양이다. 시선이 느껴진다. 느닷없이 척, 왼손 엄지를 치켜든다. 고개를 돌린다. 발음이 훌륭하다 칭찬한다. 고맙다고 눈짓한다. 마저 공부한다. 분량을 마친다. 뻔한 질문으로 물꼬를 튼다. 어디서 오셨어요?
교통은 더디 흐른다. 대화는 버스를 앞지른다. 짧은 시간 다양한 정보를 얻는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출신 서강대학교 교환학생이다. 월드컵경기장 축구 시합 보러 나선 길이다. 잇따른 주제는 여행이다. 빛바랜 이탈리아를 끄집어낸다. 경탄한다. 유러피안이 인정한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조국도 아닌데 벅찬다. 네덜란드는 어떠한지 묻는다. 시큰둥하다. 여느 시민도 자국은 재미없는 모양이다. 그도 불어를 배웠다. 장난삼아 인사말을 주고받는다. Salut, comment ca va? Ca va bien, merci. 한국어를 알려 달라 한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정도만 안다고. 무슨 문장이 적절할지 고민한다. 하루는 좋으면 좋으니 좋은 하루 돼라 말한다. 좋은 하루 되세요. Have a nice day. 갸우뚱한다. 웅얼웅얼 따라 한다. 다시 발음해 달라고 요청한다. 나름대로 암기법을 만든다. 존 할 디씨오 John Harr DCO. 재미있고 기특하다. 정류장에 다다른다. 응원 유니폼 입은 무리가 우르르 내린다. 그는 존 할 디씨오, 인사하며 하차한다. 미소 짓는다. 여운이 남는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밖에 모르는 타지 생활하는 상상한다. 좋은 삶은 가진 것을 충분히 즐기는 데 있다 믿으면서도, 해외에 살고 싶은 욕망은 무럭무럭 자란다. 판판한 공원 산책하기 평이한 도시에서, 트램 옆자리 현지인에게 인사를 배우면 암기하고 싶다.
240310
1. 바야흐로 삼춘의 계절… 나들이 가자!
2. 좋은 삶은 가진 걸 늘리는 게 아니라 이미 가진 걸 충분히 즐기는 데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