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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성 Dec 21. 2021

나는 날 위해 무엇을 해주고 싶나요?

심리상담 받은 썰 1. '관대'와 '자유'는 어디서 튀어나왔을까


2021년이 열흘 남짓 남은 오늘, 모두들 올 한 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하다. 남 얘길 들으려면 내 얘길 먼저 꺼내야지.


일 말고... 나 돌봄 '삼위일체'


내게 2021년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11년 만에 처음으로 조직 밖에서 일하며 여러 시도와 실험을 해봤기 때문. 후회 없이 끝까지 해보고 싶었고, 모호했던 내 가능성과 한계까지 다시금 확인한 뜻깊은 한 해였다. (그래서 조직 밖에서 1년 동안 무슨 일을 했냐면, 어떤 가능성과 한계를 확인했냐면 그건 정리 중. 곧 올릴 예정.)


조직 밖에서 일했던 것 말고도 다른 때와 달랐던 게 또 있는데. 창고살롱 시즌3가 시작하던 10월, 우연히 창고살롱 레퍼런서 멤버들의 추천과 조언으로 운동, 글쓰기, 그리고 심리상담을 시작한 거였다.


운동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레퍼런서 수지님 덕분에 조금씩 꾸준히 다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레퍼런서 민정님의 사진관에서 진행했던 창작소 강좌로 엄마페미니즘 탐구모임 부너미에 합류해 나만의 글쓰기에도 다시 조금 더 품을 내기 시작했다. 레퍼런서 써니님 추천으로 지자체 지원 무료 심리상담에 신청했다가 난생처음 심리상담도 받았다.


창고살롱 시즌3 주제가 '멈추면, 알게 되는 것들'이라 그랬을까. 운명처럼 이 세 가지를 동시에 하니 마치 나를 보살피기 위한 '삼위일체'를 이룬 것 같기도 했다. 사실 가장 하고 싶었던, 또 내게 필요했던 것들이지만 모두 '시간 없다'는 핑계로 항상 뒤로 미루던 것들이었으니까.



힘들면 그냥 힘든 거지


특히 심리상담은 필요한 줄도 몰랐지만 가장 큰 도움이 됐다. 첫날, 무슨 얘길 해야 할지 몰라하는 내게 상담가님은 "뭐라도 힘든 일 없냐"고 질문을 던졌다. 난 몇 가지 얘기를 나누면서도 "이게 힘든 게 맞는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에겐 딱히 힘들어 보이지 않을 것 같다"고 답했다.


"힘들다"는 얘길 쉽게 해 본 적이 많지 않아서 중언부언하기 시작하던 나. 한참을 듣던 상담가님은 "왜 스스로 힘든 걸 그대로 인정해 주지 않냐"고 되물었다. 힘들면 그냥 힘든 거지 그걸 왜 나와 타인에게 합리화하려고 하느냐고 말이다. 그 부분이 "충격적이고 의아하다"고도 했다. 난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말을 잇지 못했던 건 세 가지 깨달음 때문이었다. 첫째는 내가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둘째는 내가 힘든 이유를 알고 있었던 것, 셋째는 힘들면 그냥 힘들면 된다는 것.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 힘들다고 인정도, 말도 못 하고 있던 나를 결국은 마주한 순간이었다.


커뮤니티 창업 후 어느 때보다 더 일과 관계에 에너지를 쏟고 있었다. 일도 관계도 유동적이라 다시 제로베이스에서 애를 써야 하는 순간도 빈번했다. 채우지는 못 하고 소모만 되고 있으면서 책임감 때문에 싫은 소리는 못 하고. 농담처럼 '매일 번아웃이 온다'고 우스개 소리를 했던 게... 사실이었다.


상담가님은 말했다. "내가 힘든데 남이 인정하고 이해하는 게 뭐가 중요하냐"고. "힘들면 그냥 힘들면 된다"고.





나에게 주고 싶은 것... 관대와 자유


"내가 나를 위해 가장 해주고 싶은 게 뭐예요?" 마지막 질문이 정곡을 찔렀다. 첫 심리상담 내내 얼떨떨해하다 결국 눈물이 왈칵 쏟아질 만큼 놀란 건 내가 마치 준비한 것처럼 한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관대해지고 싶고,
나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어요


최근 창고살롱 시즌3 박찬이님 레퍼런서 살롱 매거진 후기를 정리하다 살롱 때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문장 하나가 마음에 박혔다. "내 감정을 내가 알아보지 못했다"는 말. 사유에는 치열하게 파고들었지만 정작 내 감정은 들여다보지 않았던 나였다. 그러니 내가 정말 원하는 것,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은 늘 마음속 구석에 처박혀 있었던 거다.


마지막 질문에 답한 날부터 나는 '나를 위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나를 위해 뭔가를 하기도 하고, 하지 않기도 하면서 내 마음을 가장 우선해 결정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나에게 이렇게 적극적이었던 적이 없었다. "필요한 건 모두 내 안에 있다"는 찬이님의 말처럼 결국 나를 가장 위하고 알아줄 수 있는 건 나 자신이었는데.


총 9회의 심리상담은 내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고 싶은지  욕구를 뾰족하게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기분 좋은 나, 우울한 나, 멋진 나, 지질한 나, 예쁜 나, 못난 나... 여러 모습의 나를 그대로 인정하고 내 마음에 귀 기울이는 것.


고작 상담 9회로 이 과정이 완성되는 건 턱도 없다. 앞으로 계속 연습하고 노력해야 할 과제다. 정말로 다행인 건 글의 서두에서 얘기한 운동, 글쓰기, 심리상담이 마침 좋은 시작점이 됐다는 거다. '나를 위해, 내가 하고 싶은 걸 한다'는 감각과 기쁨을 되찾는 데.


상담을 통해 더욱 명확해진 것도 있다. 내 심리상태에 대단한 문제가 있지는 않다는 거였다. (그러니까 대단한 불행도 행복도 아닌 삶이 맞...) 심리가 불안하거나 병이 있기보다는 '기질' 문제라고.


눈치껏 살아남아야 했던 언니와 남동생 사이의 K차녀이자 대중의 평가가 가장 중요한 콘텐츠 만드는 일의 특성 때문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기질이 점점 강화됐을 거라고. 쿡 찌르기 무섭게 튀어나왔던 '관대'와 '자유'는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바라 왔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지금 내가 나를 위해 가장 해주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 창고살롱 뉴스레터 23호 글에 살을 붙였습니다.


Photo by Pim Chu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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