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라오냐 Apr 02. 2018

위약금이 몇 개야

다들 한 통속이구나

#24살_k씨 #여행 #휴대폰_분실도_서러운데 #왜_날_기피해


- 보험은 어떻게 해드릴까요?

- 음. 그냥 안 들게요. 한 번도 보험혜택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요.


과거 나의 선택을 후회하는 중이다.

두 달 전 새로 산 휴대폰을 저 먼 타지에 두고 왔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분실신고를 하고 여러 조치를 취하면 뭐하나.

여행자 보험은 물론, 휴대폰 보험까지 그 어떤 보험도 없는 걸..


잃어버린 휴대폰은 내가 감당할 문제니 어쩔 수 없고, 일단 당장 쓸 휴대폰이 필요해!


나는 곧장 대리점을 찾아갔다.


- 안녕하세요. 저 두 달 전에 여기서 휴대폰 산 사람인데, 휴대폰을 분실해서요.

- 분실하셨어요?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본인 확인 절차를 거쳤다. 대리점에서는 내 가입정보와 분실신고 내역을 확인했다.


- 일단 휴대폰 보험이 없고, 잃어버린 휴대폰이 약정이 걸려있어서 지금 새로 구매하게 되면 위약금이 발생하네요.

- 위약금이요? 전에 통신사 앱으로 보니까 위약금은 없던데..

- 아 위약금에 종류가 많아서요. 그건 앱으로 안 나올 거예요. 처음 가입할 때 그 요금제를 6개월 유지해달라고 말씀드렸죠? 지금 발생하는 위약금은 그 기간을 못 지켰을 때 나오는 위약금이에요. 그 기간만 지키면 다른 위약금은 발생하지 않고요.


내가 쉽게 확인할 수 없는 위약금이라니.

이전에 분명 앱으로 할부원금이나 위약금을 다 확인했었다. 그런 위약금이 있으면 다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휴대폰 잃어버려서 내 여행 사진은 물론 연락처랑 여러 가지 소중한 기록들이 다 사라졌고, 지금 쓰지도 못하는 휴대폰 할부원금에 새 휴대폰 값만 해도 앞이 캄캄한데 위약금까지 내라니. 착잡하다.


- 분실신고는 하셨으니까 임대폰을 사용하는 것도 괜찮으실 거예요. 근데 지금 저희 매장에는 남아있는 게 없어서 다른 매장을 방문하셔도 되고 인터넷으로 신청도 가능하세요.


복잡한 내 표정을 보았는지 직원은 또 다른 방법을 제안했다. 임대폰에 대해 좀 더 알아보기로 하고 일단 돌아왔다.


통신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임대폰을 알아보니 회원 등급에 따라 비용이 달라지기도 하고 그나마 최신 기기들은 거의 재고가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대여할 수 있는 기기는 전에 쓰던 휴대폰보다 오래된 데다가 기기를 대여할 수 있는 기간은 한정되어있고 비용도 어느 정도 지불해야 했다.


어쩌지.

그래 저 휴대폰을 쓸 바에야 이전 기기를 다시 쓰자.


나는 부랴부랴 전에 쓰던 휴대폰을 찾았다. 다행히 이전에 쓰던 휴대폰을 팔거나 리셋하지 않아 쓰던 그대로의 상태였고, 전원을 켜보니 역시 멀쩡했다. 휴 이제 유심만 있으면 되겠다.


다시 대리점에 찾아갔다.


- 저 임대폰 말고 유심만 바꿔서 전에 쓰던 휴대폰 그대로 쓰려고 하는데..

- 유심 기변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위약금 나간다고 말씀드렸잖아요.

- 아.. 그래요?


직원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안된다며 날 당황하게 했다.

유심 기변? 휴대폰을 바꾸겠다는 것도 아니고 유심만 새로 해달라는 데도 위약금을 받다니. 더 물어보고 싶지만 직원들의 눈초리가 따가우니 혼자서 좀 더 찾아봐야지.


인터넷을 찾아보니 유심만 재발급받고 다른 기기를 사용해도 될 것 같은데 왜 안된다고 했을까?

왜인지 찝찝한 기분이 들어 다음 날 나는 통신사의 직영점을 찾아봤고, 구매했던 곳과는 조금 멀리 떨어진 곳을 방문했다.


- 아. 고객님 상황은 이해되는데 유심 기변을 저희가 하기는 조금 곤란해서요. 구매하셨던 대리점에는 가보셨어요?

- 네. 거기서 계속 안 해줄 것처럼 이야기해서요.

- 죄송합니다. 저희도 힘들 것 같아요.


똑같은 느낌이다.

"제발 여기서 빨리 나가줘"라고 말하는 것만 같은.

도대체 뭐가 곤란하고 왜 안 되는 거지? 설명을 해주는 것도 아니고 이유는 하나도 모르겠는데 자꾸 피하기만 하니, 내가 꼭 범죄자나 전염병 환자라도 된 기분이다.

그리고 그 날 방문했던 매장들은 모두 같은 반응이었다.


다음 날 다른 직영점을 찾아갔고, 마찬가지로 자초지종부터 설명했다.

이번엔 조금 다른 반응이었다.


- 아유 여행 갔는데 휴대폰 잃어버려서 엄청 속상하셨겠네요.


여러 매장을 다니며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긴 했나 보다. 직원이 건네는 말에 눈시울이 붉어지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 하지 마. 그거 못하는 거야. 그냥 돌려보내.


점주처럼 보이는 한 남성이 옆에서 이야기를 듣더니 잔뜩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나름 작은 목소리로 말한 듯싶지만 다 들렸다. 기분이 나쁘다.


- 네? 휴대폰 잃어버려서 연락도 못하고 있다는데 저희가 지금 해드릴 수 있는 거잖아요. 유심 재발급하고 지금 가져오신 기기로 등록만 하면 바로 돼요. 서류 작성 도와드릴게요.


직원은 그 남성에게 한 마디 하더니 다시 나를 향해 바로 할 수 있다고 말하며 필요한 서류를 건넸다. 이후 직원과 남성이 몇 차례 더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남성은 한껏 인상 쓴 얼굴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남성이 지나가는 길 옆으로 보이는 직원 소개 게시판에는 그와 같은 얼굴의 점주가 상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자. 여기만 작성하시면 되고, 분실신고 해제할 건데 기기는 지금 가져오신 이거로 등록하면 될까요?

- 네네. 감사합니다.

- 아, 그리고 요금제나 가입정보는 기존에 사용하던 그대로라 위약금 안 나가고 유심 재발급 비용만 1만 원 이내로 나올 거예요. 걱정 마세요.


직원은 서류 작성 내내 나를 위로해줬고 유심 발급과 기기 등록까지 완료했다. 직원 소개 게시판에 있는 점주를 신고하고 싶었지만, 혹여나 이 젊은 직원에게 피해가 갈까 싶어 그저 감사인사만 전하고 나왔다.


이렇게 간단한 일인데 왜 난 짐짝이 된 기분으로 이리 밀쳐지고 저리 밀쳐진 걸까?




그렇다.

나는 호구였다.

휴대폰 매장 판매자들 간의 '상도'에 두들겨 맞은 호구.


매거진의 이전글 내 생애 첫 스마트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