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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디자인 Mar 07. 2019

디자인 글쓰기
유지원의 <글자 풍경>

월간 <디자인> 2019년 3월호

<글자 풍경>

유지원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1만 5000원




1

터키 이스탄불 한복판, 오리엔트 특급의 종착역인 시르케지Sirkeci 역에서 남쪽으로 10분, 만복Great Fortune 호텔에서 출발한다면 동쪽으로 5분만 걸어가면 아야소피아Ayasofya가 있다. 6세기 중엽 동방 정교회로부터 성인의 칭호를 받은 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축성한 이후 약 1000년간 동방 정교회 제일의 교회였으며, 오스만제국이 이곳을 차지한 15세기 이후 약 500년 동안은 이슬람 세계에서 최고의 격을 자랑한 모스크였던 곳으로, 1935년 이후 지금까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황제 레오 6세가 예수 앞에서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이 묘사된 ‘제국의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서면 예수와 알라가 공존하는 기묘한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비잔틴 양식의 황금빛 성모자상, 성모를 수호하는 치천사熾天使들과 알라딘의 칼처럼 날렵하게 구부러진 아랍 문자로 가득한 7.5m의 검은 원반, 지름 30m가 넘는 거대한 돔으로 덮인 아야소피아는 누구의 것일까. 예수의 것이라 믿은 이들은 이미지를 그렸고 알라의 것이라 기도하는 자들은 글자를 새겨 넣었다. 말은 항상 이미지보다 분명한 법. 그렇게 알라는 몇 조각의 글자로 아야소피아를 차지했다. 유지원의 책을 주문했을 때 내심 책 어딘가에 아야소피아의 이야기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다. 당일 배송으로 저녁 늦게나 도착한 책의 목차에 아야소피아는 없었지만 대신 터키 지역에서 벌어졌던 로마자와 이슬람 문자의 쟁투에 대한 역사적인 이야기가 짧게 실려 있었다. 



2

<글자 풍경>(을유문화사, 2019)은 제목 그대로 글자가 모여 만들어낸 공시적, 통시적 풍경 스물일곱 장면을 모아 낸 책이다. 서두에 저자는 이렇게 밝힌다. “우리는 타이포그래피를 왜 할까? … 더 아름답기 위해서, 더 기능적이기 위해서, 더 다양한 감정을 주고받기 위해서, 우리의 생각을 더 잘 전달하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우리는 보다 나은 공동체를 위해서, 함께 더 잘 살기 위해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타이포그래피를 한다.” 

그리고 이 증거의 풍경을 찾아 유지원은 이탈리아와 독일, 영국, 뉴욕과 중동, 인도와 홍콩, 일본 그리고 마침내 한국까지 횡단하고 세종대왕과 마틴 루서, 윌리엄 모리스, 에릭 길 그리고 유겐트슈틸Jugendstil의 벨 에포크 시대를 종단한다. 이 종횡무진의 문턱 안쪽에는 르네상스기의 로만체, 20세기 뉴욕의 헬베티카, 홍콩의 스텐실 문자, 조선 시대 궁녀들의 붓글씨, 에릭 길의 길 산스, 바로크 시대 악보 위의 장식 문양, 그리고 지금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만드는 새로운 한글 글꼴까지 꼼꼼히 열거되어 있다. 

27개의 풍경을 거치는 동안 유지원은 맹목적인 한탄이나 무책임한 비지성주의에 빠지지 않는다. 대신 저자는 글자가 주는 황홀감과 기쁨, 낙관주의와 지성을 독자와 열정적으로 공유한다. 한국의 디자인 글쓰기 풍토에서 이는 매우 희귀한 태도다.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암울하게 쓰고 읽어왔나. 비판과 비관에는 능했지만 긍정과 낙관에는 얼마나 서툴렀나. 유지원은 이 책에서 마치 음식을 빨리 맛보게 하고 싶은 요리사처럼 자신이 목격한 최상급의 아름다움을 우리 앞에 늘어놓는다. 전문가들의 고민을 풀어 설명하고 동료들의 성과를 꼼꼼히 상찬한다. 유지원의 펜 앞에서 한국의 디자인 글쓰기는 “햇빛을 받아 몸을 활짝” 편 로만체처럼 밝은 얼굴을 드러낸다.


에릭 길이 1933년 인디언 잉크(먹)로 직접 그리고 설계한 길 산스 울트라 볼드 소문자 세트 원도. (출처: 모노타입사 아카이브 보관)



루터의 성경 독일어 완역 초판(1534)표제 페이지. (출처: Albert Kapr, Fraktur: Form und Geschichte der gebrochenen Schrift



홍콩의 슈퍼마켓에서 발견한 글자 풍경. ©유지원



3

“글자도 생물과 같아서 그 지역의 환경, 풍토, 토착민의 기질과 어울리게 가꾸어져 왔다”(85쪽), 

“기능적인 타이포그래피에서 기준으로 삼는 항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글을 읽는 인간의 신체’이고, 다른 하나는 

‘폰트가 구현되는 기술적 배경’ … 긴 본문에 쓰이는 글자는 마라톤을 할 때 신는 러닝화와 같아서, 인체의 피로를 덜어주어야 디자인이 잘된 것이다”(164쪽)라고 말할 때 유지원은 안온한 환경 결정론자와 겸손한 기능주의자의 태도를 보인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로만체, 20세기 런던의 길 산스, 본문용 글꼴과 일본의 도로 위 타이포그래피는 마치 소화하기 좋게 조리된 부드러운 음식처럼 우리 앞에 차려진다. 글자를 바라보는 이런 실용주의적 태도는 사실 비난받을 여지가 없이 안전한 것이다. 그건 마치 장식을 배제하고 온전히 기능에 충실한 옷을 바라보는 그것을 닮았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것이 있을까. 그러니까 생물과 같아서 지역색에 온전히 녹아든 글자, 러닝화와 같아서 읽은 후 형태가 기억나지 않는 글자 같은 것 말이다. 있다손 치더라도 과연 우리는 그 글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내가 지지하고 싶은 유지원은 오히려 “더 아름답기 위해서”라는 문구를 “더 기능적이기 위해서” 보다 앞세우는 유지원이다. 

유겐트슈틸의 글자를 언급하며 ‘잉여’의 가치와 ‘삶의 기쁨’이라는 덕목이 기능이라는 도덕률 때문에 억제되어서는 안 된다고 쓸 때,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산세리프를 보여주며 즐거워할 때, 괴상하게 생긴 에스체트Eszett를 열거하며 신나할 때 유지원은 정언명법에 억눌리지 않은 생기를 내뿜는다. 비규격화된 홍콩의 다국어 타이포그래피나 컬러 사용에 거침이 없는 인도 글자를 보여줄 때 이 책의 나머지 풍경도 더 풍요로워진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유지원의 두 번째 <글자 풍경>에서 마저 챙겨 보고 싶은 것들이다.



추기. 

91쪽에서 저자는 “헬베티카는 정말 잘 디자인된 글자체인가?”라고 묻는다. 개인적으로 나는 헬베티카 대문자 R 다리의 곡선이 싫다. 유니버스의 어정쩡한 다리 모양도 별로다. 책에 열거된 보기 중에서라면 나는 쭉 뻗은 악치덴츠 그로테스크의 R을 고르겠다.  



글  김형진 워크룸프레스 대표

담당  최명환 기자

©월간 <디자인>


김형진

1974년생.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2005년 안그라픽스 디자인 사업부에 입사한 뒤 2006년 이경수, 박활성과 함께 워크룸을 시작했다. <휴먼 스케일>(워크룸프레스, 2014)을 공저했고 2016년 최성민과 함께 <그래픽디자인, 2005~2015, 서울>(일민미술관)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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