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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오냐 Mar 18. 2018

내 생애 첫 스마트폰

#20살_k씨 #내_생애_첫_스마트폰


20살인데, 아직까지 스마트폰이 없다니.


우리 아빠는 전부터 나에게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았고,

 "20살 이후에는 네 마음대로 바꿔라. 대신 돈도 알아서 내라."

라고 했다. 그게 내가 여태 이 폴더폰을 써왔던 이유다.


물론 지금 이 휴대폰으로 전화도 잘하고 인터넷 검색도 할 수 있지만, 친구들은 다 SNS와 메신저로 소통하고 좋은 카메라 어플로 인생 사진을 찍고 있는데 나만 이렇게 뒤처져 있을 수는 없지.


이제 알바도 시작했으니 지금이 내 생애 첫 스마트폰을 가질 기회다 싶어 나는 당장 휴대폰 매장에 찾아갔다.


여러 소규모 매장들이 즐비해있는 이 곳.


와. 최신형 스마트폰이 0원이라고? 여긴 꼭 가야 해.


어차피 다양한 매장을 방문해 비교하며 살 생각이니 일단 0원 광고로 눈길을 끄는 한 매장에 먼저 들어갔다.


- 어서 오세요. 찾는 제품 있으세요?

- 아니요. 저기 밖에 광고 보고..

- 아 보여드릴게요


매장 직원은 얼마 전 새로 나온 스마트폰을 보여줬고 나는 들뜬 마음으로 이것저것 눌러보며 관심을 보였다. 한창 구경 중인 나에게 직원의 쉴 새 없는 설명이 이어졌다.


여러 매장을 들어가 보리라 마음먹었던 난 '좀 더 둘러보고 올게요' 이 한마디를 못한 채 계약의 자리에 앉아버렸다. 단말기 할부금부터 시작해서 요금제와 약정, 약정할인, 할부원금, 공시 지원금, 선택 약정...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난 왜 혼자 왔지?

왜 아무것도 안 찾아보고 무턱대고 왔지?

이건 싼 건가? 스마트폰은 원래 이렇게 비싸게 주고 쓰는 거였구나...

근데 지금 사는 게 맞을까? 아 어차피 나간다고 말도 못 하지 난..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동안 나는 꽤나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었나 보다. 내 대답을 기다리던 직원은 이해한다는 듯이 웃으며 조금 더 친절한 목소리로 천천히 다시 정리해 주었다.


- 이 기기가 원래 90만 원인데 공시 지원금 25만 원 받고, A 요금제를 쓰면 월 6만 8천 원에 2년 약정으로 약정할인이 이 만큼 들어가고, 아까 말한 그 카드로 휴대폰 요금 납부하면 또 할인이 들어가니까 단말기 할부금만큼 빠지죠? 그럼 결국 통신 요금 6만 8천 원에 수수료 10% 해서 7만 5천 원만 딱 내면 되는 거지. 간단하게 기기는 그냥 가져간다 생각하면 돼요.


그의 설명은 처음보다는 느렸지만 계산기를 두드리는 손은 여전히 현란했고, 화면의 숫자들이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하더니 처음 입력한 요금제 가격으로 돌아왔다.


오, 한 달 통신요금만 내면 되는 거구나!


- 아하 그렇구나. 근데 조금 더 싼 요금제는 없나요?

- 다른 요금제도 있죠~ 근데 대학생이니까 데이터 많이 써야 할 텐데? 여기 보면 만원 차이인데 데이터가 확 줄어서 요즘 학생들은 이 정도 데이터는 꼭 찾더라고요. 지금 이 요금제를 써야 공시 지원금이 최대로 들어가기도 하고, 어차피 6개월만 유지하면 다른 요금제로 바꿔도 상관없으니까. 그래도 궁금하면 여기 다른 요금제도 한 번 봐봐요.


그가 건네준 표를 보았다.

정말 차이가 좀 있네. 데이터가 더 작은 요금제로 고르면 연락할 친구가 별로 없어 보이려나? 나 친구 많은데!


'대학생이니까 데이터 많이 써야 할 텐데? 요즘 학생들은 이 정도 데이터는 꼭 찾더라고요.'

아무래도 이 말이 그동안 메신저 단체방에도 못 들어가고 모바일 SNS도 못해 서러웠던 나를 자극했나 보다.


그래! 난 많이 쓸 거야! 요금이 비싸도 일단 써보고 6개월 후에 바꾸면 되지. 무엇보다 기기가 공짜라니까.


그렇게 난 스마트폰이 생겼다.

아 카드도 만들었다.


.

.

.


어느 달은 신나게 데이터를 써보고, 어느 달은 집에서만 와이파이 잡아서 써보고, 또 어느 달은 와이파이 안 되는 곳에서만 데이터를 써보며 6개월이 지났고, 난 요금제를 낮췄다. 알뜰하고 합리적인 결정이라는 생각으로 뿌듯해하며 말이다.


그리고 알았다.

약정할인과 단말기 할부금에 대해서.


난 그냥 65만 원의 기기를 24개월로 산거고, 할부금액만큼의 할인은 요금제를 바꾸는 순간 사라졌다.

6개월 전 0 원인 줄 알았던 기기는 앞으로 18개월 동안 약 50만 원을 더 지불해야 진짜 0원이 된다.


그렇다.

나는 호구였다.





(이 글에 등장하는 요금제와 금액 등의 정보는 사실을 바탕으로한 허구이며 실제 정책 및 금액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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