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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글 Mar 10. 2024

잘 그린 그림, 못 그린 그림

결국은 해피엔딩

중간에 변경된 커리큘럼, 크레파스 스크래치 수업, 학생이 그려준 나

2022년 12월, 남들 앞에서 말하기 쫄보였던 내가 쿵쾅되는 심장을 부여잡고 중학생들 앞에서 강의라는 것을 처음 시작했다. 뭐부터 준비해야 할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그 많은 양을 다 외울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기만 했었다. 당장 코앞인데 정말 큰일이다. 일은 왜 이렇게도 많은지? 두려움이 앞섰다 근데 또 오랫동안 해보고 싶었던 분야인데? 괜히 한다고 했나? 아니 근데 이런 고민을 할 틈도 없이 외주업무가 많아서, 초조하게 강행해야만 했다. 이 와중에 게을러지지 않겠다며 그림모임까지 나갔으니, 지나고 보면 조금 대단하다. 나는 지금도 내가 계획형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우선순위를 정하고 일을 처리했었다. 글을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 그동안 해왔던 작업을 정리하느라 새벽에 잠들었다. 물론 지금도 잠을 새벽에 자고 있지만, 작업실 외 공간에서는 좀처럼 작업을 하지 않는 나로서는 진짜로 급한 일이라 해낼 수 있었던 거 같다.


중학교 1학년,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에게 내 수업이 과연 유익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아무래도 처음 해보는 수업이고, 애써 주변에 조언을 들으며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지나고 보니 내가 진심으로 학생들을 대하며 최대한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려고 했던 시간들이 통했던 거 같다. 물론 부족한 면도 아주 많았다. 생각보다 집중력이 낮았던 친구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계획했던 수업 커리큘럼을 변경해 다양한 재료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이건 내 생각)


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저는 그림을 못 그려요", "뭘 그릴지 모르겠어요"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도 스케치북을 펼치고 각을 잡고 그림을 그리려고 하면 대단한 것을 그려야 한다는 생각에 집중이 잘 안 된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듣고 싶은 신청곡을 받아 노래를 틀어 줬다. 놀면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보내게 해주고 싶었다. 나도 중학교 때 얼마나 학교 책상에 앉아 있는 게 힘들었는지 잘 안다. 자신들이 선택한 아이돌이나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신나게 떠들며 부르는 모습이 나는 참 좋았다. 학생들이 나에게 그림을 배웠다기보다는 내가 학생들에게 즐거움을 배운 시간이었다. 이렇게 종종 특강을 나가다 2학기 자유학기에 투입되고, 8월부터 12월까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지났고, 정이 들어서인지 많이 섭섭하기도 했고, 다 끝냈다는 생각에 후련하기도 기특하기도 했다.


모든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에게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나의 명함을 전달했다. 번호를 저장하는 친구도 있고, 고맙게도 내 사인을 받아가는 친구들도 있었다. 너무 웃기고 재밌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새해를 맞이하기 직전, 수업 시간에 정말 그림을 잘 그리던 친구에게서 카톡 메시지가 왔다.


"수업을 들으면서 하길 잘했다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림도 안 그려본 내가 창작이란 걸 하면서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내 그림은 남들이 볼 때 예쁘다고 생각하는 기준과는 다르니까 그냥 취미로만 해야지"

"선생님께서 그림에는 기준이 없다고 하시면서, 그저 개성일 뿐이라고"

"잘 그렸다고 칭찬해 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저도 자신감이 많이 올라갔어요"


나는 이 메시지를 보고, 마음이 울컥해졌다. 정말 중학교 1학년이 맞을까? 어떻게 내가 전달하고 싶었던 마음을 이렇게 잘 알아줄까. 이 일을 하길 정말 잘했다! 용기 내서 해보길 잘했다. 나의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이토록 영향력을 줄 수 있구나. 심지어 저 친구는 정말 그림을 개성 있고 재미있게 그려줬다. 볼 때마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까? 정말 멋지게 그린다고 생각해서 더 많이 칭찬해 줬던 듯싶다. 수업 시간에 무언가를 배우기보다 자신을 알아가며 남들에게 보이는 그림보다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길 원했다. 요즘 즐겁게 작업하면서 이 친구의 길고 긴 메시지를 다시 한번 읽었다. 나는 물건을 판매하기 때문에 대중적으로도 인정을 받아야 하는 자리지만, 내가 그리고 싶은 주장을 많이 넣어 그린다. 가끔 잘 판매되는 다른 작업들을 관찰하기도 했다. 어쩌면 내가 학생들에게 했던 잘 그린 그림은 없다는 말은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라고 생각했다. 잘 그린 그림도 못 그린 그림도 없다. 만족할 수 있는 행복한 그림만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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