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길티 플레저
나도 그렇게 아름다운 공작새는 처음이었어. 꼬리덮깃을 활짝 펼쳐 보란 듯 사르르 도는 공작새를 보며 우린 눈을 떼지 못했잖아.
넌 아름답다고 했지. 예쁘다, 멋지다가 아니라 "아름다워"라는 네 말에 가슴이 또 쿵했어. 평소 잘 하지않던 표현이었고 진심으로 감동받았을 때의 네 눈빛을 봤기 때문이야.
산을 넘어 배를 타고 강을 건너 돌아오는 길에 다시 만난 공작새는 언제 그랬냐는 듯 꼬리를 바싹 모아 화려한 깃털을 감추고 있었어.
공작새는 하루에 한 번만 꼬리를 편대
어른들은 잔뜩 실망해 발을 떼지 못하는 네 맘을 달래주려 무심코 둘러댔는데 공작새는 네가 돌아서기 무섭게 깃털을 한껏 펼쳐 아름다움을 뽐냈어. 마치 돌아서는 네 발길을 잡는 것처럼.
어떻게 공작새가 두 번이나 꼬리를 폈지?!
기쁨을 감출 수 없어 큰 소리로 감탄하는 너에게 제 발이 저렸던 난 "원래 하루에 한 번 꼬리를 펴지만 나비꽃이 너무 실망한 것 같아 공작새가 특별히 보여주나 봐!"라고 거짓말을... 또 해버렸지. (허언증 있는 줄 ㅠㅠ)
그 말을 철석같이 믿은 넌 집에 오는 내내,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도 “공작새가 나비꽃이 실망할까 봐 꼬리를 또 펴줬어”라고 쫑알쫑알. 급기야 잠들기 직전 스케치북을 펴더니 그림까지 그리더라.
그림을 다 그리고 나서는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공작새가 꼬리를 두 번 펴준 게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며 “오늘 가장 재밌었던 일”이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지.
어쩜 그렇게도 행복해하는지 하루 종일 네가 공작새 얘길 할 때마다 가슴이 푹푹 찔리더라. 괜한 거짓말로 네 아름다운 추억을 너무 극적으로 만든 건 아닌지, 다음에 진실을 말해주면 네가 너무 실망하는 것은 아닌지 안절부절못했지.
너에게 거짓말로 흥미를 줬던 게 이번만은 아닌 것 같아. 성탄절에 선물을 나눠 주시는 산타 할아버지와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소가 된다는 전설, 핼러윈이면 나타나는 유령들.
진실을 얘기해주려다가도 거짓말을 믿으며 설레 하고 즐거워하는 순수한 널 보면 말이 쏙 들어가. 아주 귀엽거든. 흐흐흐흐 요즘 내 길티 플레저야. 죄책감이 들다가도 부쩍부쩍 자라는 널 보면 이런 허무맹랑한 그짓말들에 속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아쉽기도 해. 조금만 더 너의 귀여움을 만끽할게.
그리고 언젠간 꼭 말해줄게. 수컷 공작새는 암컷에게 잘 보이고 싶을 때나 위협에 대응할 때 꼬리덮깃을 활짝 펼쳐 보인다고. 그런데 말야 이 광경을 흔하게 볼 수 있는 게 아닌 것도 맞는 듯해. (질척질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