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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영 Jan 11. 2024

주제가 잘 드러나는 글

교정교열가는 무엇을 고칠까?

서어나무 님이 두 번째 글을 쓰고 고민한 건 주제가 잘 드러나지 않아서였다. 먼저 내용은 이랬다. 


서어나무 님의 남편은 알게 모르게  ‘~으면 좋겠다’고 자주 말한다. 그 까닭을 찾아보니, 보육원에서 사랑을 듬뿍 받지 못한 탓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일 때면 ‘~으면 좋겠다’고 하는 게 입버릇이 된 모양이었다. 서어나무 님도 같은 결핍을 느끼며 자랐지만 그런 날에도 얻은 게 있다는 걸 깨닫는 일을 겪는다. 조리원에서 아기를 처음 낳은 어머니들을 위한 교육을 하는데, 서어나무 님은 교육을 듣지 않아도 첫 아기를 다루는 몸놀림이 남달랐던 것이다. 보육원에서 어린이들을 돌보며 함께 자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이런 글로 끝난다.


나는 삶이라는 것이 매 순간 자신이 무엇을 선택했는가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나를 서운하게 했던 친구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네가 이렇게 했어. 서운했어.”” 또는 “너는 왜 늘 이런 식이야?” 두 가지의 말은 같은 서운함을 전하는 말이지만 향후 친구와의 관계는 많이 달라진다. “~있었다면 좋을 거야”라고 매번 내 삶을 아쉬운 것 천지로 두는 것보단 “~덕분에 이럴 수 있어”라는 말이 훨씬 내 삶을 근사하게 만들어 주지 않는가.


지금까지 글 주제에 걸맞은 (조리원) 경험담을 잘 풀다가 갑자기 친구 얘기를 꺼냈다. 게다가 어려운 글은 아닌데 문장마다 딴소리를 하는 것 같다. 글쓴이는 마무리하는 글로 ‘말이 가진 힘’에 대해 정리하고 싶었겠지만 되려 주제를 흐트리는 문단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이렇게 써보면 어떨까? 


나는 삶이 순간마다 무엇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말이나 생각도 마찬가지다. “~으면 좋겠다.”며 내 삶을 아쉬운 것으로 채우는 말보다는 “~덕분에 이럴 수 있어.”라고 하는 말이 내 삶을 훨씬 근사하게 만들어 준다. 나는 남편을 다독이며 그의 말을 고쳐봤다. 살아본 적 없는 삶, 가질 수 없는 삶을 바라는 말들을 바꿔봤다. 우리가 겪은 지난날이 오늘 어떤 축복으로 왔는지 우리가 잘 아는 말들로.


‘나를 서운하게 한 친구’ 이야기는 지우고, 이 글을 쓰게 된 까닭을 한 번 더 밝혀주었다. 남편의 입버릇이 글쓴이로 하여금 이 글을 쓰게 했고, 어떤 생각에 이르게 했는지를 말이다. 읽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이  글의 주제를 알게끔 첫 문단의 내용과 균형을 맞추는 거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내가 한 일은 ‘문단 나누기’였다. 바쁜 틈에 급하게 썼는지 그의 글은 문단없이 죽 내려쓴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문단을 나누면 여유가 생긴다. 지금까지 얼마나 어떻게 썼는지 한눈에 들어오고, 며칠 지나 이어서 쓰기도 편하다. 무엇보다 주제를 놓치지 않는다. 나는 글쓰기가 어렵거나 막 시작한 사람에게 주제를 정했으면 하고 싶은 말을 두세 가지로 간추려보라고 한다. 만약 세 가지 말을 꼽았다면 문단을 세 개로 나눠 쓰게 한다. 이 밖에 하고 싶은 말이 많으면 어떡하냐고? 버려야 한다. 어떻게든 끼워 맞추려 할수록 글은 주제를 잃고, 글쓴이의 욕심만 드러나기 마련이다.


다음 글에서는 서어나무 님의 글에서 영어문법 따라 쓴 '-었었다'를 찾아 고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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