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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디자인 Apr 26. 2019

xs메이커 ③-소목장세미

월간 <디자인> 2019년 5월호

대학에서 조소를 공부한 유혜미는 공동 작업실에서 친구와 함께 사용할 2층 침대를 제작했던 것이 계기가 되어 메이커의 길로 들어섰다. 뜻하지 않은 선택으로 가구를 만들며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그녀는 2012년 7월 본격적으로 1인 가구 공방 소목장세미를 열었다. ‘내가 사용할 가구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제작에 임한다는 소목장세미의 디자인은 그 자체가 마이크로 타기팅이다. cargocollective.com/smallstudiosemi





소목장세미의 이태원 오피스. 이곳에선 ‘웃어 여름’, ‘숨은 별미의 고수’ 같은 특별 프로그램을 진행한 바 있으며 간헐적으로 쇼룸을 열기도 한다.



목공은 본인이 전공한 조소와는 또 다른 세계다. 어떻게 제작 기술을 익혔나?  

예전부터 친분이 있던 길종상가 박길종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구했다. 재료에 관한 공부는 도서관에서 따로 했고 기계를 다루는 방식은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익혔다. 지금과 달리 예전에는 한국인 메이커가 운영하는 유튜브 계정이 드물었기 때문에 창고에서 물건을 만드는 미국 아저씨들의 영상을 많이 참고했다. 조금 숙달된 이후에는 짜맞춤 가구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소목장세미의 ‘장’은 장인(匠)이 아닌 장소(場)라는 뜻이라 들었다.  

내가 썼던 작업실은 6명의 작가 지망생이 공유하는 매우 비좁은 공간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제작을 하다 보니 제약 조건이 많았기에 한계를 극복하는 구조를 생각하게 됐다. 그런 과정에서 나의 디자인 아이덴티티가 형성됐다. ‘작은 가구를 다루는 장소’, ‘작은 장소’라는 뜻을 담아 이름을 지었다. 물론 이름의 ‘소목장’은 장인 정신을 갖고 일하겠다는 의미다. 진짜 장인처럼 평생에 걸쳐 기술을 연마할 자신은 없지만 진정성 있는 가구를 만들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나는 예전부터 북유럽 가구보다 조선 목가구가 훨씬 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합정동 카페 루프트의 가구 디자인. 자칫 드라이해질 수 있는 공간을 체리 무늬목과 황동 소재, 패브릭 밴드 소재 가구로 보완했다. ©AVEC(정은지)



주로 라왕 합판 소재를 이용해 가볍고 얇으며 분리, 조립이 가능한 가구를 디자인한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부터 스스로 ‘내가 갖고 싶고 사용하기 쉬운 가구를 만든다’는 원칙을 세웠다. 처음 친구와 사용할 2층 침대를 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언제 이사를 갈지 몰랐기 때문에 일단 가벼워야 했고 분리나 조립 또한 쉬워야 했다. 지금도 나의 디자인은 1인 여성 가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구의 분리, 조립이 쉬우면 여성들이 자기 공간을 꾸미는 것이 훨씬 수월해진다. 따라서 이런 디자인 원칙은 앞으로도 계속 유지할 생각이다.


보통 목공에서 시작해 철공으로 확장하는 여느 메이커와 달리 소목장세미의 가구는 여전히 나무가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다른 메이커와 마찬가지로 금속에 대한 로망도 있고 시도도 해보았지만 나는 역시 목공이 더 잘 맞는 것 같다. 아무래도 철재를 사용하려면 을지로나 문래동 일대 제작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디테일하게 하나하나 스스로 손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직접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있는 나무를 더 선호하게 되더라.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예술경영지원센터의 팝업 아트숍 프로젝트에서 공간 구성 및 가구 제작을 맡았다. ©Hirokawa takeshi, Smallstudiosemi, Alexis 



재미공작소를 비롯해 다양한 곳에서 워크숍도 꾸준히 진행한다. 

요즘은 일이 많아 재미공작소에서의 워크숍은 진행하지 못하고 있지만 문화센터나 대학에서 워크숍을 지속적으로 진행한다. 지금까지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맺은 소중한 인연이 정말 많다.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에 대한 보람도 있고. 원래 매년 1~2월과 8월에는 프로젝트가 잘 들어오지 않는데 워크숍을 통해 경제적인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는 부분도 있다.



후암동으로 이전해 다시 문을 연 초판서점의 가구. 캐나다 건축가 켄트 먼들Kent Mundle과 협업했다. ©텍스처 온 텍스처



일부에서 소목장세미를 ‘예술가형 목수’라고 칭하던데 이에 동의하는가?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가구를 디자인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이 일을 시작했지만 평생 작가를 꿈꿨던 사람이라 그런지 알게 모르게 가구에 작가적 개성이 반영되는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작가가 되려고 애를 쓸 때는 미술관 문턱에 닿는 게 쉽지 않았는데, 오히려 이 일을 시작한 뒤 미술관에서 연락이 온다는 점이다. 


지난해 12월 열린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의 공간 디렉터를 맡기도 했다.  

2018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의 아트 디렉터를 맡았던 햇빛스튜디오의 권유로 참여하게 됐다. 힘은 들었지만 내게 무척 의미 있는 프로젝트다. 지금까지 진행한 프로젝트 중 가장 큰 규모이기도 했고. 스케치업 프로그램에서 구상했던 이미지가 그대로 구현되는 게 신기하고 감동적이기까지 하더라. 게임 ‘심즈’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웃음) 집중력을 갖고 일하며 치열하게 돌아가는 현장이 나와 잘 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2018 서울디자인페스티벌. 지난해 페스티벌 전체와 월간 <디자인> 특별관의 공간 디렉팅을 맡았다. ©이경옥 기자



최근 진행한 프로젝트를 소개하자면?  

충무로에 있는 현상소와 독립 서점을 결합한 문화 공간 일삼오삼육의 인테리어를 맡았다. 필름 카메라가 쇠퇴하면서 충무로에 있던 많은 현상소가 문을 닫았는데 명맥을 유지하길 원했던 일삼오삼육 대표님이 현상소와 독립 서점을 결합한 공간을 구상한 것이 시작이었다.  초판서점과 오혜에 들어간 내 작품을 보고 연락을 주었는데 잘 마무리되어 지난 4월 오픈했다. 충남 금산의 홍삼 음료 전문 카페 더버켓유니온에 들어가는 가구도 디자인한다. 2대째 인삼을 기르는 커피숍 사장님이 운영하는데 직거래 방식으로 제품을 유통하는 게 특징이다. 아이덴티티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워크스가 맡았다.



충무로 일삼오삼육. 필름 현상소와 사진 전문 독립 출판물을 다루는 독립 서점을 결합한 공간이다. ©김규한 기자



소목장세미 외에 DJ 시시Seesea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한다. 또한 이른바 ‘포 퀸faux queen’* 메이크업을 하고 활동하기도 한다.  

각각은 소목장세미와 완전히 별개의 아이덴티티라고 보면 된다. 드래그퀸 분장의 경우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은 게이 고유의 문화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의 문화를 가꿔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DJ는 목공 일을 하면서 시작하게 됐다. 작업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다양한 소음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데 목공소의 소음을 피해 듣기 시작한 노동요가 영국 라디오 채널 린스 에프엠Rinse FM에서 흘러나온 베이스 음악이었다. 그렇게 음악에 빠져 DJ로 활동하게 됐다. 원래 남들이 안 해본 것을 시도하는 데 흥미를 느끼는 것 같다. 룰 브레이크를 하면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이 즐겁다.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영역이 있다면?  

최근에 조명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통의동 코오롱빌딩에서 열린 <노마드엑스>전을 위한 조명을 만들었는데 가구와 마찬가지로 가벼우면서 분리·조립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아직 구상 단계라 구체적인 계획은 밝힐 수 없지만 이쪽으로 좀 더 영역을 확장해보고 싶다. 조명과 전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전기 관련 공구도 많이 사들였다. 



글: 최명환 기자

인물 사진: 박순애(스튜디오 수달)

월간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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