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월간디자인 Mar 05. 2019

바우하우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월간 <디자인> 2019년 3월호

바우하우스의 창립 선언문 표지에는 고딕 성당의 뾰족탑 위에 사방으로 빛나는 별이 그려져 있다. 이는 바우하우스가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보여주는 듯하다. 지금껏 한국에서 바우하우스는 마치 북극성처럼 기능주의라는 눈부신 빛을 발하며 밤하늘을 밝혀왔다. 하지만 북극성의 영향력이 다른 별들이 빛을 발하는 데 장애물이 되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바우하우스가 디자인사에 끼친 영향력은 분명 눈부시지만 이 학교를 둘러싼 여러 정황을 살펴봤을 때 무조건 찬양만 하기에는 여러모로 의문이 남는다. 순수한 현대 디자인의 이념을 만들고, 현대 디자인의 전형을 만든 최초의 디자인 학교라는 믿음부터 그렇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직후 모든 것이 초토화된 패전국 독일의 상황에서 과연 바우하우스가 순수한 디자인을 추구할 수 있었을까? 우리로 치면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폐허 위에 순수한 디자인 이념을 추구하는 학교가 만들어졌다는 것인데 이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의심이 생긴다. 또 이 디자인 학교가 왜 그리 오랫동안 나치에 시달렸고 급기야 수색까지 당하며 문을 닫아야 했는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즉 순수한 디자인 이념이나 기능주의로만 말하기에는 바우하우스에 드리운 정치적 그림자가 너무나 짙고 어둡다. 아쉽게도 바우하우스를 다룬 책들은 대부분 이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정권을 잡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사회주의적 성향이나 초대 교장 발터 그로피우스의 사회주의 운동 전력을 빼고 과연 바우하우스를 논할 수 있을까? 바이마르 공화국이 정권을 잡자마자 만든 바우하우스가 과연 그런 정치적 성향을 뒤로하고 순수한 디자인 학교가 될 수 있었을까? 나치가 정치적으로 득세하자 그 반대급부로 바우하우스 내의 사회주의적 성향이 급진화되고, 하네스 마이어로 대표되는 극렬 사회주의 성향의 교수나 학생들은 교장 발터 그로피우스를 온건주의자로 낙인찍어 거의 내쫓다시피 했다. 이것으로 미뤄봤을 때 바우하우스를 순수한 디자인 학교로만 바라보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발상 혹은 기만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의심을 뒤로하고라도 바우하우스가 추구한 기능주의가 오늘날에도 동등한 가치와 위상을 지니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진지한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 경제적으로 거의 궤멸 상태였던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독일에서 바우하우스가 화려하고 심미적인 디자인을 추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생존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절대 심미적 가치나 정신적 가치를 선택할 수 없으니까. 다시 말해 전쟁과 같은 비정상적인 사태로 인해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바우하우스의 기능주의는 일종의 생존 전략에 가까웠다(반대로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승전국이자 전통적인 선진국인 프랑스에서는 기능주의 디자인이 그리 각광받지 못했다고 한다). 제1, 2차 세계대전 이후, 우리에게는 한국전쟁 이후 압도적으로 기능주의가 성행한 데에도 이러한 사회적 배경이 있다. 한국 사회는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개발도상국 수준을 넘어서게 되었다. 경제적 제약이 따랐던 개발도상국 시기에는 기능성을 추구하는 디자인이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이야기가 다르다. 지금 바우하우스를 둘러싼 가치들이 오히려 우리의 발목을 단단히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21세기 이후 유기적인 우주관을 지향하고 있는 서구권의 디자인이나 자국 문화에 뿌리를 둔 주체성 있는 디자인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끌고 있는 일본과 중국의 디자인을 보면 이런 의문이 확신으로 굳어진다. 이제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바우하우스를 고이 접어 박물관에 모셔두어야 할 것 같다. 아쉽지만 이제 바우하우스를 굳게 잡았던 손을 놓아주자. 



글  최경원 현디자인연구소 소장

©월간 <디자인>



최경원

서울대학교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대·기아자동차,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등에서 한국 문화 관련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한국 문화의 현대적 해석을 위해 2010년 현디자인연구소를 설립했다. 주요 저서로는 <Great Designer 10> <르 코르뷔지에 VS 안도 타다오> <알레산드로 멘디니>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 문화 버리기> 등이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