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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디자인 Apr 26. 2019

xs메이커 ④-제로랩

월간 <디자인> 2019년 5월호

제로랩 장태훈 대표와 김동훈 실장은 산업 디자이너 출신으로 스튜디오 설립 전에는 바코드 기기 같은 전형적인 B2B 비즈니스 아이템을 디자인했다. 못과 망치를 드는 일보다 모니터 앞에 앉아 렌더링을 돌리는 게 더 익숙했지만 일찌감치 제작의 가치를 깨닫고 맨몸으로 하나둘 기술을 익혀나갔다. 이제 디자인계의 대표 메이커가 된 이들은 지난해 <만랩>전에 참여하기도했다. zero-lab.co.kr




경기도 포천 작업장에서 촬영한 제로랩 김동훈(왼쪽)과 장태훈.


산업 디자이너였던 두 사람이 제작 문화로 눈길을 돌린 이유가 궁금하다.

장태훈(이하 장)  처음부터 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 산업 디자이너 출신이다 보니 설계부터 생산까지 전 과정을 시뮬레이션해보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어느 날 문득 ‘이미 내 머릿속에 모든 게 다 들어 있는데 굳이 제작을 맡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제작 전문 업체가 내 마음을 속속들이 꿰뚫어볼 수는 없기 때문에 머릿속 그림과 실제 구현된 모습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마감 기한을 맞추기도 어려웠고. 디자인 전문 회사에서 일련의 경험을 쌓으며 자연스레 외부 요인과 무관한, 자급이 가능한 작업 환경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스툴랩. 2017 청주공예비엔날레 기획전(사진)과 지난해 10월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열린 <2018 SeMA 예술가 길드: 萬/Lab>전에서 선보인 작품.



제작 기술이 전무했는데 워크숍을 통해 배웠고, 또 워크숍을 열어 지식을 공유한다.

  디자이너의 강점은 결국 지식을 빠르게 습득해 현명하게 응용하는 데 있다. 우리 역시 무언가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을 때 직접 발로 뛰어 찾아다니며 습득했다. 워크숍이나 강의 같은 것 말이다. 용접도 워크숍에서 배웠다. 

김동훈(이하 김)  주로 전시나 행사의 연계 프로그램으로 워크숍을 진행한다. 사실 워크숍은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기에 좋은 자리다. 일례로 예전에 스툴을 디자인했는데 우리는 매우 간단하게 설계했다고 생각했지만 진짜 만들기 쉬운 디자인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열어 반응을 살펴봤다. 

  초창기 워크숍은 우리 활동을 알리는 데도 도움이 됐다. 기본적으로 우리 워크숍은 복잡한 장비 없이 톱과 망치만 사용하는데 참가자들이 ‘어? 되네?’라는 반응을 보일 때 가장 재미있다. 


이태원 지하 작업장에서 경기도로 자리를 옮겼다.

  이제 막 시작한 스튜디오인데 그만한 공간(이태원)을 얻은 것은 행운이었다. 지하라 제작한 오브제를 나르는 데 너무 힘을 빼긴 했지만. 서울에서는 마땅한 작업장을 찾기 어려워 몇 년 전 일산으로 자리를 옮겼고 지난해 다시 포천에 작업장을 마련했다. 밤새 작업을 해도 민원이 들어 오지 않아 좋다. 자동차가 작업장 안까지 들어올 수 있어 체력적인 부담도 한결 줄었고.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다른 디자이너들과 물리적 거리가 생겨 외로워졌다는 것 정도?(웃음)



ABA 비디오. 아티스트 오민 작가의 영상 작품에 사용한 오브제들.



그래픽 디자이너나 다른 메이커들과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다른 디자이너들의 전시 오프닝을 열심히 찾아다닌다. 이것이 우리의 유일한 영업 방식이다. 꼭 프로젝트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전시 오프닝은 디자인계의 현황을 파악하기에 더없이 좋은 자리다. 그렇게 그래픽 디자이너들과 교류하다 보니 막연하게나마 동지 의식 같은 게 생긴 것 같다.

  일상의실천, 물질과비물질, 김가든, 오디너리피플… 최근에는 다리컨설팅의 김기창 디자이너와도 자주 교류한다. 

  최근에 몇몇 메이커와 ‘수염회’라는 친목 모임을 만들었다. 원투차차차, 전산 같은 디자이너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꽤 괜찮은 얼라이언스가 형성된 것 같다. 제작업체 정보나 기술적인 노하우를 공유하는 편이다. 포천으로 이사 온 이후로는 근처에 작업장이 있는 원투차차차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최근 진행한 퀸마마마켓 프로젝트도 원하는 색상을 구현할 분체도장업체가 없어 애를 먹었는데 원투차차차가 좋은 회사를 소개해줘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래픽 디자이너, 메이커 양쪽과 친분이 있지만 사실 한자리에 모일 기회는 별로 없다. 그래서 지난해 열린 <커피사회>전이 흥미로웠다. 만날 일 없는 두 영역의 크리에이터들이 모이니 마치 동창회 같더라.(웃음)



타이포잔치 2015. 제로랩은 타이포잔치와 오랜 협업 관계를 맺고 있다. ©SSSAUNA Studio, 김진솔



최근 새로 들인 장비가 있나?

  새로운 장비를 들인 것보다 업그레이드한 장비가 많다. 처음 스튜디오를 시작할 때는 소위 가성비 좋은 기기를 사용했는데 이제는 숙련도 되고 형편도 나아져 더 좋은 장비로 교체하는 것이다. 

  작년부터 철재에 관심이 많아졌다. 최근 몇 년 사이 미술관에 합판 소재의 가구나 집기를 쓰는 게 일반화됐는데 그 수가 너무 많아지다 보니 오히려 피로감을 느낀다는 전시 기획자의 이야기도 들은 터였다. 철재를 다루는 것은 스튜디오의 차별화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단, 판금이나 절곡 같은 가공법은 훨씬 전문적이고 장비 또한 고가다. 우리가 사용하는 장비 가격에 0이 2개 정도 더 붙으니까. 따라서 요즘은 장비 욕심을 내기보다는 설계에 더 신경을 많이 쓴다.



크리타. 메이커를 꿈꾸는 아이들을 위한 이른바 팅커링tinkering 스페이스다. 철제 브래킷 조립 시스템을 이용해 집기를 디자인했다.



상업 공간과 미술관 양쪽에서 러브콜을 받는 제작자들을 보면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가 사라진 느낌이 든다.

  평소 나의 욕구보다는 의뢰인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데 이런 태도가 미술관이 우리를 찾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깊이 있지만 다소 추상적인 다른 아티스트들의 결과물과 직관적이고 명확한 우리의 결과물이 미술관 안에서 적절히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반면 확실한 정체성을 부여하고 싶은 상업 공간들이 작가주의를 내세우는 메이커를 선호하는 게 아닐까 싶다.



<포춘랜드: 금박展> 전시 디자인. 2018 설화문화전의 일환으로 진행한 전시의 공간 디자인과 제작, 설치를 맡았다. 사진 제공: 설화수 ©서스테인 웍스Sustain-Works



최근 제로랩이 새롭게 시도하는 것이 있다면?

  이전까지 주로 국공립 미술관과 협업했는데 요즘은 상업 시설이나 브랜드로 영역을 넓혀 클라이언트를 다변화하려고 한다. 프로세스가 익숙해지니까 타성에 젖는 기분이 들어 의도적으로 변화를 주는 것이다. 최근에는 ‘네오밸류’라는 부동산 개발 회사와 ‘크리타’라는 어린이 메이커 스페이스를 디자인했다. 제작 문화를 바탕으로 교육하는 공간이라 우리와 잘 맞았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다시 대량생산품을 만들고 싶다. 우리 둘 다 대량생산품을 만드는 산업 디자이너였다. 예전에는 그저 학교에서 가르쳐준 대로 디자인했지만 경험과 훈련으로 다져진 지금은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 같은 걸까?(웃음) 대량생산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설계 기술이나 제작 기술이 좀 더 디테일해야 하는데 그 자체가 우리를 성장시킬 좋은 자양분이 될 거라 생각한다.



글: 최명환 기자

인물 사진: 박순애(스튜디오 수달)

월간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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