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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Nov 02. 2023

이방인

누군가 ‘그럼 너는 이다음에 어디로 여행 가고 싶어?’라며 물어볼 때 나는 항상 하는 대답이 있다. ’어디든 상관은 없는데, 내가 이방인일 수 있는 곳이면 돼.’


언제나 내가 꿈꾸는 다음 여행지는 이렇다. : 한국어가 통하지 않는 곳, 최소한 영어로만 소통이 가능한 곳,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곳. 나는 정말 다른 세상을 원했다. 현재 살고 있는 세계는 너무나도 익숙하니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자극을 항상 그려왔다. 그렇게 나는 한국인이 많은 곳보다는 (내 기준에서의) 외국인들에게 유명한 여행지를 찾았고 한국인들이 모인 곳은 자연스레 피해 갔다. (물론 순례길은 예외다. 항상 말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은 유일하게 한국인이 가장 반가운 여행지니까.) 완벽하게 언어를 구사하는 건 아닌지라 외로운 여행이 될 때도 많았고 피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만난 한국인들과 아주 즐거운 여행을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낯선 곳에 가고 싶다는 내 바람은 언제나 굳건했다. 이것도 내가 한국을 답답해하는 이유인가 생각했다. 이곳에서 나는 이방인일 수가 없을 테니까.


며칠 전 이태원에 다녀왔다. 한국이지만 가장 한국스럽지 않은 동네에서 나는 피로보다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자주 지나다녔고 레스토랑과 술집에는 외국인들이 일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런 풍경을 마주하면서 오랜만에 여행을 나온 기분이 들어 들뜨기까지 했다. 어차피 한국에서 살아야 한다면 한국의 편리함은 갖고 있으면서 이국적인 이 동네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자연스레 올라왔다. 그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레 합류해 길을 걷는데, 몇몇 사람들이 당연하게 영어로 말을 걸다 어느 순간 어이없다는 눈으로 너 한국인이야? 하고 물어보는데 웃음이 터졌다. 나를 한국인이 아닌 다른 국가의 사람으로 오해한 모양이었다. 이날 나는 연달아 두세 명에게 한국인이 맞냐는 질문을 받고서 집에 오는 내내 생각에 잠겼다. 그들 사이에서 위화감이 없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놀라우면서도 동시에 편안했다. 이곳에서 이방인인 그들에게 이방인으로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날 안심시켰다. 아. 나는 이방인이고 싶은 게 아니었구나.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고 싶었고 그 안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싶었구나.


나는 평소에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눈에 띄는 머리숱과 스타일 때문에 간간이 누군가가 갑자기 말을 걸거나 쳐다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얼마 전에도 출근 전 시간이 남아 잠시 공원에 앉아 일기를 쓰는데 어떤 할머니가 머리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생김새만 보고 외국인인 줄 알았다며 호들갑을 떠는 일도 있었고 지나가는 나를 보고 나는 저런 거 못 입는다고 혀를 끌끌 차던 분을 본 적도 있었다. 그 외에 말은 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여러 의미가 담긴 시선들은 셀 수도 없다. 태생적으로 관종인 나는 대체로는 그런 관심이 썩 싫지 않아 하나의 해프닝으로 넘기고는 했는데 솔직히 가끔은 날 신기하게 바라보는 시선에 지칠 때가 있다. 물론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이렇게 말하기는 뭐 하지만) 정말 스탠더드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이라 더더욱 눈에 띄기야 하겠지만 그렇다 해도 집중되는 시선은 날 힘들게 하곤 했다. 나의 나라이기에 나는 절대로 이방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여기만큼 나를 이방인으로 만드는 곳은 없었다.



누군가 내게 또다시 이번엔 어디로 여행이 가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아마 이제까지와는 다른 대답을 할 것 같다.

‘난 말이야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고 싶어. 내가 이곳과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곳, 나를 신기하게 보지 않는 곳, 눈에 띌 수는 있을지언정 이물질 같은 존재로 느껴지게는 하지 않는 곳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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