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디자인> 2019년 5월호
3년 차 디자인 스튜디오인 스튜디오 씨오엠(대표 김세중·한주원, 이하 씨오엠)은 사실 정통 메이커의 범주에 속하지는 않는다. 손수 목재를 다뤄 제작의 전 과정을 책임지는 일반적인 제작자와 달리 전문 제작사에게 가구 부분을 의뢰하고 이를 조립 및 고정시켜 가구를 만들기 때문. 그러나 3D 프린터로 중무장한 디지털 메이커와도 차이가 있다. 이 둘 사이의 중간 지대를 점유한 이들은 현재 시장에서 가장 독보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studio-com.kr
아르코 미술관의 전시 <움직이는 구조체-파빌리온씨>(이하 <파빌리온씨>)가 씨오엠의 첫 프로젝트였다.
한주원(이하 한) 맞다. 그 전시는 서로 잘 맞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일종의 시험대 같은 자리였다. 디자인 스튜디오 워크스의 소개로 세중 씨를 처음 알게 됐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재미있는 일이 들어오면 함께 해보자’는 느슨한 약속 정도만 했다. 씨오엠으로 활동하기 이전에 홀로 더북소사이어티의 책장을 제작했는데 그걸 본 아르코 미술관에서 <파빌리온씨> 전시 디자인을 의뢰했다.
김세중(이하 김) 주원 씨를 처음 만날 당시 나는 양혜규 작가의 어시스던트로 일하며 개인 가구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쪽 일이 혼자 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보니 힘을 합쳐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다. 물론 첫 프로젝트에서 합이 맞지 않았다면 그대로 갈라섰을지도 모르겠다.(웃음)
한 세중 씨가 어시스던트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파빌리온씨>는 시간을 나눠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낮에 컴퓨터로 작업하다가 세중 씨가 퇴근하면 바통을 넘기는 식이었는데 일을 하면서 ‘이 사람과 함께할 수 있겠다’ 싶었다. 사실 두 사람이 프로젝트를 이어받아가며 진행하는 게 쉽지 않은데 서로 상대의 디자인을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좀 즉흥적인 편인데 꼼꼼하고 계획적인 세중 씨의 작업 프로세스를 보며 더 신뢰하게
된 것도 있다.
두 사람은 대학에서 각각 무대미술과 공간 디자인을 공부했다. 가구나 제품을 공부한 다른 메이커들과
접근 방식도 다를 것 같은데.
김 스튜디오 초반에는 전시 디자인 프로젝트가 많았는데 상업 공간의 인테리어보다는 규모도 작고 제약 조건도 많았다. 미술관 천장이나 조명을 바꿀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그런 제약이 우리처럼 경험이 부족했던 팀에게는 오히려 좋은 무대가 됐던 것 같다. 여러 작은 실험을 이어가며 경험을 쌓았다. 한정된 상황에서 집기나 가구로 공간의 인상을 바꾸는 연습을 했던 것이 상업 공간을 디자인할 때도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다.
한 큐레이터들과 일했던 것이 우리의 디자인 언어에도 영향을 미쳤다. 큐레이터가 언제나 의도를 갖고 작품의 위치를 선정하는 것처럼 우리도 단지 예쁘고 멋지기만 한 디자인보다는 근거 있는 디자인을 하려고 한다. 세중 씨가 공간 디자인을, 내가 무대미술을 전공했는데 이런 배경 때문에 단일 집기에 집중하기보다는 공간과 가구를 한데 묶어서 생각하는 편이다. 아무리 멋진 가구를 만들어도 공간이 받쳐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상보적인 관계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게 우리의 장점 같다.
김 공간을 풀어내는 하나의 방식으로 가구와 집기를 디자인한다. 직접 제작하지 않고 기성 가구를 배치하는 방식도 고려해봤는데 왠지 우리가 디자인한 공간과는 잘 맞지 않더라.
씨오엠 디자인만의 특징이 있다면?
한 처음 시작할 때 우리는 간단한 공구조차 없었다. 그래서 가구를 이루는 부분은 전문 제작 회사에 맡기고 현장에서는 반가공 상태의 부품을 조립만 했는데 그게 하나의 프로세스로 굳어졌다.
김 (목공을) A부터 Z까지 손수 제작하는 일반 제작자와는 다른 점이다. 소목장세미는 목공을 전문적으로 배웠고 길종상가는 타고난 ‘금손’인데 사실 우리는 손으로 만드는 것을 잘 못한다.(웃음)
한 지금도 스테이플 건이나 전동 드릴 같은 기본적인 공구만 갖췄을 뿐 대형 장비는 구입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전문 제작 회사의 기계에 의존하다 보니 오히려 거기서 차별점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 가구를 잘 살펴보면 유독 곡선이 많다. 이미 시장에 합판 소재 가구가 너무 많이 나와 있었기 때문에 곡선을 씨오엠만의 조형 언어로 가져가는 게 차별화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CNC 기기로 재단하면 손으로 직접 자르는 것보다 매끄러운 곡선을 만들 수 있으니까. 또 한 가지 씨오엠 디자인만의 특징이라면, 남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소재, 평범한 소재를 택한다는 것이다. 반골 기질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웃음) 황동이나 대리석 같은 소재는 이미 잘 다루는 스튜디오가 많으니까 우리가 어설프게 사용해봤자 결국 후발 주자밖에 안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씨오엠 가구의 주된 소재인 합판은 가장 트렌디한 소재 아닌가?
김 글쎄, 합판은 xs메이커에게는 워낙 기본적인 소재라 트렌드라는 말이 어울릴지 모르겠다. 종이를 트렌디한 소재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제약된 조건과 예산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소재라 합판을 사용했던 것이지 트렌드를 따르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한 학생 때부터 길종상가나 소목장세미, 노네임노샵 등의 디자인을 무척 좋아했다. 이들은 불황기에 등장해 그동안 공업 자재 정도로만 여겼던 합판을 실험적으로 사용하며 대중적 미감을 획득해나갔다. 즉 합판을 사용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와 상황이 있었다. 우리 또한 미술관에서 최저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기 위해 이 소재를 택한 것이고. 그런데 요즘에는 이런 맥락 없이 합판을 스타일로 받아들이는 인테리어 회사가 늘어난 것 같다. xs메이커의 문법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게 개인적으로 좀 아쉽다. 요즘에는 오히려 의도적으로 다른 소재를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가장 최근 프로젝트인 ‘디스이즈네버댓’ 홍대 매장도 합판은 한 장도 사용하지 않고 원목과 금속, 콘크리트로 마감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려달라.
김 디스이즈네버댓 사옥에 들어갈 가구와 집기를 디자인하고 있다. 4월 중순쯤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도 공간은 푸하하하프렌즈가 맡았다.
한 서촌 누하동 쪽에 대충유원지 2를 선보인다. 지금 막바지 작업 중인데 첫 번째 매장에 비해 바에 더 무게를 실은 공간이 될 것 같다.
글: 최명환 기자
인물 사진: 박순애(스튜디오 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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