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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바늘 Nov 13. 2023

04. 일하기 싫다.

왜 일은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가.

사람이 어떻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니?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많이 듣고 자란 말이다. 학생이니까 공부해야 하고 성인이 되었으니까 일을 해야 한다. 어차피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그놈의 적성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는 말도 들어왔다. 기성세대가 이렇게 말해온 이유도 이해는 한다. 


  30대인 나를 기준으로 하여, 우리의 두 세대만 위로 올라가면 우리나라는 전쟁이라는 비극으로 인해 깊은 집단 트라우마가 있는 세대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대부분이 전쟁 이후 지독하게 가난한 어린 시절을 겪고 근면성실한 노동을 통해 현재 어느 정도의 풍요를 누리고 있는 세대다. 그러니 그들의 시선에서 이 일 저 일 가리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 세대의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세대 또는 우리 다음의 세대는 이런 말들을 머리로 이해는 하더라도 공감은 할 수 없다. 가파른 경제 성장과 함께 했던 부모님 세대와 달리 우리 세대는 직장에 충성을 바쳐 일한다고 해서 언젠가 충분한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


  부모님 세대에 비해 물가는 10배 이상 올랐지만 급여는 거의 비슷한 현실이기에. 급여가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흔히 '철밥통'이라고 불리는 직종을 제외하고는 언제든 해고당할 수 있다는 불안에 시달리기도 한다.


   우리 세대의 교육 수준이 이전 세대보다 확연히 높아진 것도 문제가 된다. 부모님 세대의 30%만 대학교에 진학했던 것과 달리 우리 세대는 70%가 대학교에 가게 되었다. 좋은 대학교만 가면 인생이 달라진다는 일념으로 10대 시절을 오직 공부에만 집착하여 살게 되는 세대이기도 하다.


  평범하게 착한 아이이고 싶었던 나도 마찬가지로 10대 시절을 보냈다. 이런 내가 취직 후 소위 허드레 일이나 헛짓거리 일들과 마주하게 되었을 때, 내 지난 인생 전체를 부정당하는 충격을 받았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사회적 세뇌가 아닌 '진짜 중요한 것'을 깨달은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다면 내 세대의 대부분이 이런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내가 남의 심부름이나 하면서, 겨우 파산 상태를 벗어나게 해주는 월급을 받으면서, 재미도 가치도 느껴지지 않는 일을 하면서 이렇게 평생을 보내려고 그렇게 치열하게 공부했던 것일까. 남들이 보기에는 평범하고 편안한 인생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나는 정말 이렇게 살기는 정말 끔찍하게 싫었다.


  어쨌든 죽기는 싫어서 나는 생각했다. 일이 왜 나를 불행하게 하는가?


일 - 정바늘


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이유


  일이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이유는 첫째로 일을 도저히 안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일하기 싫은 것'은 '지옥의 출퇴근 시간이 싫은 것'과 달리, 문제를 없애버리는 것으로 해결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일하지 않으면 인생을 불행하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기가 어럽다. 이제 세상에 자신이 먹을 것, 잘 곳, 입을 것을 모두 직접 만드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현대 인간들이 갑자기 다 함께 힘을 합쳐 현재 사회시스템을 박살내고 '다시 모두가 각자 먹을 것을 길러서 먹자'라고 한다면 또 모르지만, 누가 봐도 어이없는 망상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해야 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 그리고 생존하기 위해서.


일이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이유는 둘째로 우리가 가치 없는 일(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완성도가 떨어지는 제품을 판매한 적이 있다. 그 제품을 개발하지도 제조하지도 않았지만 구매자들의 불만을 들어야 하는 것은 나였다. 환불이나 교환을 최대한 해주지 말라는 지시에 나는 그저 불만 앞에 서서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해야 했다. 고객센터에서 흔히 있는 감정노동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 문제는 내가 디자이너로 입사했다는 점이다. 그 일은 내 기준에서 가치를 창출하는 일이 아니었다.


  내 생각에는 제품을 더 완성도 있게 만들거나, 결함이 있는 제품을 고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거나, 적어도 제품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구매자와 상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관련 없는 내가 그 일을 함으로써 구매자는 자신이 지불한 대가에 맞는 대답을 듣지 못했으며 나는 좋은 것은 아무것도 만들지 못하고 그저 나를 소모하기만 했다.


  우리는 일을 통해 세상에 가치를 만들어낸다. 어떤 것이 가치를 만들어 내는가 하는 인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재미있는 창작물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을 큰 가치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어린이를 가르치는 것을 큰 가치라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귀찮은 일을 쉽게 하도록 만들어주는 도구를 만드는 것을 큰 가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 때문에 불행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이 세상에 제공하고 싶은 가치와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창작물을 만들어야 할 사람이 단순한 데이터 입력 일을 하거나, 어린이를 가르쳐야 할 사람이 잡다한 행정처리에 시간을 보내거나, 이로운 도구를 만들어야 할 사람이 사람들의 불만을 들어주는 일로 힘을 다 써버리는 경우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가치와 다른 일을 하면 매일 일은 참고 견녀내야하는 고통이 된다. 일주일에 5/7은 가치 없는 것을 하고, 단지 2/7의 시간 동안, 혹은 심지어 일주일에 하루만 가치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불불행하게 살기가 당연히 어려울 것이다.


일이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이유는 셋째로 우리가 남을 위해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믿기 싫지만 돈 벌기 가장 쉬운 방법은 취직을 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선택이나 가장 빨리 버는 선택은 아닐 수도 있다. 우리의 뇌는 생존을 위해 가장 위험하거나 불확실한 선택은 피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있고 당장 안전한 방식을 선택하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취직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자연스럽게 취직을 택한다.


  불확실성과 위험을 피해 취직을 하게 되면, 우리는 취업이라는 큰 문턱을 넘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고 얼마나 원했는지를 빠르게 잊어버린다. 취직의 기쁨이 오래 지속되면 좋겠지만 우리의 뇌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마치 아무리 맛있는 저녁밥을 먹어도 내일은 또 배고픈 것처럼 즐거운 기분은 휘발되어 버린다.


  기쁨이 사라져 버린 뒤에도 나는 책임감으로 성실하게 일했다. 재미없어도 열심히 일하면 정당한 보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정당한 보상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면서 말이다. 나는 회사에서 내 기분이 강렬하게 나빠지는 순간들을 경험했다. 내 업무가 아닌 일을 해야 할 때, 내 의견과 성과가 무시당할 때, 우리들의 노력으로 이뤄낸 회사의 성장에도 그 보상은 한 명이 독점할 때. 이것들의 공통점은 내가 일 자체가 아니라 회사라는 시스템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는 증거였다.


  기술의 발전과 기업의 성장은 소득 불평등을 가중시킨다고 한다. 대표는 단지 증가한 소득보다만 적게 직원에게 보상하면 된다. 혹은 '니들 덕이 아니잖아'하는 마음으로 보상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일을 하면 할수록 내가 남의 꿈을 이뤄주는 일, 남의 돈 벌어주는 일에 내 몸과 마음을 소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이유는 넷째로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을 하는 대가로 어떤 보상을 기대할 수 있을까? 계속 이야기하고 있듯 회사에 취직하여 일하고 있다면 급여를 기대할 수 있다. 일 때문에 불행한 사람이라면 이 급여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계속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오직 돈을 기대하고 일하게 되면 당연하게도 불행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월급날 외에는 매일이 불행하다는 것 외에도 우리는 대부분 '일한 만큼 충분히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먼저 절대적인 기준을 보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과 앵거스 디턴은 소득 수준이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연구했다. 갤럽 설문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이 연구는 결론적으로 연간 약 7만 5000달러를 기준으로 이보다 소득 수준이 는다고 하더라도 행복감에는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이는 2023년 한국기준으로는 연봉 약 1억이 될 때까지는 소득이 늘수록 행복도가 증가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신의 연봉이 1억 이하인가? 그렇다면 일과 급여에 불만이 생기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상대적으로도 기분이 나쁘기는 마찬가지다. 내가 죽어라 일해서 올려놓은 매출은 어디로 갔는가?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던 상사나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대표가 가져간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가?


   꼭 나보다 높은 직급의 사람과 비교할 필요도 없다. 동료와 비교해 보자.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연봉을 기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속 터놓고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 동료의 연봉을 알 수가 없다. 어느 날 나와 같은 일을 하는 같은 연차의 동료가 나보다 어째서인지 돈을 더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과연 그 누가 내 실력이 모자라다거나 더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원숭이조차도 공정하지 못한 보상을 거부하는데 말이다.

 


뻔한 이유로 보여도 써봐야 하는 이유는


  당연한 이유들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뻔한 이유들이라도 글로 써보고 확인해야 우리가 불행한 이유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불행할 때에는 내가 불행이라는 에너지 안에 있기 때문에 벗어나기가 어렵다. 수많은 자기 개발서에서 말하듯, 어떤 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객관화와 관찰이다.


  이번 화에서는 일, 특히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이유를 찾아봤다. 해결해야 할 문제를 알았으니 반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럼 대체 이 막막한 일이라는 불행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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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가짜노동 - 데니스 뇌르마르크. 아네르스  포그 옌센

숫자 사회 - 임의진

노잉 - 안도 미후유

웰씽킹 - 켈리 최

계급 - 이재유

리얼리티 트랜서핑 - 바딤 젤란드

[기고] 원숭이가 오이를 던진 까닭은?

https://m.naeil.com/m_news_view.php?id_art=295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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