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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전화가 부의 상징인 때가 있었다

차량전화와 이동전화는 부와 권력의 상징이던 때가 있었다.


이것이 없으면 무선 인터넷도 휴대전화도 스마트폰도 모두 다 허황이 될 수 있다. 꽝이 될 수 있다는 얘기이다. 어떤 것이냐고요? 우리가 흔히 인터넷 하면 유선으로 쓰느냐 무선으로 쓰느냐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랜선이냐 와이파이냐를 사용할 수 있느냐를 묻는 것이다. 무선 인터넷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무선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통신을 하는 상대방과 눈에 보이는 선이 아니고 매개체로 연결이 돼서 통신을 하는 것을 무선통신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에티켓이었다. 요즈음 사람들은 약속시간을 잘 안지킨다는 얘기를 많이 하기도 한다. 만나는 예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만나자고 약속한 시간보다 20분 또는 30분씩 늦는 것은 당연하다는 듯이 얘기하는 것을 자주 겪는다. 그리고 누구나 내가 늦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면서 남이 늦는 것에 대해서는 불평불만을 많이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 사람들의 기본적인 소양이 이기심으로 가특 차서 그럴까? 20년 전 30년 전으로 돌아가 보겠다. 그1996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아날로그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었다. 1990년대 초 우리나라의 이동전화 사용자 수는 100만이 채 안 되었다. 1996년이 되어 디지털 이동전화가 보급되면서 이동전화 공급이 급속히 늘어 났다. 


이동전화 사용자가 적을 때는 모든 약속은 유선 전화 또는 구두로 미리 하고 약속시간에 맞춰 현장으로 가야 했다. 지금은 약속장소로 이동하면서 만날 장소를 바꾸거나 취소하는 일을 자유자재로 할 수있게 되었다. 약속장소로 가면서 계속 전화통화를 하면서 가기도 한다. 실컨 얘기를 나누고 약속장소에 들어 가면서 "만나서 얘기해"라고 전화를 끊는다. 그러다 보니 약속시간 전에 미리 만날 장소로 가야 한다는 의무감이 약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사진: 모토로라 마이크로텍 전화기

1996년 전까지만 해도 휴대전화를 사용하기위해 신청하려면 85만 원이나 되는 보증금을 내야 했다. 물론 사용하다가 그만 사용하겠다고 하면 돌려주었다. 이때만 해도 85만 원이라는 돈은 상당한 거금이었다. 모토로라 마이크로텍 단말기의 가격이 40~70만 원정도 하던 때였다. 이 당시에 휴대폰은 누구나 쓰는 시절이 아니었고 사업상 꼭 긴요하게 필요한 사람만 사용하던 때였다. 


1996년에 SK 텔레콤이 디지털 이동 전화를 도입을 하면서 보증금 제도를 없앴다. 그렇게 해서 일시에 많은 반환금을 내주었다. 이 85만원의 예치금은 이동전화 회선을 증설하는데 사용하는 시설투자비로 사용되었다. 한국이동통신 초기부터 모든 장비를 외국에서 들여 와야했다. 장비는 미국의 모토롤라와 AT&T로부터 수입해 왔다. 그러다 보니 시설 투자비가 많이 소요되었다. 시설 투자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보증금을 받아 충당했다.

미국 시카고에 있는 모토로라 사이트를 방문 중 차량에서 통화를 하고 있는 필자

조금 더 옛날로 거슬러 가 보면 우리나라에서 전화 천만 회선 돌파가 1987년 88서울올림픽을 1년 앞두고 이루어졌다. 대한민국의 기술력이나 경제력으로 볼 때 놀라운 성장이었다. 그보다 이른 1980년대 초에는 백색 또는 청색 전화가 있었다. 청색전화는 전화국 소유로 국가 자산이었다. 백색전화는 개인 소유로 자유로이 사고 팔 수있었다. 1980년 초까지만 해도 백색전화는 100만 원이 넘는 돈을 주어야 살 수가 있었다. 지금 같은 부동산 투기와 같은 뉴스로 거의 매일 전화 청약에 대한 내용이 보도되었다. 백색과 청색 전화라는 것은 전화기의 색깔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다.

자료사진: 전화 1000만회선 돌파 기념품(필자 소장품)

1980년 초까지만 해도 전화를 한대 집에 들여 놓으려면 전화국 앞에서 밤을 세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전화기를 가졌다는 것은 굉장한 재산 가치가 있었고 부의 상징이었다. 국민학교, 지금의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는 학기 초에 담임 선생이 가정생활 실태를 조사하였다. 조사는 학생들에게 일일이 물어보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질문 항목의 순서는 첫 번째가 "전화기가 있는가?" 다음은 "냉장고가 있는가?" 그리고 "세탁기나 선풍기가 있는가?" 순서였던 것 같다. 이렇듯이 집에 전화가 있다는 것은 부의 상징이었다. 


집집마다 전화기에는 '용건만 간단히', '3분 통화' 등의 문구들이 붙어 있었다. 기본 한통화는 3분이었고 공중전화에서도 동전을 투입하면 3분 동안 통화가 가능하였다. 지금은 공중전화에 카드를 넣거나 동전을 넣으면 통화한 시간 만큼만 과금이 되는 방식이다. 그래서 그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의 뇌리에는 전화요금을 아껴야 한다. 통화는 간단히 하여야 한다는 의식이 뇌리에 박혀 있다. 지금 같이 무제한 통화라고 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는 얘기이다.


다이얼 전화기에는 번호를 돌리는 다이얼에 자물쇠를 잠궈 놓았다. 또 나무 상자로 만들어진 전화기 케이스에 동전을 넣고 자물쇠를 열어서 전화를 걸 수 있게도 했었다. 바로 그때가 40년 50년 전이었다. 그랬던 것이 이제 일반전화 또는 유선전화라고 하는 것은 사라지고 누구든지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는 길거리에서 "휴대전화를 잠깐 빌려 써도 될까요?"라고 하면 아무 거리낌없이 빌려주는 시대가 온 거지요. 

자물쇠를 채우고 용건만 간단히라는 표지를 부착해 놓은 전화기

2010년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휴대전화 통화 요금은 매우 비쌌다. 휴대전화로 통화를 한다면 어디에서 어디로 통화를 하든지 무조건 시외 통화요금이 과금되었다. 그러다 보니 휴대전화를 빌려 쓴다는 것은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그때에 이동전화를 가지고 있던 직장인이라도 사무실에서 집으로 전화를 할 때는 사무실에 있는 유선전화로 통화하였다. 내가 인천에 있어서 인천에 있는 집으로 전화를 하더라도 시외전화요금을 물어야 했으니 지금같이 정액제니 무제한 통화니 하는 것이 꿈같은 시절이었다.


우리나라에 휴대전화가 보급되기 전 차량전화를 사용하던 때였다. 소형 자동차 가격이 몇백만 원하던 때 차량전화기 설치 비용은 어림잡아 400만 원이상이었다고 기억된다. 그 때 당시 포니 승용차의 가격이 400만원 정도였으니 거의 차량 1대 가격에 버금 가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차량전화가 설치된 차량은 거의 특권층 대접을 받았다. 1986년 경이었으니 아시아 경기대회가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던 때 고속도로에서 순찰차나 순찰 사이드카로 과속단속이나 교통사고를 처리하던 시절이었다.

자료사진: 차량에 설치된 이동전화용 안테나

호남 고속도로에서 과속으로 달리던 지프차를 교통 경찰이 세웠다. 당연히 차를 몰고 가던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순찰 경찰에게 잘못을 사과하고 선처를 바라야 했었다. 하지만 운전자는 내리자마자 경찰에게 다가가더니 속된 말로 조인트를 깠다는 것이다. 당황한 경찰은 영문도 모르고 당하고 있었는데 운전자가 "이 차가 어떤 차인데 함부로 세우냐"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차에는 길다란 안테나가 두개씩이나 달려 있고 창에는 새까맣게 썬팅이 되어 있어 안이 제대로 들여다 보이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차는 당시 정보기관 소속 차량이었다.


그렇게 해서 급기야는 모든 차량에 안테나를 취부하려면 '차량무선국허가증'이라는 증표를 부착하도록 규정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이 일이 있고 난 후에 차량에 무전기가 있든 없든 안테나를 부착하는 것이 유행했는데 제동이 걸렸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차량용 이동전화의 무선국 허가증 부착제도는 1990년대 말 이동전화 사용이 보편화 되면서 없어졌다. 아직도 아마추어 무선을 하기 위해 차량에 기다란 안테나를 설치하고 다니는 차량을 볼 수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아직도 차량용 무선국허가증을 부착하도록 하고 있다.

아마추어 차량용무선국허가확인증(사진출처: 블로그에서 캡처)

1990년 초까지 차량용 이동전화 설치는 아무데서나 할 수 없었다. 차량용 이동전화는 전국의 한국이동통신의 차량용 이동전화 설치장에서만 할 수있었다. 차량전화를 설치하려면 지정된 곳으로 가서 해야만 했다. 또 무선국 허가를 사람이 현장에 직접 가서 보안교육을 받아야 했던 때였다. 누구라도 예외없이 설치장에 와서 4시간 동안 통신보안교육을 받고 설치가 끝날 때까지 현장에 있어야 했다.


한국이동통신의 서울지역 차량전화 설치장이 있던 장안동에서 있었던 일화다. 이곳에 차량전화를 설치하러 왔던 아주 유명한 여자 탤런트가 이동전화 기술자에게 신발을 벗고 차에 올라 오라고 했다고 한다. 차에 차량전화기와 안테나를 달기 위해 드릴로 구멍을 뚫고 트렁크에서 운전석 곁에 까지 안테나선과 전원선을 연결하는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깨끗한 차에 작업복을 입은 기술자가 들락거리니 눈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그래서 신발을 벗고 들어 오라고 호통을 쳤다는 것이다.

차량전화설치 광경을 AI로 생성한 이미지

문제는 그 후에 일어 났다. 그 말에 기분이 상한 기술자가 부품이 없어 설치를 중단한다고 하고 며칠 후에 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순번을 기다리는 차량에 가서 작업을 했다고 한다. 당시에 차량 이동전화를 설치한다는 것은 정말 하늘에 별을 따오고 말지 할 정도였다. 그 연예인은 자신이 알고있는 온갖 배경을 동원하여 압력을 넣었지만 해결이 안되었고, 결국에는 그 기술자를 직접 찾아 가서 온갖 사정을 하고 며칠이 지나서야 개통을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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