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리킨디센터 Jul 28. 2020

그래도 음악은 계속됩니다

크리킨디 공연음악작업장 2020

크리킨디센터 공연음악작업장에는 다양한 나라의 악기가 가득합니다. 아프리카, 브라질, 쿠바 등 한국으로부터 머나먼 곳으로부터 왔죠. 이 악기를 퍼커션Percussion이라고 합니다. 맨손 혹은 나무 스틱으로 두드리거나 빨래판 같은 악기를 긁고, 작은 알갱이를 넣은 통을 흔들어 연주합니다. 또한 비전력입니다. 울림이 있는 타악기를 여러 사람이 함께 연주할 때 그 소리는 점점 크고 웅장하며 멀리 퍼집니다. 

이렇게 다양한 악기가 가진 역할과 장점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동체적인 음악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음악이 가진 서로를 감각적으로 연결하고, 교감하는 힘으로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세상과 어우러지는 문화를 만들어가고자 했습니다.


청소년 공연음악팀 “양천리축제단”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 청(소)년 공연음악팀이 있답니다. 2019년 봄부터 우연한 계기로 접한 월드뮤직을 조금 더 집중해서 해보고 싶은 청소년들이 모인 팀입니다. 각자의 하루를 마치면 매주 수요일, 토요일 저녁마다 모여서 합주하고, 팀의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도 종종 나눕니다. 19년에는 노들장애인야학 “평등한 밥상”(무상급식 기금 마련), 927 청소년기후행동 '미래를 위한 금요일' 등 매체의 사회적 기여에 대해 고민도 하면서, 진지하지만 또 즐겁게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올해는 서로 기운을 북돋고자 양천리축제단 멤버의 졸업식을 축하공연으로 첫 시작을 알렸습니다.


낯설고 어색한 첫 화상모임


그렇게 시작에 박차를 가하던 중, COVID-19 상황이 발생합니다. 만날 수도 없고, 같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전면으로 통제되는 상황에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음악은 귀를 쫑긋 여는 것부터 시작해 말하는 것, 움직이는 것까지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즉, 감각적인 작업입니다. 악기연주를 통해 서로 교감하는 과정에서는 그런 다양한 바디 랭귀지(Body Language)가 펼쳐집니다. 어떤 표정인지, 뭘 느끼고 있는지, 뭘 표현하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즐겁고도 집중하게 되는 순간들이죠.


화상채팅이 매우 활발해지는데, 그럼 온라인으로도 합주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네, 안타깝게도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컴퓨터로 보낸 나의 소리가 상대에서는 (인터넷과 기계 환경에 따라서) 몇 초 뒤에 들리게 되거든요. 그 격차를 줄이려면 매우 빠른 인터넷 속도와, 별도의 장비와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만나지도 못하고, 악기도 없고, 난관에 빠질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래서 떠올린 것이 “악기가 없을 때, 악기가 아닌 것을, 악기로 생각해 본다면?”을 떠올려봤습니다. 어떻게 보면 플라스틱 통, 버려진 철재물, 콘크리트바닥 등 길거리 드럼 연주(Street Drum)와 흡사합니다. 그렇다면 무대가 집이고, 그런 다양한 소재가 가장 많은 장소를 떠올려보니, 바로 주방이었습니다.


물론, 부모님의 등짝 스매싱을 각오해야 합니다.


울림통이 있는 김치통/분리수거통을 두드리고, 물 받침대를 젓가락으로 긁고,어느 정도 사용한 후추통/깨통을 흔들면 비슷한 소리가 나지 않을까요? 커다란 북소리를 내려면, 냉장고 문/세탁기 문을 크게 닫으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악기인 적 없던 것들이 만들어내는 리듬이 흐르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리듬키친”일 것입니다. (P.S. 박자주방이라고 할까 생각도 했습니다.)


처음 해본 녹음


준비물은 이렇습니다.

1) 화상통화를 하기 위한 기기(스마트폰 or 태블릿PC or 노트북) * 화상프로그램 ‘ZOOM’

2) 소리를 녹음하기 위한 기기(스마트폰 or 태블릿PC) * 무료프로그램 ‘Bandlab’

3) 유선이어폰

4) “저것은 악기가 될 것이다”라는 호기심     


먼저 제가 녹음한 소리들을 들려주고 (*녹음된 소리는 마챠Marcha라고 하는 브라질음악 리듬을 연주했고, 참가자들은 이미 해당 리듬을 배워본 청소년들입니다) 참가자들에게 어떤 소리인지 알아맞춰 보라고 했습니다. 도마를 두들기는 소리, 뭔가를 긁는 소리, 깨통을 흔드는 소리까지 맞추었습니다. 실제로 연주한 방법은 1) 냉장고 닫기 2) 체 긁기 3) 도마 치기 4) 전자레인지 돌리기 5) 물컵 쇠젓가락으로 치기였습니다. 다들 새삼 놀라면서 제 말을 듣고 나니 그렇게 들린다고 합니다. 저음, 중음, 고음에 대한 감각은 대부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기초적인 녹음 방법을 함께 배우고, 각자 유사한 소리로 만들어 보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더니 한참을 각자 집안에서 있는 물건들을 찾아 소리를 녹음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김치통, 분리수거통, 깨통, 유리컵을 연주했고, 특이하게도 침대 프레임을 무언가로 쳐서 녹음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이 소리가 가장 우수하게 녹음이 되었고, 듣기도 좋았습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부분이고 원리를 상상해서 해본 것도 아닌데 꽤 기분 좋게 만드는 결과물이 나왔던 것이었습니다. 물론, 어떤 부모님은 잃어버린 냄비 뚜껑을 자녀를 통해 찾을 수 있었습니다.


Bandlab 가상악기 기능 활용하기


2회차에는 녹음한 파일을 다루는 법(자르기, 붙이기, 소리 줄이기/키우기 등)을 알아보고, 가상악기를 통한 연주(라고 쓰고 그냥 논다고 읽음)를 했습니다. 어떤 소리는 너무 쨍한 소리의 고음이라 귀를 찌를 수도 있기 때문에 소리를 줄여줘야 합니다. 어떤 소리는 너무 벙벙한 저음이라 줄여줘야 하기도 합니다. 스마트 기기에 익숙한 청소년들은 곧잘 따라와 주었고 어느 정도 듣기 괜찮은 수준으로 만들어지고, 이제 좀 짜릿한 장난을 쳐볼 때입니다. 실제로는 가지고 있지도 않은 가상의 악기들을 프로그램으로 불러와서 합창단의 목소리를 넣어보기도, 세계의 다양한 퍼커션 소리를 넣어보기도 합니다. 매우 뜬금없는 시도지만, 생소한 만큼 새로운 즐거움도 있었습니다.


어떤 리듬을, 어떻게 만들어가지?


3회차에는 제가 제시했던 예시가 아니라, 본인들이 알고 있는 리듬(혹은 음악)을 직접 설계해서 연주해보았습니다. 유사 악기를 직접 찾으러 다니고, 다양한 방법으로 연주를 시도하여 가장 듣기 괜찮은 소리를 찾아냅니다. 즐거움이 가득했지만, 녹음하러 다니는 건 바쁜 일이었습니다. 잘 녹음하고 싶어서 여러 번 연습하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어진 시간이 많이 짧게 느껴져서 아쉬움을 얘기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워낙 즉흥적인 시도로 가득 찬 실험이다 보니 하나도 확실한 것이 없고, 그래서 확신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음악에 대해 접근하고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회차에서는 리듬잼을 하였습니다. 주최자인 제가 가장 기본적인 비트를 정하고, 연주 형식은 대체로 공유된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각자 역할을 나누고 녹음하여 공용파일에 업로드합니다. 그리고 각자의 공간에서,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소리로 연주해보는 것이지요. 생각보다 잘 되었습니다. 녹음의 품질이 훌륭한 경우도 있었고, 너무 예상치 못한 결과로 리듬이 엇나가서 기획된 대로 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상상한 대로 펼쳐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 즐거웠습니다. 약간 박자가 맞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뭔가 음악적이라고나 할까요? 


처음 이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라는 속담처럼 뭔가 어설픈 결과물이 나오면 어떡할지 고민도 했습니다만, 생각보다 봉황이 된 경우도 많았습니다.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음악은 많은 장비를 갖추고 시작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녹음은 아주 높은 문턱 너머에 있지 않습니다. 잘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기 전에, 음악과 어떤 관계로 지낼 것인가 떠올려보면, 기술이라는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포기하기보다는 우당탕해보는 경험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도 그렇게 생각해주는 참가자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비대면이 대면을 따라올 수는 없는 부분도 있지요. 하지만 이렇게 ‘디지털 대면’을 통해 서로를 마주하는 방법을 달리 해보는 것이 중요했다고 생각합니다. 몸 안의 에너지가 고요하고, 차분하다 못해 활력이 줄어들고 있을 때, 집안과 물체를 탐색하고, 소리를 탐구하는 일이 조금은 다른 에너지를 가져다주었다면, 리듬키친은 조금은 이름값을 했겠죠? 


리듬키친 마지막 날


1988년 대학가요제에 발매한 “연극이 끝나고 난 뒤”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 제목처럼 인기척이 없는 공간에서 어떤 소리를 내면 그 존재가 매우 크게 느껴집니다. 조금만 덜그럭 거려도 귀가 쫑긋하게 열리죠. 공간을 채우는 소리는 꼭 악기를 연주해서 나는 소리만은 아니었습니다. 숨 쉬는 소리, 발자국 소리, 웃는 소리 등 아주 많은 요소들이 음악을 할 수 있도록 요소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랬던 공간과 활동들이 이전과는 같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그렇게 어렵고 막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리듬키친’이라는 것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디지털대면이 음악을 어떻게 바꾸어놓을지, 일상에 어떻게 영향을 끼칠지 모르지만, 음악이 가진 힘과 기운을 믿고 공연음악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문의 : move@krkd.eco    

리듬키친 결과물 들어보기




작성자

무브 move@krkd.eco
십수년째 음악 독학, 아니 공학 중입니다. 세상에 도움 될 일들을 고민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있어요. 크리킨디센터에서 브라질리언 퍼커션 공연팀 '양천리축제단'을 이끌고 있고, 오랜 친구들과 함께 브라질음악 팀 '페스테자'에서도 활동 중이에요.
매거진의 이전글 크리킨디 게임랩 v.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