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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성 Apr 26. 2020

아이와 나, 멀어지고 또 가까워지며

멀어졌다 다시 만나는 시간들이 쌓여 우리가 될 거야


첫째 나비꽃은 갑자기 극심한 등원 거부를 시작했다. 코로나19 휴원으로 일주일 정도 집에 있다 긴급 돌봄으로 등원하던 3일 차였다.


유치원이 무섭다는 아이는 유치원이라는 말만 꺼내도 울상이 되며 "그런 말 꺼내지 마"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일을 해야 하니 억지로 유치원 앞까지 끌고도 가봤지만 소용없었다. 평소 살갑게 지내던 실장님 얼굴을 보자마자 바지 자락에 매달려 대성통곡했다는 아이를 차마 억지로 밀어 넣을 수 없었다.


다행히 둘째 아이는 시국이 어렵거나 말거나 처음 가는 어린이집 긴급 돌봄에 바로 적응했다. 남편도 재택근무 중이었고 친정엄마와도 다시 동거를 시작한 터라 나비꽃은 당분간 집에 있기로 했다. 조금이나마 여유가 되는 상황이라 기다려주기로.


멀어졌다


2주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하루 종일 집 안에만 있는 아이가 안쓰러웠다. 심심하다 몸을 베베 꼬면서도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는 심보가 대체 뭘까. 온갖 설득과 협박, 협상까지 모두 동원했지만 통 말을 듣지 않았다. 6세의 원더윅스 같은 거니...


아이의 등원 거부 소식은 시집에도 전해졌다. 산 아래 자리 잡은 시골 시집은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터였다. 코로나19로 마을 전체가 격리됐었지만 사정이 나아졌고 안 그래도 손주가 보고 싶어 애가 닳던 시부모님은 나비꽃을 돌봐주시겠다고 나섰다.


남편이 나비꽃을 시집에 두고 온 날, 밤이 되면 울면서 우릴 찾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시부모님은 전화 한 통 없었다. 2-3일이면 지쳐 집으로 돌아올 거라는 예상을 깨고 아이는 일주일 동안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있었다.


혼자, 일주일이라니. 아이와 멀어지는 순간은 돌연 찾아왔다.


시부모님은 나비꽃이 한 번도 울거나 보챈 적이 없다고, 삼시 세끼 꼬박꼬박 '배고프다' 야단치는 바람에 먹이느라 바쁘셨다고, 혼자서 강아지 끌고 산으로 밭으로 잘 놀러 다녔다고 했다. 유치원 가기 싫다고 매일 울고불고 보채고, 입에 넣어줘야 겨우 먹고, 유아차 없이는 외출 못하던 아이는 어디 갔을까.


일주일 만에 만난 아이는 분명 달라졌다. 잘 먹은 덕에 몸도 제법 컸지만 더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했다. 도움을 거절하고 혼자 하는 것들이 전보다 많아졌다. 행동반경도 커져 시골집의 넓은 마당과 텃밭, 낮은 뒷산까지 모두 헤집고 다녔다.


아이는 내 품에서 멀어져 더 큰 세계로 나아가 있었다.


가까워지는


일주일 사이에 어쩜 이렇게 달라질 수 있냐고 호들갑 떨며 감탄했던 게 무색하게 다시 집에 돌아온 나비꽃은 변함없이 유치원 등원을 거부했다. 또다시 어르고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성장한 듯 보였던 아이의 막무가내 고집에 멀어졌던 아이는 더 멀게 느껴졌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비꽃이 걱정됐던 언니가 오랜만에 집에 들렀다. 좋아하는 핫도그를 박스로 들고 온 큰이모가 반가워 쫑알쫑알 떠들던 나비꽃은 덜컥 큰이모와 약속을 했다.


큰이모가 매일 와주면 유치원 갈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더 생각하지 못한 약속이 아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일을 하는 큰이모가 평일에 연속으로 우리집에 놀러 오는 게 힘든 일이라는 걸 나비꽃은 알고 있었다. 그 누구도 먼저 조건을 걸고 유치원에 보내려 한 적이 없었는데 어려운 조건을 내걸고 스스로 먼저 약속을 제안한 것.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나비꽃과 새끼손가락을 걸고 도장을 찍고 복사, 코팅까지 한 큰이모는 정말 다음날에도 집에 왔다. 아이도 내심 놀랐다. 집에 들어서는 큰이모를 보며 또렷해지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무거운 약속이었다는 걸 깨달은 것 같았다. 먼저 뱉은 말과 자신이 해야 할 일의 무게를, 더 이상 관계가 '떼'만으로 통하지 않는다는 것도.


나비꽃이 다시 등원을 시작한 지 3일. 유치원 문 앞에선 여전히 눈물을 보이지만 울면서도 제 발로 유치원에 들어가는, 하원 후 유치원 일과를 까르르 웃으며 얘기해 주는 아이가 기특하고 고맙다. 일상은 제 자리로 돌아왔고 우린 다시 가까워졌다.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


3년 전 나비꽃을 위해 샀던 그림책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를 처음으로 함께 읽었다. 많지는 않았지만 등원 거부나 분리 불안 위기가 있을 때마다 꺼내 읽어줬던 책인데 내 생각만큼 아이는 흥미로워하지 않았다.


이번엔 달랐다. 아이도 나도 이야기에 크게 감동했고 위로받았다. 책을 다 읽은 나비꽃은 내 눈을 바라보며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니까 괜찮아"라고 말했다. 잠자리 이야기로도 듣고 싶어 해 읽어주면 가만히 듣다 스르르 잠든다.


"언젠가 네가 더 멀리 떠나고 엄마는 집에 남아 있을 날이 오겠지? 그래서 아주 아주 오랫동안 떨어져 있을 날도 오겠지? 그래도 괜찮아. 너는 엄마가 보고 싶어도 꾹 참고 재미나게 세상을 누빌 테고, 엄마는 네가 보고 싶어도 꾹 참고 재미나게 하루하루 지낼 테니까. 아주 오랫동안 서로 보지 못한다 해도 언젠가 우리는... 꼭 다시 만날 테니까." -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 윤여림 글, 안녕달 그림



더 큰 세상으로 뛰어나간 아이는 내 품에서 밖으로, 밖으로 멀어질 것만 같지만 세상을 배우고는 다시 가까워진다. 다섯 걸음 훌쩍 나아갔다가 세 걸음 정도 돌아와 다시 나와 걸음을 맞춘다. 앞으로 멀어져 나아갈 걸음은 더 많아질 거고 돌아오는 걸음이 더 적은 날도 있겠지만...


괜찮아,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날 테니까. 비록 거리는 생기겠지만 서로를 확인하고 함께 또 나아가는 시간들이 쌓여 우리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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