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디자인> 2019년 3월호
디자인 유랑단이라는 게 있다면 대략 이런 모습이 아닐까? 지난 1월 독일에 움직이는 바우하우스가 등장했다. 베를린의 아티스트 그룹 사비 컨템퍼러리Savvy Contemporary의 프로젝트 ‘스피닝 트라이앵글: 디자인 학교의 시작Spinning Triangles: Lgnition of a School of Design’의 일환으로 제작한 이 버스는 바우하우스의 상징적인 데사우 건물을 본떠 만든 것이다. 베를린 출신 건축가 판 보 레멘첼Van Bo Le-Mentzel은 세로로 적힌 글자와 격자무늬 유리 벽 등 건물 외관을 그대로 살려 버스를 디자인했다. 15m² 규모의 버스 내부에는 다양한 바우하우스 관련 책자를 비치해놓았다. 이곳에서 전시와 워크숍도 열린다고. 이 버스의 주된 목적은 바우하우스가 정립한 디자인 이론과 교육을 소개하는 것이지만 마냥 찬양 일색인 것은 아니다. 이 버스는 동시에 바우하우스의 교육 방식에 내재된 서구 중심점 사고와 신식민주의에 의문을 제기한다. 데사우에서 출발한 버스는 올 한 해 베를린을 거쳐 콩고 킨샤사와 홍콩까지 총 4개 도시를 순회할 예정이다. 오늘날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직면하면서 이를 해결할 새로운 디자인 교육 방식과 학습 기관의 재건이 절실해졌다. 본마시네 버스는 바우하우스를 비평적 요소로 삼아 미래의 디자인으로 질주하는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기획 사비 컨템퍼러리, savvy-contemporary.com
버스 디자인: 판 보 레멘첼
큐레이터: 엘자 베스트라히어Elsa Westreicher, 보나벤투라 니쿵Bonaventure Soh Bejen Ndikung
버스 운영 기간: 2019년 한 해
바우하우스는 1933년 나치 정권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폐교에 이른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건 바우하우스의 영향력이 폐교 이후 오히려 더욱 강력해졌다는 점이다. 당시 바우하우스 출신 교수와 학생들이 나치의 정치적 압력을 피해 대거 미국으로 망명했기 때문이다. 바우하우스식 기능주의는 이렇게 미국식 자본주의와 맞물리며 20세기 디자인의 초석을 단단히 굳히게 된다. 지난해 11월 9일부터 독일 뮌스터에서 열린 <바우하우스와 미국: 빛과 움직임에서의 실험Bauhaus und Amerika, Experimente in Licht und Bewegung>전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무대를 옮겨 바우하우스의 예술 정신을 이어간 디자이너들을 소개한다. 특히 이 전시는 바우하우스가 빛과 움직임에 관한 학제적 연구의 중심으로서 기능한 점, 실험 영화부터 무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 영역에 영향력을 미쳤다는 점 등을 조망해 더욱 의미가 깊다. 작가 50여 명의 작품 중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라슬로 모호이너지의 작품 ‘빛과 공간의 조절기Licht-Raum-Modulator’. 무대 조명 기기이자 키네틱 아트 작품인 이 오브제는 매일 오전과 오후 한 차례씩 약 15분간 움직이며 빛과 공간의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바우하우스와 미국의 관계를 조명하여 이를 역사화시키고 담론화시키는 작업은 바우하우스가 지닌 역사적 가치를 한층 구체화한다.
기간: 2018년 11월 9일~2019년 3월 10일
장소: LWL 뮤지엄 Domplatz 10, 48143 Münster
큐레이터: 탄야 피르지히마르샬Tanja Pirsig-Marshall, 크리스틴 바르텔스Kristin Bartels
웹사이트: lwl.org
프랑크푸르트 응용 미술관에서 지난 1월 19일부터 선보이고 있는 <프랑크푸르트 모더니즘 1913~1933>전은 1920년대 건축가 에른스트 마이Ernst May의 책임 아래 진행된 근대도시 개발 정책과 신프랑크푸르트 운동을 중심으로 전개된 전방위 모더니즘 운동을 조망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급증한 도시 인구와 부족한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도시 개발 정책 그리고 근대성 확립이라는 시대적 지향점이 전시의 배경이다. 당시 제품, 인테리어, 광고 디자인, 패션, 음악, 영화, 사진 등에서 나타났던 변화를 살피고 이를 통해 확립된 새로운 근대적 생활 양식을 소개하는데 발터 그로피우스를 비롯해 영화감독 오스카어 피싱거, 다다이스트 쿠르트 슈비터스Kurt Schwitters, 라슬로 모호이너지 등의 작품을 두루 살필 수 있는 것이 이 전시의 매력이다.
기간: 1월 19일~4월 14일
장소: 프랑크푸르트 응용 미술관Museum Angewandte Kunst Frankfurt
큐레이터: 클라우스 클램프Klaus Klemp, 마티아스 바크너 K Matthias Wagner K, 그리트 베르버 Grit Werber, 아니카 젤만Annika Sellmann
웹사이트 museumangewandtekunst.de
<바우하우스와 사진: 동시대 미술에서의 뉴 비전Bauhaus und Fotografie: Zum neuen Sehen in der Gegenwartkunst>전은 라슬로 모호이너지가 추구한 새로운 시각, 즉 뉴 비전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매체로서의 사진에 주목한다. 루치아 모홀리Lucia Moholy, 발터 페테르한스Walter Peterhans 등의 작품을 동시대 미술 작가들의 작품과 병렬해놓았는데 이러한 전시 방식은 라슬로 모호이너지가 기획한 <필름과 사진Film und Foto>전을 참고한 것이다. 독일 사진가 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lmans와 토마스 루프Thomas Ruff, 영국의 미디어 아티스트 더글러스 고든Douglas Gordon, 네덜란드 사진가 비비안 사센Vivian Sassen 등이 바우하우스 사진의 개척자들과 나란히 한 주인공들이다.
기간: 2018년 12월 7일~2019년 3월 10일
장소: NRW 포룸 뒤셀도르프NRW-Forum Düsseldorf
큐레이터: 크리스 숄츠Kris Scholz, 카이우베 헴켄Kai-Uwe Hemken, 크리스토프 샤덴Christoph Schaden
웹사이트: nrw-forum.de
수많은 관계와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아 하나의 인격체가 완성되는 것처럼 오늘날 우리가 아는 바우하우스가 있기까지 수많은 교류와 간섭, 영향이 존재했다. <예술과 공예에서 바우하우스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단결 Von Arts and Crafts zum Bauhaus. Kunst und Design: eine neue Einheit!>전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한다. 글래스고 스쿨Glasgow School, 유겐트스틸Jugendstil, 독일공작연맹, 데 스틸De Stijl 등 20세기 유럽의 디자인 역사에 등장했던 여러 디자인 양식과 바우하우스가 주고받은 영향력과 그 관계를 살피며 디자인 사조의 흐름과 그 발달 과정을 개괄적으로 탐구하는 것이 이 전시의 핵심이다.
기간: 1월 24일~5월 5일
장소: 브뢰한 박물관Bro¨han Museum
큐레이터: 토비아스 호프만Tobias Hoffmann, 아나 그로스코프Anna Grosskopf
전시 디자이너: 카틀렌 아르테Katleen Arthe
웹사이트: broehan-museum.de
<오리지널 바우하우스>전은 ‘바우하우스의 원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베를린의 바우하우스 아카이브 박물관Bauhaus-Archiv Museum fu¨r Gestaltung과 베를리니셰 갤러리Berlinische Galerie가 손잡고 준비하는 이 전시는 한 세기를 거치며 변형과 발전을 거듭한 작품들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 바우하우스의 본모습을 탐구한다. 재미있는 것은 바우하우스의 존속 기간인 14년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총 14개의 작품을 소개하고 바우하우스의 원형에 관한 14가지 질문을 던질 계획이다. 바우하우스의 심벌이 된 원작과 리메이크 작품 사이에 형성된 불가분의 관계를 고찰하는 점이 흥미롭다.
기간: 9월 6일~2020년 1월 27일
장소: 바우하우스 아카이브 박물관
협업 기관: 베를리니셰 갤러리, berlinischegalerie.de
웹사이트: bauhaus.de
바우하우스 14년 역사 중 가장 찬란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역시 데사우 시절일 것이다. 실험적이고 패기 넘쳤지만 설익었던 바이마르 시절을 거쳐 공업 도시 데사우로 이전하면서 바우하우스의 디자인은 무르익기 시작했고 독일(당시 바이마르 공화국)이 전쟁을 딛고 다시 한번 제조 강국으로 떠오르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됐다. 오는 9월 8일 개관을 앞둔 데사우 바우하우스 뮤지엄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4만 9000여 점에 달하는 바우하우스 컬렉션을 소유하고 있는 데사우 바우하우스 재단은 전시 공간 확보를 위해 2015년 전 세계 건축가와 사무소를 대상으로 공모전을 진행했다. 여기에 약 800개 팀이 지원해 바우하우스를 향한 뜨거운 관심을 증명했는데 치열한 경쟁률을 뚫은 주인공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건축 사무소 곤잘레스 인스 사발라Gonza´lez Hinz Zabala였다. 곤잘레스 인스 사발라는 ‘건물 안의 건물’이라는 콘셉트로 총면적 3500m², 전시 공간 2100m²에 달하는 공간을 2개의 층위로 나눠 구성했다. 외관은 강철 기둥으로 구성한 골격 위에 전면을 투명 유리로 감싼 모습인데 특별한 장식이나 채색 없이 건축 재료 본연의 모습을 드러낸 모습이 영락없이 바우하우스의 정신을 닮아 있다. 투명 유리와 함께 데사우 중앙 도심 공원에 자리한 박물관의 지리적 특성 또한 이 뮤지엄이 개방형 플랫폼을 지향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은 건물 내부에 자리한 또 하나의 건축. 블랙박스Blackbox라고 이름 붙인 이 건물은 밀폐된 검은 상자를 연상시킨다. 박물관 건물 내부의 복층(혹은 2층)에 위치해 있는데 탁 트인 로비 공간과 시각적으로 대조를 이뤄 흥미를 유발한다. 이곳은 재단이 소유한 방대한 양의 작품을 진열하는 상설 전시장인 동시에 작품의 관리 및 보존이라는 박물관의 핵심적 기능도 담당한다. 밀폐성은 바로 이런 공간의 기능과 성격을 가시화한 것. 블랙박스와 시각적 대조를 이루는 탁 트인 로비에서는 조금 더 자유로운 주제를 다루는 기획 전시가 주를 이룰 예정이다. 이와 더불어 로비는 다양한 동시대적 사안에 관해 열띤 토론이 벌어지는 열린 무대offene Bu¨hne로도 활용할 계획인데 워크숍과 강의, 아티스트 토크 등 전시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담론을 생산하고 이를 대중에 발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데사우 바우하우스 뮤지엄은 2016년 12월 기공식 이후 단계적으로 건물을 완성해나갔다. 2019년 상반기 중에는 완공된 모습을 공개할 것으로 보이며 9월 8일에는 개관을 기념하며 <도전과 실험의 장: 바우하우스 소장품Versuchsta¨tte Bauhaus. Die Sammlung>전을 열 계획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바우하우스 컬렉션을 소유한 데사우 바우하우스 재단이지만 단순히 소장품을 늘어놓는 전시가 되진 않을 전망이다. 뮤지엄 측은 다양한 실험을 이어갔던 교육기관으로서의 바우하우스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뜻을 비쳤다. 전시 기간 동안 관람객은 바우하우스 건물을 거닐며 바우하우스의 교육 현장을 간접 체험하게 된다. 이 전시는 어쩌면 데사우 바우하우스 뮤지엄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데사우는 지난 세기의 시대정신을 등에 업고 또 다른 100년을 꿈꾸고 있다. bauhaus-dessau.de
글 이정훈 베를린 통신원
담당 최명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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