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다리 자세와 횡단보도 점프, 그리고 농구장에서 점프하기
이번 발레수업도 지각. 정시에 맞춰 집에서 나와야 하는데, 5분이라도 늦게 나오면 반드시 지각이다.
지하철역 출구에서 나와 발레학원까지 냅다 뛰다가도, 마스크를 끼고 뛰어서인지 금세 숨이 찬다. 뒤늦게 숨을 고르며 학원 건물로 들어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늦었으니 서둘러서 옷을 갈아 입고 뒤늦게 수업 진도를 따라간다.
같이 수업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약속한 시간을 놓쳤다는 미안함, 한 가지 혹은 그 이상의 동작을 놓쳤다는 아쉬움, 급히 오느라고 미처 다 고르지 못한 호흡, 그리고 서서히 다가오는 더위... 이 여러 요소들의 영향을 골고루 받아서 나는 매트 위의 스트레칭만 했는데도 얼굴이 땀범벅이 됐다. 마스크 안에 송글송글 땀이 맺혀 흘렀다.
이날 따라 개구리 다리 자세로 하는 동작이 이번엔 유난히 많았다. 내가 제일 자신 없는 동작이다. 양 발바닥을 서로 모아 붙이고 무릎을 양 옆으로 벌려서 골반과 허벅지 근육을 스트레칭한다. 허리가 그냥 구부러진 상태로 있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나는 이 자세로 양 무릎이 땅에 닿아본 적이 없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냥 유연성이 부족해서 그러겠거니 생각한다.
엎드려서 상체는 편하게 눕고, 하체는 개구리 다리 자세를 한다. 그리고 허벅지와 다리가 구부러지지 않게 함께 위로 들어 올린다. 종아리만 위로 들어 올리기는 그나마 어찌어찌하겠는데, 그게 아니라 개구리 다리 모양의 하체 전체를 위로 들어 올리는 것이다. 설명을 들으면 이게 가능한가 싶은데 바로 내 눈앞에서 선생님의 개구리 다리가 평평하게 위로 들려 올라갔다가 내려온다. 대체 허벅지 근육이 얼마나 단련이 되어야 그런 동작 구현이 가능한 걸까?
아무리 기를 써봐도 지금 당장은 절대 선생님처럼 내 허벅지와 다리를 들어 올릴 수가 없다. 개구리 다리 자세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벅차다. 그래도 선생님은 그 자세로 근육에 힘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그래야 그 근육을 사용하고, 나중에는 실제로 그 동작까지 할 수 있다고.
대체 언제쯤일까 싶다. 그래도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그래서 열심히 내 허벅지 앞 뒤 근육과 복근에 힘을 줘가며, 개구리 다리 평평하게 하늘로 들어 올리기를 여덟 번 했다. 겉으로는 그냥 엎드려서 개구리 다리 자세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센터에서는 횡단보도 건너기 점프를 했다. 내 앞에 작은 장애물이 있다고 상상하며 앞으로 뻗는 다리와 뒤편의 다리 모두 쭉쭉 피며 뛰어가는 점프다. 머릿속으론 횡단보도를 정말 멋지게 건너가는데, 막상 내 차례가 되면 힘껏 다리를 쭉쭉 피고 발끝까지 포인을 유지하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계속 뛰다 보면 될 것도 같은데, 몇 번 뛰면 금세 건너편 벽 모서리가 코앞이다.
두 명씩 짝을 지어서 같이 점프하며 이동하는 연습도 했다. 처음엔 짝꿍과 서로 등지고 옆으로 가다가, 중간에 회전해서 서로를 향해 몸을 돌리고 마주 보며 목적지까지 간다.
짝꿍이랑 같이 움직이니 또 전체 그림이 달라지는 것이 신기했다. 음악의 박자를 기준으로 같이 움직이고, 움직이는 모습이 닮아야 두 사람이 모여 하나의 그림이 되고, 하나의 춤이 될 수 있다. 물론 지금 당장 그런 모습인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그렇게도 해볼 수 있겠지.
좀 더 넓은 곳에서 점프해보고 싶다. 그 생각을 실현해 보려고 달리기를 하는 날 밤에, 혼자서 텅 빈 농구장에 섰다. 대각선으로 상상의 긴 줄을 그어두고, 그 선을 따라서 움직였다. 더 이상 나갈 수 없도록 막아선 벽도 없고, 내 동작을 보는 사람도 없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 혼자서 왼쪽으로도 점프해보고, 오른쪽으로도 점프하면서 농구장을 이리저리 가로지르다가 숨이 차고 허벅지 근육이 살짝 당겨와서 멈춰 섰다. 아. 스트레칭을 먼저 하는 이유가 다 있구나. 뒤늦게 깨달았다.
이번엔 농구장이었지만, 다음번엔 운동장에서도 해볼 수 있을까? 상상해볼 땐 얼마든지 운동장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지만, 지금 내 체력 상태를 보니 절반도 채 못 가서 숨이 차서 헉헉거릴 것 같았다.
언젠가 나도 넓게 탁 트인 공간에서 자유롭고도 편안하게, 힘들이지 않고 마음껏 뛰며 춤춰 볼 수 있을까?
아직까진 나 자신만을 위한 발레이고, 자기만족을 위한 시간으로 발레를 배우고 있다. 그것으로도 사실은 충분하다. 내가 운동장에서 점프를 하는 걸 상상하며 즐거워할 줄이야. 그 생각만으로도 요즘 느끼는 내 삶 속의 어쩔 수 없는 답답함이 조금 해소되기도 하는 걸 보면, 참 신기하다.
그런데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언젠가는 나의 발레가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 줄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상상해본다. 나의 아주 멀지 않은 미래의 어느 상상 속 무대에서. 누군가 나의 몸짓을 보고, 춤을 보고, 내가 배우던 이 순간마다 느꼈던 마음들을, 이 즐거움을, 기쁨을, 함께 느낄 수 있게 된다면... 참 좋겠다.
아직은 개구리 다리도 잘 못하고, 횡단보도 건너기도 어렵고, 짝꿍이랑 잠깐 합 맞추는 것도 쉽지는 않지만.
일단 지각은 안 할 수 있으니,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해야지. 겉으로 볼 때는 크게 티가 안 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