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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Nov 02. 2023

취향

‘너는 외모를 눈에 띄게 꾸밀 뿐이지 솔직히 말하자면 색깔 없는 성격이야’



사람들은 모두 각자 자신만의 세계 안에서 자신만의 취향을 안고 삶을 살아간다. 나도, 당신도, 그들도, 지금 지나가는 저 사람까지 모두 다. 그런데 어쩐지 나는 취향이라고는 없는 무색무취의 밍밍한 사람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이 생각은 내가 알고 보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할까 봐 불안하게 했고 속 빈 강정 같은 삶을 살아온 기분이 들어 허망하게까지 만들곤 했다.




얼마 전, 여행에서 만나 친해진 언니 오빠 부부를 만났다. 둘은 시간으로 따지자면 함께한 기간은 적지만 이런저런 깊은 대화와 점성술 공부, 사주 공부 등등으로 인해 오래 본 친구들만큼 나를 꽤 많이 파악하고 있다. 간간이 만나 나의 진로와 고민, 생각들을 들어주고 가끔은 조언도 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런 오빠가 갑작스레 던진 한 마디는 내게 묵직한 한 방으로 다가왔다. 색깔 없는 성격이라, 내가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고 좋아하는 스타일을 찾은 이후 항상 나를 따라다니던 고민을 남의 입으로 듣는 날이 결국 와버렸다.




엉덩이에 닿는 치렁치렁한 뽀글 머리와 드레드락, 양 팔에 가득한 타투, 세기도 번거로울 매일 하는 액세서리들, 내 옷장의 90%를 차지한 다채로운 색깔과 별의별 무늬가 가득한 긴 치마들, 눈길을 보내는 일보다 받는 일이 익숙하고 아주 일반적이지만은 않은 개성 강한 모습. 이 모든 것들은 나의 외모를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실제로 히피 스타일을 추구하고 그런 삶을 그리며 살아가는 중이기에 날 아는 사람들이라면 내가 하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누구보다 취향이 옅은 사람이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취향, 취향은 지금까지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박혀있는 고민거리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나의 취향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도, 내가 롤 모델로 삼을 만큼 존경하고 사랑하는 친구들을 보면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는 확고한 의견과 자기만의 생각이 그들을 단단하게 감싸고 있는 게 보이는데, 나는 그 모든 게 결여되어 있는 기분이었다. 자신의 세계를 형성하기 전에 겉을 만들어버린 느낌이었다. 그저 빈 껍데기에 불과한, 빛 좋은 개살구, 겉만 번지르르한. 이것들이 바로 내가 나를 표현하는 말들이었다.




내가 보는 나는 남들의 주장과 의견에 쉽게 꺾여주는 사람이다. 물론 나는 정말로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아무런 이의가 없기 때문에 그런 자세를 취하는 편이지만 때때로 ‘정말 이렇게 휘둘리듯이 살아가도 괜찮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최근 그 오빠에게 묵직한 한마디는 덮어놓고 지냈던 그 의문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아직 ‘나는 취향이 없는 사람인가?’라는 것에 명쾌한 해답을 찾지는 못했으나 하나는 깨달았다. 나는 대부분의 상황에 관심이 없었다. 세상의 일을 십이라고 가정했을 때, 내가 관심을 갖고 행동하는 일은 고작 삼 정도에 불과했다. 나머지 칠에 관련된 일에 경우에는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되든 아무런 관심도 없으며 그를 위해 어떠한 선택을 하기 위해 고민을 하는 것조차 귀찮다는 생각이 절로 들곤 한다. 사실 귀찮다는 말의 어원은 ’귀하다‘와 ’-않다‘의 합성어라고 한다. 그러니까 귀찮다는 귀히 여기지 않는다는 의미인데, 맞다. 내게는 십 중 칠의 경우가 귀하지 않다.


그제야 숨통이 트였다. 나는 취향이 옅은 사람이 아니라 너무나도 취향이 진한 사람이라 구분하여 반응할 수 있었던 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색깔 없는 성격이라 결론 내린 오빠의 생각에는 나름대로 이해가 갔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삼 정도의 일 중에는 나와 함께하는 사람의 감정이 포함되어 있어서 실제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의견에 맞장구를 치고 공감을 해왔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것도 결국에는 자기 합리화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부족한 나의 세계를 감추기 위해 옷이라는 갑옷을 두른 걸지도, 그래서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무엇 하나도 포기하지 못하는 걸지도. 그래도 뭐 어떤가. 이런 고민을 하는 것도 결국엔 나만의 세계이고 내가 선택한 갑옷 같은 스타일도 나의 세계이다. 불안함과 허망한 감정을 쉬이 내려놓지 못하는 내게도 완벽하지는 않을지언정 나만의 취향이 가득한 세계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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