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법원장회의가 드러낸 정치개입과 내부 불신의 이중 위기
사법 독립을 위협하는 정치권의 개입과 사법부 내부의 불신, 그 진짜 개혁은 어디에서 시작돼야 하는가
2025년 전국법원장회의는 단순한 정례 회의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법권 독립이라는 헌법 원칙이 정치의 충돌 속에서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고, 동시에 사법부 내부에서조차 터져나오는 위기의 자성(自省)이었다. 대법관 증원, 법관평가제, 특별재판부 도입이라는 '입법 개혁안'은 법치의 수단인가, 권력 재편의 수단인가? 이 글은 사법개혁 이슈의 촉발 배경과 제도 논의의 구조적 문제를 함께 들여다보고자 한다.
사법개혁의 서막은 지귀현 판사 사건으로부터 본격화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혐의 재판을 맡은 지귀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특정 정치인과의 식사 자리, 그리고 사적 친분을 둘러싼 접대 의혹에 휘말리면서, 사법부의 중립성과 재판의 독립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폭발했다. 지 판사가 기소를 앞두고 내린 재판 결정이 권력에 유리한 방향이었다는 의심은 사법권 전반에 대한 의구심으로 번졌고, 이에 대한 입법부의 반작용이 바로 ‘사법개혁’이었다.
여기에 조희대 대법원장의 ‘정치개입 논란’까지 불을 지폈다. 조 대법원장은 재판 독립을 강조하면서도, 내란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한 위헌 논란에 대해 명확한 반대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그가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하고 사실상 정치권의 입법 시도에 소극적으로 묵인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대법원장이 스스로 정치적 논란에 휘말린 상황은, 사법부 수장이 헌법 수호의 최종 보루라는 국민적 기대와는 거리감이 있다.
2025년 9월 12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회의실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는 단순한 내부 토론을 넘어섰다. 참석한 42명의 법원장들은 7시간 반에 걸친 논의를 통해 “사법개혁 논의에서 사법부의 배제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가장 우려가 컸던 안건은 대법관 증원안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제시한 ‘14명 → 26명’ 증원안은 상고심 부담 해소와 다양성 확보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기능 마비, 사실심(1·2심)의 역량 약화, 그리고 정권 우호적 대법관 대량 임명 가능성 등의 우려를 불렀다. “소규모 증원이 적정하다”는 다수 의견은 결국, 사법개혁이 단기간의 정무적 필요에 따라 좌우되어선 안 된다는 의미다.
다음으로 법관평가제도 개편은 판사들 사이에서 더욱 민감하게 반응됐다. 여당이 제안한 '정당 추천 외부 인사 포함' 조항은, 명백히 사법권 독립 침해 소지를 내포한다. 정치 세력이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을 한 판사에 대해 ‘낙인’을 찍는 평가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제도는 정치권이 사법부를 통제하려는 “침묵의 압박 수단”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회의에서 공식 의제는 아니었지만, 내란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한 논의도 심도 있게 이루어졌다. 이 안건은 윤 전 대통령 재판의 공정성을 확보하자는 취지로 제안됐지만, 법원장들은 이를 두고 “재판 배당의 자의적 조정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대한민국의 사법 시스템은 ‘무작위 전산 배당’을 통해 재판의 중립성을 보장한다. 특정 사건을 특정 판사에게 맡기기 위한 법률 제정은 곧 입법부에 의한 사법권 간섭이며, 삼권분립 원칙을 침해한다. 더욱이, 이재명 대통령이 “사법부는 입법부 구조 안에서 작동하는 기관”이라며 사실상 국회 상위 기관처럼 발언한 것은 사법부 경시이자, 헌법 질서에 대한 이해 부족을 드러낸 것이다.
사법개혁의 정당성은 사법권이 중립성을 유지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런데 최근 사법부 내부에서도 지귀현 사건, 조희대의 정치적 언행, 법원장들의 내부 반발 등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 사법개혁은 이중의 위기에 놓여 있다. 정치권의 개입이라는 외부의 위기, 그리고 사법부 스스로 신뢰를 깎아먹는 내부의 위기. 이 두 가지 모두 해결되어야 비로소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개혁이 가능하다.
사법개혁은 법과 제도의 문제이자 동시에 문화와 관행의 문제다.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재판, 정치권이 간섭할 수 없는 인사 제도, 그리고 사법부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자기 정화의 구조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 법원장회의가 보여준 메시지는 단순한 방어가 아니라, '개혁의 주체로 나서겠다는 선언'이다.
정치권이 주도하는 입법 개혁은 신뢰를 얻기 어렵다. 개혁이 진정한 변화를 말한다면, 그것은 사법부가 먼저 내부 윤리를 확립하고, 국민 앞에 투명하게 다가가는 태도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접대 의혹이 있는 판사에게 명확한 징계 기준을 적용하고, 대법원장은 정치적 메시지를 자제해야 한다. 정치권 또한,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사법부를 재편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법개혁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이념이 아닌 원칙 위에서, 지배가 아닌 견제 위에서, 침묵이 아닌 공론 위에서 추진돼야 한다. 그 시작점은 단순하다. 사법부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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