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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마지막 선물

똑같은 삶이 되풀이되는 것 같아도

by 김보영

하루에도 몇 번씩 비가 내리퍼붓다가도 푹푹 찌는 날씨가 이어졌다. 창고 마당에 말라붙은 달팽이와 지렁이가 늘어 간다. 한낮에는 짐승도 사람도 돌아다니지 않는 길에 덩굴만 꾸역꾸역 기어 올라왔다.


마늘밭이던 곳은 고추밭이 되었다. 알고 보니 마늘을 심었던 두둑에는 고추나무도 함께 심긴 것이었다. 봄에 마늘을 뽑고 나자 고추나무는 무럭무럭 자라 다 큰 사람 가슴 높이만큼 자랐다. 그보다 웃자란 것들은 모두 풀이었다. 엄마는 고추밭을 볼 때마다 심란했지만 송이와 코코 밥만 주고 집으로 돌아가느라 바빴다. 호미라도 들라치면 아빠한테 전화가 왔기 때문이다.


어느 날부터는 초록빛이던 고추들이 빨갛게 여물었다. 몇몇 매미마저도 더위를 못 견디고 대추나무 아래에 떨어지던 즈음, 아침 일찍 삼 남매가 모였다.


모두 창고 안에서 비슷한 모자를 꺼내 썼는데도 모양새가 달랐다. 용태는 턱 밑에 끈을 조이지 않아 곧 벗겨지게 생겼고 보라는 아무리 매만져도 모자가 삐뚜로 했다. 막둥이만 끈을 바짝 조이고 모자를 푹 내려써 얼굴을 가렸다.


삼 남매는 저마다 해받이를 꽂은 의자를 고추밭으로 가지고 갔다. 의자에 바퀴가 달려 있어 막둥이는 쉽게 밀며 갔지만 보라는 낑낑대면서 이걸 가지고 가네, 마네 툴툴댔다. 용태는 일찌감치 바퀴 의자가 거추장스럽다는 듯 비닐포대만 가지고 한 두둑을 맡아 고추를 따기 시작했다.


“와, 올해 고추 무슨 일이지?”


용태가 얼마 가지도 않아 한 포대를 가득 채우고 말했다.


“그러게. 따도 따도 끝이 없어.”


보라가 고추밭 속에서 용태 쪽으로 고개를 쏙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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