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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현의 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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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혜 Jul 12. 2024

오월

240430-0501

상냥한 서술을 시기한다. 양귀자를, 밀란 쿤데라를 애정하는 현재로선 필치 좇기 십상이다. 문장에 단어가 밀하다. 일편 표독스럽다. 어떻게 사근사근 전개할까. 호흡을 연습한다.


소감을 묻더라. 기다린 염원이고 당연한 수순이라 감흥 없다. 마스크 아래서 흥건했기에 눈물 따위 말랐다. 말간 미소만 떠올랐다. 흥감하길 바란 건가? 직장은 전부가 아니었다. 앞으로는 일부조차 아니겠다.


열 장 남짓한 롤링 페이퍼를 받았다. 받고 싶지 않았다. 글만큼 심연을 적나라히 드러내는 도구는 없다. 수취인 명징한 편지는 두말할 나위 없다. 묵직한 진심으로 눅눅해질까 3 정도 염려했다. 남은 7 은 상반된 핍진이었다. 참지 못할 가벼움을, 겨자씨 심을 깊이조차 못 되는 얄팍함을 느낄까 봐. 예상대로였다. 한 장을 남기고 찢었다.


재활용 쓰레기로 전락한들, 망각할 의도는 없었다. 전부 곱씹어 삼켰다. 축의조차 전하지 않았는데 예식 참석 고맙다는 선생님, 식사 때마다 체했는데 함께한 점심이 편안했다는 선생님도. 읽었으니 가치를 다했다. 남길 필요 없을 뿐, 필체까지 기억할 테니까.


오래된 자들이 무정하다. 신규는 약추와 같아서 태어난 순간부터 선임과 함께하잖아. 온 생에 걸친 기억에게 어찌 그러니. 묵은 고백 해금하고 목울음 토하던 낮보다, 시든 마음에 푸른 잉크 번지던 밤보다, 어느 작별보다 야속했다.


그날도 사포는 끝내줬다. 라디오헤드 LP 돌아갔고 콘 사토시 <파프리카> 웅장했거든. 벅찬 가슴 주체하며 머리 흔들었다. 동기 단체 사진 의문했다. 귀찮다, 돈 아깝다 따위 삐댐이 아니다. “왜” 찍는지, 행위 본질이 궁금했다. 여태 스튜디오 촬영한 백의는 어스름한 잔상으로 퇴색했다. 구상의 물성을 소유한들 먼지만 쌓인다면, 결국 추상만 남는다면. 단편을 박제할 이유는 무엇인가?


너는 떠날 사람이고, 나는 남는 사람이잖아.


ㄱ은 말했다. 꼭 찍고 싶었다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을 남기고자.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네게도 행복이었구나. 기꺼웠던 지난날에 슴벅거렸다. 남기려는 대미에 우둔거렸다. 다정에 흠씬 젖었다.


나는 떠난다, 시댁에 모친만 두고 도망하는 심정으로. 너는 남는다. 추모는, 장례는, 남은 자가 거행한다. 보라와 연두를 조합하는 한편, 파랑과 노랑을 조응하는 사람이 있다. 꾸준히 후자였다. 집었다 놓기를 반복한 표지가 새처럼 날아왔다. 순전히 기뻤다. 당신들을 만났기에 모든 선택에 후회가 없다. 피차일반이기를, 무너지지 않기를.


글을 쓸 때면 걷잡을 수 없이 투명해져서, 갖은 속내가 비치는 듯하다. 쓰지 않자 탁해졌다. 탁한 날을, 탁한 나를 견딜 수 없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포기하기에 너무 멀리 와 버렸다. 행운이다. 봄인지 여름인지 모를 계절에, 산란한 허울을 벗고, 다시 투명해질 테니.


사월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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