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했다는 이유로 이름 사라지는 여자들
결혼 후 몇 가지 새 역할이 생겼다. 아내, 며느리, 엄마. 역할에 따라 호칭도 가지각색이었다. 남편은 대부분 이름을 부르지만 종종 나를 "색시"라 불렀고, 시부모님은 "아가"에서 아이들을 낳은 후부터는 "애미야"라고 부른다. 나와 나이가 같은 남편의 남동생에겐 "형수님"이라 불리고 있다.
새로 관계 맺은 시집에서 생긴 낯선 새 호칭들이 처음엔 흥미로웠지만 관계 중심적인 특히 '약자'인 며느리로서 불리는 호칭들은 어쩐지 달갑지 않다. 가장 불편한 건 여러 호칭 가운데 내 이름은 찾을 수 없다는 거다.
나의 결혼에 이어 양가 형제들의 결혼이 이어졌다. 또 새로운 여러 관계가 생겼다. 남동생의 아내, 그리고 남편의 남동생의 아내. 결혼하기 전까지 그들의 이름에 씨를 붙여 '00씨'라 불렀다. 두 사람 모두 나와 나이가 같았고, 각자 멀리 떨어져 살아 자주 만나지 않는 사이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서로 높임말을 썼다.
문제는 그들이 결혼한 후부터 시작됐다. 나는 여전히 그들에게 높임말을 쓰며 '00씨'라 불렀다. 양가 부모님은 그런 내가 못마땅한 것 같았다.
엄마는 내가 남동생의 아내 얘길 할 때마다 "왜 자꾸 이름을 부르냐"며 툴툴거렸다. "결혼도 했으니 이제는 '올케'라 불러야 하지 않겠냐"는 거였다. 시어머니는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있던 어느 날, 남편 남동생의 아내를 이름으로 부르고 높임말을 쓰는 나를 저지하며 "이제 가족인데 앞으로 '동서'라 부르고, 반말을 하라"고 명령조로 말했다. 아빠와 시아버지는 엄마와 시어머니의 불평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같은 뜻임을 알렸다.
'올케'라는 말의 어원은 뚜렷하게 밝혀진 것 같진 않지만 '오라비의 계집'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과거엔 '계집'이 비칭이 아니었다고는 하지만 지금의 언어는 지금의 기준에서 쓰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케'가 '오라비의 계집'에서 유래한 말이라면 그것은 지금 비칭이 맞다. 오라비의 소유이자 여자를 낮잡아 부르는 말 '계집'이 누군가를 존중하는 말일 수는 없다.
동서라는 말의 어원 또한 명확하지 않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에 따르면 "사위들이 서로 일컫는 말이었는데 언제부터 형제의 아내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동서'로 전환된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지금도 "남자 사이에 쓰이는 경우와 여자 사이에 쓰이는 경우가 있다"고 하지만 주로 여자들 사이에서 쓰이며, 자신의 나이와 무관하게 배우자의 나이에 따라 손위, 손아래를 따지는 말로 쓰일 때가 많다.
'올케'와 '동서'는 모두 나의 입장에서 누군가를 비칭하거나 하대하는 말이었다. 그들이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불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 말들을 쓰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에게는 '올케'의 어원을 설명하며 "왜 A(남동생 아내의 이름)같이 좋은 이름 놔두고 이런 험한 말로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올케'가 부정적인 어원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금방 설득할 수 있었다.
나를 못마땅해하던 시부모님은 여러 번 은근히 '동서'라는 호칭과 반말을 쓸 것을 요구했지만 나는 안 듣고, 안 보고, 안 하는 시집 강경 대응 3원칙에 따라 웃어넘겼다. 가족들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더는 못 참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불러 세워 얘기하는 시어머니를 맞닥뜨리자 나도 더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어머님, 저 B(남편 남동생 아내의 이름)씨랑 엄청 친해요. 제가 이름 부르고, 존댓말 써도 가족처럼 친하게 지낼 수 있어요." 실제로도 그랬다. 막역한 사이는 아니지만 불필요한 갈등은 일절 없는, 서로를 인간 대 인간으로 지지하고 격려할 수 있는 사이임은 분명했다.
난 '올케'와 '동서'라는 말을 여전히 쓰지 않고(앞으로도 쓸 일 없고), 우리는 모두 높임말로 대화한다.
'씨'라는 호칭도 편치는 않다. 그럴 의도는 전혀 없지만 '씨'라는 호칭에도 수직적인 관계성, 하대의 인상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처음 계획은 두 사람에게 '00님'이라 부르고 싶었지만, 차마 거기까진 시도하지 못한 나였다.
최근 A씨와 함께 일을 했다. 그렇다, A씨는 시누이에게 일을 의뢰한 것이다. (불편할 수도 있는데 큰 일을 믿고 맡겨준 게 감사하다) 3-4개월 동안 진행하는 프로젝트였고 나는 의뢰받은 프로젝트의 총괄 매니저, 그는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클라이언트였다. 집안 대소사가 아닌 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연락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2년 전, 10년 가까이 일했던 언론사를 그만두고 다른 업계로 옮겨 일하며 줄곧 '님' 호칭을 쓰고 있다. 하루에 여러 사람과 소통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A씨에게도 '님'이라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어느새 A씨는 'A님'이 돼있었다. 이후 가족으로서 아주 가끔 연락할 때도 'A님'이라는 호칭이 더 편했다. 엄청나게 어색할 것 같았고 상대방이 불편함에 극구 사절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이제는 쓰지 않지만 '도련님' 같은 말은 쉽게도 했으면서 왜 그들의 이름에 '님'자 하나 붙이기까지는 이렇게 어려운 걸까.
한국 사회의 결혼은 여성의 지위와 권리를 하루아침에 50년 정도 후퇴시키는 것 같다. 결혼하기 전까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받는 차별을 온몸으로 막아서고 거부해왔지만 '며느리'가 되자 굴복하는 일이 많아졌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무조건적인 순종을 강요했던 시부모와 크게 갈등했던 이유다. 수십 년 동안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과 갑자기 '가족'이 된 것도 낯선데 한 번도 겪지 않았던 차별과 불평등을 당연하게 요구하는 상황은 충격이었다.
여전히 굴욕적인 순간들을 마주할 때가 종종 있고, 갈등은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온다. 남편 있고 애 둘 딸린, 투쟁이 생활인 페미니스트로서 적어도 난 내가 겪은 굴욕과 고통을 다른 여성들에게 그대로 전하고 싶지 않다. '올케', '동서'라는 말을 쓰지 않는 건,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여성의 이름을 빼앗고 지위를 낮추고 싶지 않은 나의 작은 투쟁이다. '가부장제의 부역자'가 되었으나 그 피해를 전파하거나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더 나은 변화를 만들겠다는 각오다.
숙제가 남았다. 어떻게 하면 그들이 나를 '형님'이라 부르지 않게 할 것인가. 내가 그들 남편의 손위 형제, 남편의 손위 형제의 아내라는 이유만으로 그리 불리고 싶지 않다. 호칭과 무관하게 우리는 수평적인 관계이고 그렇다면 더욱 '형님'이라고 불릴 이유가 없다.
'가족'은 무엇일까. 사돈의 팔촌까지 따지고 명명하는 한국 사회의 가족은 정말 그렇게 끈끈한 것일까. 누구는 높이고, 누구는 낮추는 가족 간 호칭 문화는 어딘가 불편하고 떠나고 싶은 '가족의 민낯'을 보여준다. 수직적이고 관계 중심적인 가족 간 호칭은 사라져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하며 서로를 이름으로 불러준다면 그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가족'이 되지 않을까.
* 사실은대단한창작소의 '글쓰기로 성평등 말하기(부너미 이성경님 진행)'에서 쓴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