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정수기에 컵이 없다니...
얼마 전 신청한 단기 글쓰기 수업을 들으러 인근의 신설 도서관을 찾았다. 처음 가는 곳이라 내비게이션에 장소를 입력하려고 보니 도서관 이름이 갑자기 생각이 안 난다. 어렴풋이 알 것도 같은데, 딱히 입에 붙지 않는다. 그냥 동네 지명이나 행정 구역을 나타낸 이름이 아니라 무슨 기지였나? 센터였나? 네비에게 음성으로 알려만 주면 간단하게 찾을 수 있는데, 그 도서관 이름이 생각나지가 않는 것이다. 게다가 바쁜 아침 시간이라 마음마저 급하니 그냥 인근까지 차를 몰고 가기로 했다. 가면서도 정확한 건물명이 생각나지 않아 근처에서 차를 세워두고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겨우 도서관 이름을 알아냈다. 바로 복합문화센터. 가까스로 제시간에 맞춰 지하 주차장에 들어가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찾는 순간 또 문제가 생겼다. 강의실이 몇 층이었지?
엘리베이터 버튼 옆에 쓰여 있는 강의실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명칭이 아니다. 비밀기지, 창작기지, 모야, 배움 기지, 미디어 창작기지, 작전 기지. 마치 펜타곤 기지에 온 것처럼 적군들에게 그 위치를 눈치채지 못하게 만들어 놓은 장치 같다. 예전에 시어머니들이 자주 방문하지 못하도록 아파트 이름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었는데, 막상 내가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니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3층으로 갔다가 다시 2층으로 가다를 하다 겨우 강의실에 들어섰다.
반가이 맞이해 주시는 강사님의 미소에서 마음속 불편감은 사라지고 강의에 몰입할 수 있었다. 첫 시간이라 다소 경직된 탓인지 목이 말라 쉬는 시간에 정수기를 찾아 나섰다. 다행히 화장실 가는 길 옆에 위치한 정수기. 그런데 이건 또 뭔가? 정수기는 있으나 컵이 없다.
바쁜 아침에 깜박 잊고 텀블러를 못 챙긴 나는 1층에 있는 커피숍에 내려가 음료수를 주문하려 했다. 그런데 아뿔싸. 또 다른 규정이 있었으니 음료수를 가지고 도서관에 들어가면 안 된단다. 그때부터 뭔가 살짝 불편한 감정이 들었다.
요즘 도서관은 정수기는 있으나 그 옆에 컵이 없다. 그도 아니면, 정수기가 없는 곳도 많다. 정부차원에서 제로 웨이스트 운동으로 개인 텀블러 가지고 다니기 캠페인이 있었는데 그 영향이 아직까지 이어지는 듯하다. 공공기관인 도서관은 일반 시민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장소이다. 만약 누군가 정말 급하게 목이 말라 물이 마시고 싶다 해도 컵이 없으면 그냥 지나쳐야 한다. 뭐, 정 안되면 체면을 벗어던지고 맨손으로 물을 받아먹기라도 해야겠지. (참고로 인천공항에는 컵이 없어도 물을 마실 수 있는 개수대가 있어 매우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이런 시스템을 공공기관에도 공유하면 좋겠는데._)
또다시 생각이 머릿속을 파고든다. 이대로라면 인간은 여러 문명의 이기를 포기하고 결국에는 고대의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을 읽은 나로서는 갑자기 <불편한 도서관>이라는 주제가 떠올랐다. 이곳에 올 때면 물을 마시기 위해 집에서부터 텀블러나 종이컵이라도 챙겨야 한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나는 물을 꼭 마셔야 했을까? 두 시간 정도의 수업시간 중에 목이 말랐다는 것은 내 에너지 소비가 그만큼 많았을 수도 있고 주변 환경이 건조해서 갈증을 느꼈을 수도 있다.
건강을 위해서 물을 자주 마셔야 한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는데, 도서관은 물은 제공하지만 조건이 붙는다. 그렇다면 집을 나설 때 미리 물을 마시고 와야 했었다. 이런 생각을 할 때 텀블러를 미리 챙길걸.
그리고 보니까 물을 마시면 다이어트가 된다는 의견도 있지만, 연예인들이 극단적으로 살을 뺄 때 촬영을 앞두고 이틀 동안 물을 마시지 않으면 살이 잘 빠지면서 신체에 있던 수분이 피부로 배어 나와 윤기가 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래저래 불편한 도서관은 나에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