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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여름이가기전에 Mar 12. 2023

가야만 하는 곳

어린이집 등원 첫 주

‘안녕하세요? 윤이 엄마예요. 아이가 잘 적응하기 위해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드리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이렇게 글 남깁니다. 원에서 말씀드리는 건 한계가 있는것 같아서요.


윤이는 바퀴, 먹는 것, 노래도 좋아하지만 사실 책을 제일 좋아한답니다. 신생아 때부터 초점책을 모빌보다 좋아하던 아이였기에 백일 무렵부터 장난감이 아닌 책을 보여주면서 키웠습니다.


호기심도 많고 집중력이 좋은 아이라 잘 따라왔고 이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좋아하는 책을 직접 골라서 스스로 책장을 넘기며 봅니다. 보드북 말고 얇은 종이책도 손으로 잘 넘길 수 있고 책에 나오는 것들을 손으로 짚으면서 옹알이를 합니다. 몇 시간이고 말이죠.


낮잠 전에도 밤잠 전에도 항상 책을 읽고 나서 잠이 듭니다. 요즘에는 자연관찰책과 아기가 나오는 책에 부쩍 관심이 늘었답니다.


소근육 발달이 좋아서 일반 장난감보다는 손으로 움직이면서 성취감을 줄 수 있는 장난감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블록을 모양에 맞춰 상자 안에 넣거나 옮기는 걸 완수하면 ‘와!’ 하는 소리를 내며 좋아합니다.


제가 윤이를 아빠나 할머니한테 맡기고 종종 외출을 해도 잘 찾지 않고 잘 지내는 아이라 선생님들과도 애착이 형성되면 편안하게 지낼 거예요!


책 읽어주는 사람을 제일 좋아해서 다음 주는 아이가 좋아하는 책 두 권 정도 지참해서 아이들 오기 전에 읽어주시면 아이 안정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혹시 가능할까요?


호기심이 많고 집중력이 좋은 성격이지만 급하고 독차지하고 싶어 하는 성향을 가진 저희 아이. 좋은 성향은 보존하고 친구들과 더 잘 어울리는 아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요즘 들어 부쩍 몸도 마음도 성장한 아기는 다른 이들과 엄마를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고, 내 품을 더 좋아한다. 그렇게 좋아하는 엄마 품에 안겨서 도착한 곳은 어린이집. 윤이가 태어난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은 날이었다.


첫 일주일은 함께 삼십 분 내지는 한 시간 동안 원에 머물렀고, 일주일의 마지막 날은 내가 원 밖으로 나가보는 시도를 했다. 함께 나온 학부모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잘 적응할지 걱정하는 다른 부모들과는 달리 나는 우리 착한 아이는 아무렴 괜찮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원에서 나온 지 이십 분이 지날 무렵 휴대폰 진동소리가 났다. 다른 아이 엄마가 호출받는 줄 알았는데 울리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내 전화. 수화기를 찢을 듯한 아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 오셔야 할 것 같아요. 지금요’


어설픈 엄마 소리를 내며 숨 넘어갈 듯 울고 있는 나의 아기. 아무리 안아 달래도 진정이 잘 되지 않는다는 설명과 함께 아이를 받아 안았다. 내 품에 안기자 서서히 줄어드는 울음소리.


그래도 그 이십 분을 버텨낸 것이 기특했다. 엄마를 찾은 것도, 엄마 품에 안겨 이내 진정한 것도 기특했다. 첫날은 그럴 수도 있을 거라며, 다음날은 오늘보다 나을 거라며 아이만큼 놀란 나를 달래며 집으로 향했다.




분리를 하기로 한 둘째 날.


전날보다도 기분이 좋은 아이를 보며 오늘은 성공할 것 같다는 나의 생각 내지는 기대는 원에 들어가자마자 시작된 아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고꾸라졌다.


자신을 내려놓고 나갈 것을 문에 들어서면서부터 알아차린 이 영특한 인간은 내 목에 그 작은 팔을 단단히 부여매고는 얼굴을 어깨에 묻고 있었다.


‘제발 나를 두고 가지 마세요.’ 온몸으로 말하고 있던 아이.


결국 오늘은 분리하지 말자는 원장님의 결정에 따라 다른 학부모들이 원에서 나갈 때 나 혼자 아이 옆에 남게 되었다. 안 간다는 건 또 기가 막히게 알아차려서 금세 기분이 좋아진 아기. 이것저것을 가져와 놀이를 시작한다. 적응에 대한 걱정은 잠시 미뤄두고 눈치 빠른 이 아이를 기특해하기로 했다. 모성은 병인 건가?


곧 말 꽤나 할 줄 아는 1세 반 아이들이 도착했고 그 아이들의 엄마들도 아이들을 내려놓고 문밖으로 나갔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현관문 앞에 주저앉아 엄마를 연신 외치며 무너지는 아이. 그 아이를 보며 잘 먹던 간식도 뿌리치고 자기 엄마를 찾아 이 문 저 문을 열어보며 울기 시작하는 또 다른 아이. 가방을 다시 매고는 선생님 품에 안겨 엄마를 보러 가자고 자지러지는 아이.


아이들이 연신 외쳐대는 엄마라는 소리가 돌덩이처럼 마음에 쌓였다. 우리 아이도 어제 이랬겠구나. 아마 오늘도 내가 나갔다면 이랬겠지. 다음 주에는 또 이런 모습이려나. 나는. 나는 어땠을까..




오빠의 특수교육을 위해 엄마는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18개월쯤 되는 나도 함께였다. 당시 세 돌은 지나야 탁아기관에 맡겨졌던 시대상과 달리 나는 18개월에 어린이집에 맡겨졌다고 한다. 오빠의 교육이라는 엄마의 중대한 과제 앞에 나는 나의 생을 지속했어야 했기에. 엄마는 엄마의 생을 지속했어야 했기에. 어떻게 해서든.


“너는 안 울었거든. 낯도 심하게 가리고 분리 불안도 무척 심했는데 맡기고 나올 때 울지를 않더라고.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는데 차마 내 앞에서 울지를 못하고 바이바이 손을 흔들더라고. 아직도 그 눈망울이 기억나. 거기에 있어야만 한다는 걸 알았던 거지. 엄마는 가야만 한다는 걸 알았던 거지. 기특한 아이였다”


엄마는 나를 어린이집에 맡겼던 순간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엄마와 달리 나는 전혀 그 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윤이의 어린이집에 울려 퍼지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이내 나는 알게 되었다. 닫힌 현관문 뒤로 나는 엄마를 외치며 울고 있었다는 걸. 엄마 앞에서 참아냈던 눈물을 그제야 폭죽처럼 터뜨리고 있었다는 걸.


“아줌마가 미안해”


윤이 옆에 앉아있는 나를 보며 아이들이 더 엄마를 찾고 있었다. 눈치 빠른 나의 아기는 그것이 자랑스러운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울고 있는 누나 옆에서 풍선을 이리저리 던지며 놀았다. 자기도 같은 처지에 놓일 것을 모른 채.




“어머니 있잖아요. 적응 못하는 아이는 없습니다. 그러니 너무 염려 마세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아이들에게 좋은 감정만 가르칠 수 없다고. 부정적인 감정도 느끼게 하되 이를 잘 넘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선생님들의 역할이라고. 윤이는 잘 해낼 거예요. 응원해 주세요 “


암요. 그렇고 말고요. 똘똘한 나의 아기는 곧 알게 될 겁니다. 이곳은 내가 가야만 하는 곳이고, 회사는 엄마가 가야만 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언젠가 아니 곧 눈물이 아닌 미소를 머금고 빠이빠이를 하는 날이 올 겁니다. 물론 당신의 아기도요. 아이는 아이의 생을 지속해야 하고. 나는 나의 생을 지속해야 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새벽, 잠에 들지 못하고 나는 알림장에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적는다. 조금 덜 울기를, 조금 더 예쁨 받기를 바라면서, 조금 더 빨리 부정적인 마음에서 벗어나길 바라면서.


어쩌면 엄마가 일찍이 내게 가르친 것은 울고 싶은 마음에서 벗어나는 힘이었을지 모른다.




사랑하는 나의 아기야. 이제 돌이 딱 한 주 남았네. 그리고 엄마의 복직일까지도 딱 한 주가 남았다.


요즘 네가 얼마나 예쁜지 너는 알까? 내가 어디 있는지 두리번두리번 찾고, 찾아내면 이내 함박웃음을 지어 보이는 너. 조금 떨어져서 책을 읽다가도 내가 있는지 곁눈질로 확인하고 보는 것으로는 모자라 성큼성큼 기어와 내게 안겨 온몸으로 엄마라는 사람의 실체를 확인한다.


너는 책에 그려진 별을 가리키며 ‘벌’이라 말하고, 무당벌레, 바퀴, 감자와 고구마, 딸기와 토마토, 토끼와 기린, 얼룩말이 나오는 책을 좋아한다. 엄마는 네 옆에서 그 책들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함께 책을 읽는다. 또박또박 소리를 내어 네가 말하고 싶은 것들을 읽어낸다. 그럼 너는 배시시 웃는다.


시간이 흘러 엄마가 많은 것을 포기했던 일 년이란 시간을 너는 기억하지 못하겠지. 나도 이 일 년 동안 네가 얼마나 예뻤는지 잘 기억해내지 못할지도 모르지.


그래도 엄마가 너를 온 진심을 다해 사랑하고 너도 엄마를 그 누구보다 사랑한 이 시간이 네가 앞으로 마주할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에서 너를 구원해 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 시작은 어린이집에 혼자 남을 너의 마음이겠지? 많이 불안하고 울고 싶을지라도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너를 지탱해 주기를. 너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나의 쓰린 마음을 달래주는 것처럼. 엄마는 어디에도 없겠지만 모든 곳에 있을 거다. 언제나처럼 너와 나를 응원하면서.


끝이 없을 우리 여정의 시작에서 눈물로 사랑을 담아 현관문 앞에 고이 건다. 사랑하는 내 아기. 안녕! 너무 늦기 전에 만나러 갈게! 꼭꼭 약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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