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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통신서비스 삐삐와 시티폰: 그들의 부상, 특징,

90년대 무선통신의 상징, 삐삐와 시티폰의 영광과 쇠퇴 이야기

1. 무선통신을 이용하는 무선호출서비스

1990년대 말, Y2K에 대한 불안감이 사회를 뒤덮던 시절, 중학생들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한 곳으로 달려갔다. 바로 공중전화부스였다. 이곳은 '삐삐'라고 불리던 무선호출기, 혹은 비퍼(Beeper)를 확인하기 위한 필수 장소였다. 무선호출기는 이동전화와 같이 전파를 이용하는 무선통신 서비스이다. 삐삐는 휴대전화가 보급되기 전, 가장 유용한 개인 통신 수단이었다. 그렇다면 삐삐는 어떻게 시작되었고, 왜 사라졌을까?

무선호출기의 역사는 1949년, 캐나다의 발명가 알프레드 J. 그로스가 처음으로 발명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로스는 이 기술을 바탕으로 워키토키의 초기 형태도 개발했다. 한국에서는 1983년부터 서비스가 시작되었지만, 처음에는 의사나 군인 등 특정 직업군에서만 사용되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1990년대 중반에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의 삐삐는 단순한 호출음만 제공하다가 점차 숫자 메시지를 표시할 수 있게 발전했다. 삐삐가 울리면 공중전화로 달려가 발신자의 번호를 확인하고, 다시 전화를 거는 방식이었다. 학생들은 이 삐삐를 통해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연락을 받을 수 있었고, 삐삐 암호를 통해 간단한 메시지를 주고받기도 했다. 예를 들어, '8282'는 '빨리빨리'를 의미하며, 이러한 숫자 암호는 학생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나 1995년 CDMA 기술이 상용화되고, 1997년 PCS 서비스가 시작되면서 삐삐의 인기는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했다. 휴대전화는 삐삐보다 훨씬 더 다양한 기능을 제공했으며, 문자 메시지 서비스가 가능해지면서 삐삐의 기능을 완전히 대체했다. 삐삐는 그저 과거의 유물이 되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삐삐는 그 시대를 상징하는 중요한 기기였다. 삐삐 소리와 함께 공중전화부스로 달려가던 학생들의 모습, 삐삐 암호를 주고받으며 친구들과 소통하던 기억 등은 당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97년, 대한민국에서 삐삐 사용자는 약 2000만 명에 달했으며, 이는 당시 인구의 약 40%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무선호출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과거의 추억으로 남아 있지만, 2023년 기준으로 약 10만 명의 사용자가 있다. 이들은 주로 긴급 연락이 필요한 직업군에 속한다. 예를 들어, 의료계에서는 휴대전화 전파가 정밀 의료기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무선호출기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 법조계와 같은 특정 분야에서도 중요한 회의나 재판 중에 긴급 연락을 받을 필요가 있는 경우 무선호출기를 이용한다. 또한, 정보원과 같은 직종에서도 보안상의 이유로 무선호출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한때 우리 주머니 속을 지배했던 작은 기기, 바로 '삐삐'의 정식 명칭은 '무선호출기'이다. 삐삐라는 애칭으로 더 친숙한 이 기기는 80년대와 90년대를 풍미한 최고의 통신 수단이었다. 그럼 삐삐의 매력과 특징을 조금 더 흥미롭게 살펴보자.


단방향 통신의 매력: 삐삐는 송신 없이 수신만 가능한 단방향 통신기기였다. 발신자가 호출을 걸면 삐삐는 울리며 사용자를 부른다. 이 단순한 원리는 지금의 스마트폰과 비교하면 매우 원시적일 수 있지만, 당시로선 굉장히 혁신적이었다. 삐삐가 울리면 공중전화로 달려가 발신자의 번호를 확인하고 전화를 거는 과정은 하나의 의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작은 크기, 큰 존재감: 삐삐는 손바닥만한 크기로 언제 어디서나 휴대할 수 있었다. 주머니 속에 쏙 들어가는 이 작은 기기가 울릴 때마다, 마치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확인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작지만 강력한 존재감 덕분에, 삐삐는 그 당시 모든 세대의 사랑을 받았다.


저렴한 통신 비용: 삐삐는 저렴한 통신비로도 인기를 끌었다. 매달 2000~4000원이면 충분했다. 이 금액은 학생들조차 쉽게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이어서, 많은 청소년이 삐삐를 통해 친구들과 소통했다. 저렴한 가격은 삐삐가 대중화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삐삐 숫자 암호로 소통하는 메신저: 초기 삐삐는 숫자만 표시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간단한 문자 메시지도 표시할 수 있게 되었다. '8282'가 '빨리빨리'를 의미하는 등, 삐삐 암호는 일종의 비밀 언어처럼 사용되었다. 친구들끼리 삐삐 암호를 주고받으며 소통하는 재미는 삐삐 시대의 또 다른 묘미였다. 


폭넓은 사용: 당시에는 집이나 사무실이 아닌 외부에서 연락을 주고받기 어려웠다. 하지만 삐삐는 외출 중에도 언제든지 호출을 받을 수 있어, '언제 어디서나' 연락이 가능하다는 혁신적인 장점을 제공했다. 특히 병원, 군대, 공항 등 다양한 장소에서 폭넓게 사용되었다. 특히 병원에서는 휴대전화 전파가 정밀 의료기기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삐삐가 계속 사용되었다. 


삐삐는 시대를 풍미한 혁신적인 통신기기였다. 단순한 구조와 저렴한 비용,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연락이 가능한 편리함 덕분에 삐삐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비록 지금은 스마트폰에 밀려 추억 속으로 사라졌지만, 삐삐가 주던 그 특별한 소리와 감성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삐삐는 단순한 기기를 넘어, 한 시대의 문화와 감성을 담고 있는 상징이었다. 과거의 통신 수단이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삐삐. 그 소리와 함께했던 추억은 아마도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이제는 음식점에서 종업원을 호출하거나 추가로 주문하는 보조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2. 또 하나의 무선통신 서비스인 시티폰

시티폰은 1997년에 등장한 발신 전용 휴대전화 서비스로, 당시의 통신 환경에서 큰 변화를 일으켰다. 이동전화 요금이 비싸던 시절, 시티폰은 저렴한 요금으로 공중전화와 무선호출기, 일명 삐삐를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 이 서비스는 주로 공중전화부스 근처에서만 통화가 가능했으며, 발신만 할 수 있었다. 


초기에는 삐삐 기능을 통합한 모델도 등장해 큰 인기를 끌었지만, 이동 중 통화가 불가능하고 중계기가 없는 지역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한계로 인해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시티폰은 공중전화와 무선호출기 사이의 과도기적 기술로, 당시의 통신 혁신을 상징하는 중요한 기기였다.


시티폰의 등장은 기존의 통신 방식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1990년대 후반, 이동전화 요금은 여전히 비쌌고,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삐삐는 단방향 통신 기기로 발신이 불가능했고, 삐삐가 울리면 공중전화부스로 달려가서 전화를 걸어야 했다. 이러한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시티폰이 등장했다. 시티폰은 저렴한 요금으로 발신만 가능하게 하여, 삐삐 사용자들이 공중전화부스로 달려갈 필요 없이 근처에서 바로 통화할 수 있게 했다.

시티폰의 등장 배경에는 당시의 통신 환경과 사용자들의 요구가 반영되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동전화의 고가 요금으로 인해 부담을 느끼고 있었고, 삐삐의 단방향 통신 한계를 체감하고 있었다. 시티폰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되었으며, 저렴한 요금으로 발신만 가능하게 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접근성을 제공했다. 이는 특히 학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시티폰의 등장은 삐삐와 공중전화에 의존하던 사용자들에게 더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공중전화부스 근처에서만 사용 가능하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시티폰은 삐삐와 공중전화의 장점을 결합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시티폰을 사용하면 삐삐가 울렸을 때 공중전화부스 앞에서 긴 줄을 서지 않아도 되었다. 이는 사용자들에게 큰 편리함을 제공했고, 시티폰의 인기를 더욱 높였다.


또한, 시티폰의 저렴한 통신 비용과 편리함은 많은 사용자들을 끌어들였다. 당시 이동전화 요금은 여전히 높았고, 시티폰은 저렴한 요금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접근성을 제공했다. 이는 특히 학생들과 같은 젊은 층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갔다. 시티폰을 통해 사용자들은 삐삐의 단방향 통신 한계를 극복하고, 더 편리한 통신을 경험할 수 있었다.


시티폰의 인기는 다양한 마케팅 전략에 의해 더욱 상승했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개그맨 김국진을 내세운 "여보세요" 광고는 큰 히트를 쳤다. 이 광고는 시티폰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시티폰을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게 했다. 광고와 마케팅 전략은 시티폰의 성공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시티폰은 당시의 통신 환경에 혁신을 가져왔다. 여러 가지 특징이 시티폰을 독특하게 만들었고, 한때 큰 인기를 끌게 했다. 시티폰은 발신 전용 통신, 저렴한 요금, 공중전화의 확장판, 삐삐와의 연계성, 중계기 기반의 제한, 이동 중 통화 불가, 마케팅 전략 등의 특징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특징 덕분에 한때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과 함께 점차 사라지게 되었고 그 시절의 통신 혁신과 문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기기로 남아 있다. 


주요 특징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발신 전용 통신이다. 시티폰은 오직 발신만 가능하며, 수신은 되지 않았다. 이는 삐삐 사용자들이 공중전화부스로 달려가야 하는 불편함을 해결해 주었다. 공중전화부스 근처에서 시티폰을 사용하면 바로 발신할 수 있어, 긴급한 상황에서도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다.


둘째, 저렴한 요금이다. 당시 이동전화 요금이 비쌌던 반면, 시티폰은 저렴한 요금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접근성을 제공했다. 학생들과 같은 젊은 층에게 특히 인기를 끌었으며, 경제적인 부담 없이 통신을 사용할 수 있었다.


셋째, 공중전화의 확장판이라는 점이다. 시티폰은 공중전화 근처에서만 통화가 가능했기 때문에, 일종의 공중전화의 확장판으로 볼 수 있었다. 공중전화부스 주변에서만 사용 가능했지만, 그만큼 통화 품질은 안정적이었다. 공중전화부스가 많은 도시 지역에서는 큰 불편함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넷째, 삐삐와의 연계성이다. 일부 시티폰 모델은 삐삐 기능을 통합하여, 삐삐 사용자들이 더 편리하게 통신할 수 있게 했다. 삐삐가 울리면 공중전화부스로 달려가는 대신, 시티폰을 통해 바로 발신할 수 있었다. 이는 시티폰의 인기를 더욱 높이는 요소였다.


다섯째, 중계기 기반의 제한이다. 시티폰은 중계기 기반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중계기가 없는 지역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다. 이는 시티폰의 가장 큰 단점 중 하나였다. 도심 지역에서는 문제 없었지만, 중계기가 없는 외곽 지역에서는 통화가 불가능했다. 이로 인해 시티폰 사용자는 일정한 지역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여섯째, 이동 중 통화 불가이다. 시티폰은 공중전화 근처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동 중 통화가 불가능했다. 이는 사용자의 활동 범위를 제한하는 요소였다. 이동 중에도 통화가 가능한 휴대전화가 보급되면서, 시티폰의 인기는 급격히 하락했다.


시티폰은 공중전화부스 근처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고, 중계기가 없는 지역에서는 통화가 불가능했다. 또한, 이동 중 통화가 불가능한 점은 사용자들에게 큰 제약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시티폰은 저렴한 요금과 편리함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다.


시티폰은 급속한 통신 서비스 기술 발전과 이동전화의 보급으로 인해 그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시티폰의 몰락은 여러 요인에 의해 촉발되었으며, 이는 당시 통신 환경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첫째, 이동전화의 급속한 보급이다. 이동전화는 시티폰과 달리 발신과 수신이 모두 가능했으며, 이동 중에도 통화가 가능했다. 이는 시티폰의 가장 큰 단점인 이동 중 통화 불가를 해결해주었고, 사용자들에게 더 큰 편리함을 제공했다. 1995년 CDMA 기술의 상용화와 1997년 PCS 서비스의 시작으로, 이동전화는 급속히 성장하였다. 


둘째, 통신 기술의 발전이다. 이동전화의 기술 발전은 시티폰의 보급을 방해하였다. 초기 이동전화는 비쌌지만, 기술 발전과 함께 가격이 점차 낮아졌다. 이는 시티폰의 저렴한 요금이라는 장점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또한, 이동전화는 문자 메시지 서비스와 같은 부가 기능을 제공하여, 사용자들에게 더 많은 가치를 제공했다.


셋째, 중계기 기반의 한계이다. 시티폰은 중계기 기반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중계기가 없는 지역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다. 이는 사용자들의 활동 범위를 제한하는 요소였다. 반면, 이동전화는 전국 어디서나 통화가 가능하여, 사용자들에게 더 큰 자유를 제공했다. 이로 인해 시티폰은 사용자의 활동 지역이 제한되는 단점을 극복하지 못했다.


넷째, 광범위한 마케팅 전략의 부재이다. 시티폰은 초기에는 김국진을 내세운 "여보세요" 광고로 큰 인기를 끌었지만, 이후에는 이동전화의 마케팅 전략에 밀리게 되었다. 이동전화 업체들은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통해 사용자들을 끌어들였고, 이는 시티폰의 인기를 더욱 약화시켰다. 시티폰은 초기의 폭발적인 인기를 유지하는 데 실패했다.


다섯째, 사용자들의 인식 변화이다. 시티폰은 발신 전용 통신기기로, 반쪽짜리 이동전화 서비스라는 인식이 강했다. 반면, 발신과 수신이 모두 가능한 이동전화는 사용자들에게 더 완전한 통신 수단으로 인식되었다. 이는 사용자들이 시티폰보다 이동전화를 선호하게 만든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다.


시티폰의 몰락은 예상치 못한 해프닝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1998년 또는 1999년경으로 기억된다. 당시 한국통신(KT)의 공중전화본부장이 출근길에 신림동에 있는 공중전화부스 안에서 이동전화를 사용하는 사람을 보고 격분한 사건이 그중 하나다.


당시 공중전화본부장은 공중전화 사업의 위축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었다고 한다. 공중전화 부스는 한때 KT의 주요 비즈니스 모델 중 하나였으나, 이동전화의 보급으로 인해 수입이 급격히 줄어들어 큰 위기 의식으로 스트레스가 심했다고 한다. 그런 때에 출근길에서 목격한 광경은 그에게 있어 충격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격분한 그는 차를 세우고 공중전화부스로 뛰어들어가, 이동전화를 사용하는 남성에게 손찌검을 했다. 이 사건은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공중전화사업의 위기를 실감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시티폰의 몰락은 다양한 사회적 변화와 함께 이루어졌다. 시티폰의 인기가 급격히 하락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동전화로 갈아타기 시작했다. 이는 공중전화와 시티폰의 사용량을 더욱 줄어들게 만들었다. 공중전화부스 앞에서 시티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점차 사라졌고, 대신 이동전화 사용자들이 그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시티폰의 몰락은 통신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공중전화부스와 시티폰이 차지하던 자리는 빠르게 이동전화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통신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이루어졌으며, 이는 우리 사회의 통신 문화를 크게 변화시켰다. 시티폰의 몰락은 단순한 기술의 변화가 아니라, 사회적 변화와 맞물려 일어난 사건이었다.


3. 무선호출과 시티폰의 몰락이 주는 교훈

무선호출기와 시티폰의 몰락은 기술의 빠른 발전과 변화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이 두 서비스의 부상과 몰락은 우리가 기술 혁신과 그에 따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응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첫째, 기술 발전의 속도에 평승하여야 한다. 무선호출기와 시티폰은 한때 혁신적인 기술로 큰 인기를 끌었지만, 이동전화와 같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서 급격히 사라졌다. 이는 기술 발전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를 잘 보여준다. 기업과 개인 모두 이러한 빠른 변화에 적응할 필요가 있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새로운 기회와 도전이 동시에 발생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둘째, 사용자의 요구 변화를 파악하여 수용하여야 한다. 무선호출기와 시티폰은 당시 사용자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요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동전화는 발신과 수신이 모두 가능하며, 이동 중에도 통화할 수 있는 편리함을 제공했다. 또 무선호출 서비스의 기능이 탑재 되었다. 이는 사용자들이 무선호출기와 시티폰에서 이동전화로 빠르게 전환하게 만든 요인 중 하나다. 사용자의 요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며, 기업은 이를 잘 파악하고 대응해야 한다.


셋째, 지속적인 혁신의 중요성이다. 무선호출기와 시티폰의 사례는 혁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초기에는 혁신적인 기술로 큰 인기를 끌었지만,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서 그 혁신의 가치가 금방 사라졌다. 지속적인 혁신과 발전이 없으면, 기존의 기술과 제품은 빠르게 도태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기업은 끊임없는 연구와 개발을 통해 새로운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넷째, 안정은 수치이므로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무선호출기와 시티폰의 몰락은 변화에 대한 적응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기술과 시장이 빠르게 변화함에 따라, 기업과 개인 모두 변화에 적응하고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이는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고, 변화하는 시장 상황에 맞춰 전략을 조정하는 것을 포함한다. 변화에 대한 적응력은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다.


결론적으로, 무선호출기와 시티폰의 몰락은 기술 발전과 변화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이는 우리가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혁신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기업과 개인 모두 이러한 교훈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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