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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바늘 Nov 09. 2023

03. 지옥같은 출퇴근길

내 탓은 아니지만 애써 불행할 필요는 없다

싫은 것으로부터 매거진의 이전 화들이 들어가는 말이었다면, 이번화부터는 이야기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싫어하는 것들을 상세히 분석하여 불행으로부터 벗어나보자.


정말 다들 싫어하는 것 같은 출근


  나는 카카오톡 이모티콘 플러스를 사용한다. 무료 한 달 사용 마케팅에 혹하여 무료로 체험 후 결국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는 서비스 중 하나다. 우리 가족은 하루 일상을 공유하는데, 그중에서 오늘도 잘 출근했다는 의미로 출근 이모티콘을 보내곤 한다. ‘출근’이라는 단어를 쓰면 많은 이모티콘이 펼쳐진다. 하나같이 지치고, 짜증 난 표정으로 끌려가는 듯한 모습이다.


  나는 적절한 이모티콘을 찾아보다가, 결국 자주 쓰는 이모티콘이나 ‘출근완료!’ 글자로 대신한다. 가족들에게 내가 억지로 끌려오듯 출근했다는 이모티콘은 보내기 싫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많은 이모티콘이 출근하면 부정적인 표정을 하는 이유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출근을 지친 상태로 억지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 공휴일 수를 세어보는 글은 각종 커뮤니티에서 매년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출근은 나 말고도 많은 사람이 싫어하는 것이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출근하고 있으니 출근은 아주 많은 사람들의 불행의 원인일 것이다. 그래서 대체 이 출근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한다.




우리는 왜 출근을 싫어할까.

먼저 출근이 왜 싫은지 생각해 보자. 출근이 싫다는 말은 몇 가지로 쪼개서 분석해 볼 만하다.   

‘지옥철’이나 교통체증을 매일 견뎌야 하는 출근길이 싫다.

하루 8시간 동안 별로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꼼짝없이 해야 하는 상황이 싫다.

회사 밖에서라면 무시해 버렸을 사람들과 억지로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피로감이 싫다.


끔찍한 출근길 - 에너지 고갈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직장인들의 평균 왕복 출퇴근 시간은 1시간이 넘는다. 지옥의 출퇴근이 왜 싫은가에 대해서는 딱히 분석할 필요가 없다. 차로 꽉 막힌 도로에 앉아서 그저 앞의 차가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것이나,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지하철과 버스 안에 겨우 서 있는 것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아무런 즐거움이 없는 고문이기 때문이다.

https://www.fnnews.com/news/202301081818050102



하루 최소 8시간 동안 딱히 좋아하지도 않는 것을 하기

  탄력근무니 재택근무니 하는 최신 시스템은 우선 논외로 하고 일반적인 회사생활을 가정해 본다면, 우리는 최소 9시부터 8시까지 회사라는 곳에 묶여있어야 한다. 그 시간에 회사에 나타나지 않으면 무단결근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가 나타난다. 우리는 그 시간 동안 무엇이든 회사에서 지시하는 업무라면 당연하게 하는 것으로 계약되어 있고,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자유는 완전히 박탈된다.


 싫은 사람과 억지로 관계를 유지하기

  직장인 876명을 대상으로 한 2019년 벼룩시장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4.5%가 ‘직장생활 중 우울감을 느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우울감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로는 ▲직장인으로서 내 미래에 대한 불안감(23.9%)이 뽑혔고 2위는 ▲상사·동료와의 관계(23.2%)로 나타났다. 여성의 경우에는 1위가 ▲상사·동료와의 관계(28.4%)로 나타났다. 직장인으로서 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라는 요소가 출근 자체를 싫어하는 이유와는 거리가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출근이 싫은 이유 1위는 상사·동료와의 관계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자료출처

http://m.findjob.co.kr/JobGuide/LifeDetail/?SORT=1&Page=6&Total=172&IDX=24777&NUM=82



출근 - 정바늘


그렇게 싫은데 왜 다들 출근할까?

  답은 간단하다. 출근하지 않는 것을 더 싫어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출근하는 것을 더 싫어했다면 우리는 출근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말을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출근하는 것보다 어떻게 집에서 즐거운 휴식을 하는 것을 더 싫어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다.


그냥 출근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출근이 너무 싫어서 출근을 하지 않은 상황을 상상해 보자. 가장 먼저는 지각이라고 생각한 상사로부터 연락이 올 것이다. 연락을 무시하면, 계속해서 연락이 올 것이다. 회사에서 일한 기간이 꽤 길거나, 회사일에 열정을 보였거나 회사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면 낮은 확률이지만 당신을 너무나 걱정한 동료가 집으로 찾아올 수도 있다.


  아니면 당신의 부모님에게 연락을 할 수도 있다. 스마트폰을 끄고 침대에 누워있던 당신은 부모님의 전화도 받지 못한다. 부모님은 패닉에 빠져 실종신고를 할 수도 있고 당신의 집에 직접 찾아올 수도 있다. 단지 출근을 하루 하지 않은 것으로 얼마든지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당신은 이 상황보다 출근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출근한다.


연차를 내면 어떨까?


  연차는 단지 일시적인 회피일 뿐이다. 일 년에 15일을 모두 쓴다고 해도 출근해야 하는 날이 훨씬 많다. 연차를 쓰는 것이 동료와 상사의 눈치가 보여 연차를 사용하는 것조차 스트레스가 된다.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연차를 내고 즐거운 휴식을 취하는데, 업무 관련 연락이 온다. 또는 충분히 휴식을 취했지만 어쨌든 내일은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불행해진다. 연차의 효과는 육체적인 피로감을 조금 회복시켜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사라진다. 


퇴사가 답일까?


  출근이 너무 하기 싫다면, 퇴사하는 방법이 있다. 퇴사를 하면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퇴사하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상상해 보자. 당신은 퇴직금을 생활비로 다 쓰고 나면 더 이상 수입이 없다. 당장 월세를 낼 돈이 없고 먹을 것을 살 돈이 없다. 운이 좋으면 부모님의 집으로 돌아가서 부모님의 실망한 표정을 마주하거나 배우자의 수입에 의존하며 은근한 압박감을 있겠지만 운이 나쁘면 정말로 노숙자가 되어야 할 수도 있다. 우리는 노숙자가 되거나 부모님을 실망시키거나 배우자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 보다 출근을 덜 싫어하기 때문에 출근한다.




이제 출근이라는 불행에서 벗어나보자


  이제 우리는 출근이 우리가 더 싫어하는 것보다는 덜 싫어하기 때문에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조금 덜 불행해질 수 있다. 출근을 하는 것이 그 누군가의 강요도 아닌, 더 싫은 것을 피하려는 내 선택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출근이 너무나 즐거운 일이 되지는 않는다. 이제는 매일 아침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출근으로 인한 불행으로부터 최대한 벗어나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지옥의 출퇴근이 너무나 싫다면.


  출퇴근길을 지옥으로 만든 것은 대한민국 대부분의 기업들이 서울과 수도권이 몰려있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지금 지옥의 출근길을 겪어야 하는 우리들의 탓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불행을 우리가 마치 운명인 듯 겪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출퇴근길이 그토록 고통스러운 것에 비해서, 이 불행은 꽤 쉽게 해결할 수 있다.

  회사 근처로 이사를 가거나,

  집과 가까운 곳으로 이직하면 된다.

  혹은 교통체증이 적거나 대중교통에 자리가 많은, 다시 말해 '서울'이 아닌 곳으로 이사를 가버리면 된다.


  내가 지옥의 출퇴근으로 인한 불행을 해결한 방법도 이것이었다. 나는 회사 근처로 이사를 가 보았고, 집과 가까운 곳으로 이직도 해보았다. 심지어 지금은 서울이 아닌 곳으로 이사까지 왔다. 지옥의 출퇴근이 정말 정말 싫었기 때문이었다.

  

  이사, 이직, 그게 말처럼 쉬워?라고 생각된다면 왜 둘 중 하나를 할 수 없는지를 분석해봐야 한다. 회사 근처로 이사 가는 것에 대해서는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회사 근처는 월세가 더 비싸다, 이사는 과정이 피곤하다, 짐이 너무 많다, 이사할 시간이 없다. 하지만 이 말들은 이렇게 바꿀 수 있다. 나는 월세를 더 내는 것보다는 지옥의 출퇴근이 나아, 나는 피곤한 이사과정을 견디는 것보다는 지옥의 출퇴근이 나아, 나는 짐을 정리하는 것보다는 지옥의 출퇴근이 나아, 나는 이사할 시간을 내는 것보다는 지옥의 출퇴근이 나아.


  집 근처의 회사로 이직하는 것은 어떨까. 이번에는 이런 생각이 든다.  집 근처 회사에는 합격할 능력이 안 돼, 집 근처에는 원하는 보수를 주는 회사가 없어. 이제 누구나 예상하겠지만, 이것은 집 근처 회사로 이직할 능력을 키우는 것보다 지옥의 출퇴근이 덜 싫은 것이다. 좀 더 적은 월급을 받는 것보다는 지옥의 출퇴근을 덜 싫어하는 것이다. 서울의 멋진 대기업에 다닌다는 라벨을 포기하는 것보다는 지옥의 출퇴근을 덜 싫어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옥의 출퇴근이 '다른 해결책들을 시도하는 것보다' 참을만하기 때문에 여전히 매일 아침의 고통을 견딘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실행하느니 지옥의 출퇴근 정도는 참을만하기 때문에 참고 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인정해 보자. 이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쉽게 덜 불행해질 수 있다.


어쩌면 별로 안 싫어할 수도.


  이 모든 말이 헛소리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사실 당신은 불행한 당신의 모습을 꽤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을 해봐야 한다. 불행을 좋아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지옥의 출퇴근을 좋아하는 것이다.


  우리가 너무 싫어하는 것에 대해 혹시 좋아아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 주장에 거부감을 느낀다면 이렇게 설명해 설명해보겠다. 당신은 출퇴근길에 느끼는 고통을 스스로에게 또 타인에게 이야기하거나 그 모습 자체를 보여줌으로써 타인의 안쓰러워하는 반응이나 존경하는 반응을 은근히 즐기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고생하고 산다, 가족을 위해 이렇게 희생한다, 나는 이렇게 힘들게 출퇴근하니 이걸 알아봐라, 이렇게 지하철에 고통받고 서있으니 나도 꽤 사회인 같다.'라는 생각이 지옥 같은 출퇴근 길에 종종 떠오른다면, 자신이 지옥의 출퇴근길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나도 그랬다. 나는 평범한 경기도인으로서 서울로 출근하며 매일 고통을 겪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꽤 오랫동안 회사 근처로 이사 가거나 집 근처로 이직하는 방법은 선택지에도 넣지 않았다.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무의식 중에 길고 고통스러운 출근길을 그 자체로 내 능력과 노력에 대한 증명으로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지옥의 출퇴근길을 정말로 싫어하게 되자마자 나는 회사 근처의 방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니 싫은 척은 그만하고 고통받는 당신의 모습을 마음껏 즐기고 자랑하자. 당신은 그것을 진짜로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해결책의 다양한 문제들보다 지옥의 출퇴근이 정말 싫다면, 이 지옥에서 벗어나기만을 매일매일 바란다면, 이제는 불행을 치워버리는 작업을 실행할 때다. 억지로 불행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전혀 없다.




  출근이 싫은 이유 세 가지 중 한 가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출퇴근길로 인한 고통은 어쩌면 출근이 싫은 원인들 중에서 가장 해결하기 쉬운 부분이다. 별로 재밌지도 않은 일을 여덟 시간 묶여서 해야 하는 것과, 친구는커녕 지인으로도 두기 싫은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말이 길어질 것이 분명하여, 다음 챕터에 이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02. 불행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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