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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바늘 Nov 15. 2023

06. 풀타임이 뭐길래.

인생의 반이 일인 삶.

  이전 편까지 출근이 싫다를 세 가지로 나누어 힘든 출근길과 일자체가 하기 싫은 두 가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이번 편에서는 하루 9시간 동안 회사에 있어야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하루 최소 8시간 회사에 있는다는 것


  출근이 싫은 이유 중 세 번째는 최소 8시간 자리에 앉아 일한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두 가지로 또 나눠볼 수가 있는데, 하나는 8시간 동안, 점심시간을 포함한다면 최소 9시간 동안 회사에 묶여있어야 한다는 고통. 그리고 두 번째는 회사에서 지시하는 것이라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일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자유의 박탈이다.


8시간은 얼마나 긴가


   시간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계산의 편의를 위해 일하는 시간을 8시간이라고 계산해 보면 하루 24시간 중 3분의 1에 해당한다. 또 계산의 편의를 위해 8시간 정도 잠을 잔다고 가정하면, 깨어있는 시간 중에는 무려 2분의 1의 시간 동안 우리는 회사를 위해 일하게 된다. 물론 우리에게 주말이라는 달콤한 휴식이 있지만, 일주일의 7분의 5라는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지옥의 출퇴근길이 싫어서 집과 가까운 회사에 취직했기 때문에 집에서 나선 시간부터 회사에 도착하기까지 도어투도어가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전 직장에서는 직장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 가기 전까지 도어투도어가 무려 편도 두 시간이었던 것에 비하면 말도 안 될 정도로 출근길이 편해졌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매일 이렇게 생각했다. 9부터 업무시간이라면 그래도 8시 50분까지는 자리에 앉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8시 20분이면 집에서 나왔다. 8시 20분에 집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나는 7시 30분이면 일어나야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출근 시간은 7시 30분과 똑같이 느껴졌다.


"7시 30분부터 6시 30분까지는 꼼짝없이 시키는 일만 하는 노예 생활을 해야 하는구나. 그것도 전혀 충분하지 않은 급여를 받으면서 말이야."


  그 생각을 떠올린 순간 나는 내 인생 자체가 끔찍하게 느껴졌다. 시시각각 바뀌는 디자인 트렌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운이 좋다면 40대까지는 디자이너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공부를 한다고 해도 시대를 보는 눈이 완전히 다를 20대의 뇌는 이길 수 없을 텐데. 40대까지는 하루 열한 시간을 '회사 노예'로 지낸 다음에 이후에는 다른 일을 알아봐야겠지... 50세에 새로운 일이라면 대체 뭘 할 수 있지? 이런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다 보면 언제나 마지막은 답을 모르겠는 절망감으로 끝이 났다.


  앞으로 인생에서 기대할 것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모든 것이 싫었다. 그중에서도 하루 11시간을 그냥 회사의 부품이 되는 것이 가장 싫었다.  나는 항상 돈보다 시간을 아까워하는 사람이었다. 한 달에 20일 근무한다고 생각하면, 무려 220시간을 회사에서 의미 없이 보내야 하고 그 대가는 두근거리는 설렘도 환희도 아닌, 굶어 죽거나 노숙자가 되지 않는 상태정도였다.


9to6는 대체 어디서 온 숫자인가?


  나는 궁금했다. 대체 풀타임 근무가 9시부터 6시까지라는 기준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일은 인류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있었으니, 저 시간은 아마 인공적인 빛이 없을 때로 거슬러 올라갈 것 같다. 어쨌든 일거리가 잘 보이는 시간에 일을 해야 했을 것이고, 그래서 해가 뜨면 일을 시작해서 해가 질 때까지 일 한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여름철에는 묘시(오전 5시~7시)에 출근해 유시(오후 5시~7시)에 퇴근하고, 겨울철에는 진시(오전 7시~9시)에 출근해 신시(오후 2시~오후 5시)에 퇴근했다고 한다. 해를 기준으로 결정된 것이 보이는 시간이다. 1959년 한국인 근로자 표준 근로시간에는 평일에는 8시 30분부터 17시 30분까지, 토요일은 8시 30분부터 14시까지 근무했다고 기록되어있다고 한다. 아마도 인공적인 빛이 발명된 후에도 해를 기준으로 일하던 습관이 계속해서 이어져온 것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일할 필요는 없다.


  인공적인 빛의 발명으로 우리는 굳이 일하기 위해 태양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가 9시부터 6시까지 일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또 있다. 산업혁명 시기에는 일을 많이 할수록 생산량이 늘었다. 사람은 기계나 다름없이 취급되었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사람들에게 최대한 일을 시켜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더 오래 일한다고 생산량이 느는 것이 아닌 수많은 직종이 생겼고, 개인의 능력으로 생산성을 높여 더 짧은 시간 안에 더 좋은 결과물을 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했어야 할 일을 기계가 대체하였기 때문에 하루 9시간을 회사에 죽치고 있을 필요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하루 9시간 동안 일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바빠 보이는 방법으로 필요를 입증하기 위해 가치 없는 '가짜 노동'을 하게 된 것이 현실이다. 


19세기처럼 먼 옛날 정치가이자 발명가였던 벤저민 프랭클린도 하루에 4시간 노동이면 차고 넘친다고 선언했다. -<가짜 노동> 데니스 뇌르마르크. 아네르스 포그 옌센 지음


바쁘지 않으면 가치 없는 인간


  과거에는 노는 것이야 말로 높은 신분의 상징이었으나, 현대 사회에서는 바쁠수록 '잘난 사람'이 된다. 항상 일이 넘치는 사람, 쉴 시간도 없이 일하는 사람, 주말도 없이 일하는 사람은 건강이 걱정되지만 멋진 사람이고 회사에서는 없으면 안 될 사람이다.


  반대로 하루에 네시간만 일하고, 남은 시간은 여유를 즐기며 큰돈에는 연연하지 않는 사람은 야망이 없고 빈둥거리며 놈팡이 취급을 당한다. 현대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의 꿈이 '돈 많은 백수'인 것과 달리 세상의 시선은 싸늘하다.


  사실 돈 많은 백수가 꿈이라는 이야기 안에는 돈이 돈을 벌어올 만큼의 자본이 이미 있는 상태에서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는 것이라는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적당히 벌고 그것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은 쉽게 가치 없는 인간으로 낙인찍히고 만다.


  사회가 이렇다 보니 작은 것에도 만족하고 하루하루를 즐기며 사는 사람이 사회적 시선을 완전히 무시하고 온전히 행복해지기가 어렵다.

9 to 6 - 정바늘


쓸데없이 긴 노동 시간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법


첫 번째, 아무리 오래 일해도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열정을 일으키는 일을 찾는다.


  여러 책을 통해 공부한 결과들 중 나처럼 일하는 시간을 결정하는 데에 권한이 없는 개인이 빠르게 불행해서 벗어나는 방법은 씁쓸하게도 일 자체를 사랑하는 방법뿐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 여정은 쉽지 않지만, 일단 찾고 나면 매일 일하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다. 일한다는 기분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회사생활에서 안정감을 찾는 성향의 경우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찾아도 회사의 다른 부분이 여전히 고통을 줄 수 있다는 위험성도 있다. 그리고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도 내가 원해서 8시간 일하는 것과, 그렇게 해야만 월급을 주기 때문에 8시간 일하는 것은 다르다.


두 번째, 하루에 8시간씩 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깨닫고 기업이 먼저 나서서 노동시간을 줄인다.


  이 방법은 부디 이 글을 읽을 수도 있는 대표님들과 사장님들이 꼭 행동해주셨으면 하는 부분이다. 수많은 실제 사례에서 주 4일제 시행이 생산성을 높이는 것으로 증명되고 있다. 많은 선구적 기업들이 성공적으로 유연근무제를 채택하고 있다. 


  나는 이런 시도들에 매우 감사하고 과도기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하루 네 시간, 일하고 싶은 시간에 일하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지금 우리가 나인투식스를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지키는 이유 중 큰 이유가 아마 다른 회사도 그렇게 일하기 때문일 것이다. 5시에 퇴근했는데 5시 30분에 중요한 연락이 오면 어떡하지? 금요일에 큰 컨택이 오면 어떡하지? 하면서 말이다.


   어쨌든 다 같이 적게 일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 회사부터 먼저 시작해야 한다. 사장님들이여! 돈 벌 기회를 놓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적게 일하는 것이 더 큰 매출을 가져다줄 것이다.


세 번째, 나부터 적게 일하는 사람을 마음대로 판단하지 말자.


  세상이 이렇게 된 것은 사람들의 생각이 모여서다. 그리고 세상이 바뀌기 위해서는 사람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우선 나부터가 사람들을 '놈팡이'취급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노숙자가 한심한가? 나는 노숙자를 불쌍하게 여기지도 않지만 한심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모두에게는 저마다 이유가 있고 삶의 방식이 있는 법이다. 어떤 실험에서는 구걸 시급이 우리보다 더 좋다는 결과를 내기도 했다.


  노숙자를 향해 혀를 차는 대신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살 혁신적인 방법을 찾은 선구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떨까? 노숙자야말로 진정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 이런 의견은 충분히 거부감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남의 인생을 마음대로 재단하는 것보다는 났다. 우리는 인간의 개개인성을 이제는 인정해야만 한다. 다른 사람들처럼 살지 않는다고 해서 잘못된 삶은 아니다.


네 번째, 근로 시간을 줄이겠다는 정치인에게 투표한다.


  나는 정당을 떠나 수많은 사람들이 주 4일제를 시행하겠다는 사람 대신 근로 시간제한을 60시간까지 풀겠다는 사람에게 투표했다는 것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었다. 기업 대표보다는 기업에 취직해 일하는 사람이 훨씬 많고, 심지어 오래 일한다고 해서 생산성이 높아지지도 않는데 말이다. 이 방법은 즉각적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분명 효과가 있는 방법이다. 내가 정치라는 멀고도 험해 보이는 세상에 진짜로 영향력 있는 의견을 낼 방법이다.


우리는 덜 일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일하다 지쳐 죽지는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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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자료


https://youtu.be/xVRaqOckX6c?si=-nah0-1vyJfJMw2s

가짜노동 - 데니스 뇌르마르크. 아네르스  포그 옌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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